영화를 통해 세계사의 단면을 살펴보는 『스크린에 숨은 세계사 여행』. 강의 형식으로 집필된 이 책은 영화의 장면에 숨은 세계사의 진면목을 파헤치고 있다. 문명의 발전과 접변을 살펴보는 ‘아포칼립토’, 진나라 통일을 기묘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영웅’, 현대에 부활한 과학과 종교의 전쟁을 다루는 ‘천사와 악마’, 무술을 통해 중국의 자존심을 확인시켜주는 ‘황비홍’ 등의 작품을 소재로 하여 역사적 인물의 면면을 새롭게 발견하도록 이끌어준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영화에서도 빗나가지 않는다. 편하게 영화관에 앉아서 보면 그만인 것 같은 이 영상매체에는 사실 만든 사람의 세계관이 묻어있기 마련이다. 영화가 드러내는 메시지는 스토리와 화면을 통해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스며들기 때문에 어떤 설득이나 선전보다도 더 위력적일 수 있다.
가령 대한민국을 뜨겁게 만든 〈도가니〉라는 영화도 작가와 감독이 사회적인 영향력을 끼치려 했든, 그러지 않았든 약자에게 가해진 참혹한 폭력과 불의에 눈감는 권력에 대한 그들의 분노가 많은 관객의 공감을 끌어냈다.. 이로인해 결과적으로는 법개정과 함께 관련자에 대한 징계와 피해자에 대한 관심까지도 다시 불러일으켰다.
제작자가 의도한, 영화에 담긴 철학과 세계관을 이야기한다고해서 『스크린에 숨은 세계사 여행』이 딱딱한 영화비평서인 것은 아니다. 영화제작자로 활동하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인류가 걸어온 발자취로 독자들이 더욱 쉽게 접근하길 원한다고 밝힌다. 〈이집트왕자〉, 〈영웅〉, 〈아포칼립토〉, 〈킹덤 오브 헤븐〉등 이 책이 소개하는 영화들을 통해 우리는 영웅과 악당, 욕망과 탐욕에 가득 찬 캐릭터들이 스크린을 누비듯 역사속에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제1장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불을 찾아서
인류, 진화의 물결을 타고 무대에 등장 | 인간, 도구를 발명하다 | 불, 인류문명을 일으키다 | 언어, 인류문명을 도약시키다 | (부록)선사와 역사의 경계는?
제2장 문명의 차등적 발전과 접변 - 10,000BC/ 아포칼립토
문명은 물가에서 비롯된다 | 문명은 차등적으로 발전한다 | 인간이 인간을 다스리기 위한 필수수단, 종교 | 문명접변의 파국을 다룬 영화 〈아포칼립토〉 | (부록)종교는 왜 생겨났을까?
제3장 종교의 발전과 고대 국가의 성립 - 이집트왕자
유대 민족의 이집트 탈출, 세계사를 뒤흔들다 | 유대의 부족신앙, 유대교로 재탄생 | 역사적 사건들의 ‘나비 효과’ | 정치가 종교에 눈돌리는 진정한 이유 | 모세의 삶은 문명접변의 압축판 | 모세의 선택은 선진문명에 대한 ‘적응’ | 문명 적응의 고뇌는 현재진행형이다 | (부록)뜻밖에 가까운 이집트 문명
제4장 동양의 제국탄생 - 영웅
제국은 왜 생겨났을까? | 제국, 경제적인 이유가 으뜸 | 동아시아 최초의 제국 탄생, 진나라 | 진 통일의 기묘한 해석 〈영웅〉 | ‘천하를 위해서’라는 허구의 이데올로기 | 〈영웅〉은 21세기판 신 중화주의 | 중화주의의 주창자 대 사대주의의 추종자 | (부록)인간의 노동과 동물의 노동
제 5장 서양의 제국탄생 - 300/ 글래디에이터
그리스를 알아야 로마를 안다 | 문명의 대충돌을 그린 영화 〈300〉 | 스파르타, 무모한 전쟁을 불사하다 | 300의 전사로 수십만을 대적하다 | 그리스를 뿌리삼아 꽃을 피운 로마 | 게르만 족의 등장시대를 다룬 〈글래디에이터〉 | 서양사에 닥친 거대한 쓰나미, 훈 족의 대이동 | (부록)동양, 아시아, 오리엔트
제6장 천 년 동안 잠든 이성과 암흑의 시대 - 아고라/ 장미의 이름/ 천사와 악마
권력은 사라지지만, 문화는 남는다 | 로마가 남긴 가장 큰 유산, 기독교 | 땅의 권력까지 탐낸 하늘의 권세 | 기독교, 제국 통치를 위한 이념으로 확산 | 종교의 몰합리성 고발 〈아고라〉 | 종교개혁은 시민의 자유 확대 | 종교에 밀봉당한 이성의 역사 〈장미의 이름〉 | 중세, 웃음조차도 금지된 시대 | 현대에 부활한 과학과 종교의 전쟁 〈천사와 악마〉 | (부록)종교가 과학을 탄압한 이유
제7장 기독교와 이슬람의 충돌과 십자군 전쟁 - 킹덤 오브 헤븐
십자군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 유대인과 아랍인은 같은 민족 | 한 뿌리 세 종교의 공통점과 차이점 | 이슬람의 탄생과 전파 | 십자군 전쟁의 진짜 이유 | 십자군 전쟁의 실황중계 〈킹덤 오브 헤븐〉 | 진정한 천국은 무엇을 말하는가? | (부록)이슬람은 폭력적인 종교?
제8장 대항해시대와 유럽의 세계 침략 - 미션
대항해시대, 세계문명의 큰 전환점 | 유럽, 장사를 위해 대항해에 나서다 | 신대륙, 악마들에게 경악하다 | 멋대로 선을 긋고 신대륙을 장물 취급 | 유럽인의 이중적 인간관 | 위선과 수탈의 생생한 증언 〈미션〉 | 하나님의 정의를 묻는 투쟁 | 서세동점, 세계사의 축을 뒤바꾸다 | (부록)콜럼버스를 도와준 중국인?
제9장 서세동점과 제국주의의 시대 - 황비홍
중국, 종이 호랑이로 전락하다 | 오만한 중화주의가 몰락을 재촉했다 | 날아가는 서양, 기어가는 중국 | 무술영화로 보여준 중국의 자존심 〈황비홍〉 | 중국, 다시 도약기에 들어서다 | (부록)대한민국이라는 국호의 참뜻
제10장 일본의 근대화와 아시아 침략 라스트 - 사무라이
한국·중국과 달랐던 일본의 반응, 탈아입구론 | 깡패처럼 일본의 문을 열어제낀 미국 | 일본, 제국주의 열강을 따라잡다 | 정한론, 일본 정권을 좌우하다 | 무사도와 근대화를 묻는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 | 일본, 본격적으로 침략의 길에 나서다 | (부록) 정한론과 반복되는 일본의 조선 침략
제11장 제2차 세계 대전과 유대인 학살 - 인생은 아름다워/ 쉰들러 리스트
눈물과 웃음으로 승화시킨 학살의 비극 〈인생은 아름다워〉 | 독일 국민의 슈퍼스타로 떠오른 히틀러 | 대중을 조종하는 대중 매체와 스타의 힘 | 흥행감독 스필버그의 영화적 반성문 〈쉰들러 리스트〉 | 흑백 화면에 담긴 유대인 학살의 참상 | 뒤바뀐 입장, 반복되는 역사 | (부록)진짜 유대인과 가짜 유대인
제12장 자본주의와 인간 노동의 소외 - 모던 타임즈
우리가 숨쉬는 자본주의 공기 | 자본주의의 산업화·도시화는 사촌 형제〈모던 타임즈〉 |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 군집성과 익명성 | 사람의 노동과 기계의 노동 | 웃음 속에 숨겨진 칼날 | 유성 영화 시대에 만들어진 '짝퉁' 무성 영화의 즐거움 | (부록)자본주의와 노동의 소외
제13장 20세기의 패자, 미국의 현대사 - 포레스트 검프
인생이란 상자 안에 담긴 초콜릿 | 영웅도 악당도 없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 | 구원의 천사, 제니를 만나다 | 성인이 된 포레스트가 겪는 격동의 미국현대사 | 미국인에게 부끄러웠던 베트남 전쟁 | 미국을 바꾼 학생 운동과 히피의 물결 | 인생을 달리는 포레스트 검프 | 삶은 날아가는 깃털처럼 계속
되고 | (부록)우리도 다민족 국가
에필로그
참고도서
저자 :김익상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와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과를 마치고 지금은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지금도 불철주야 영화 만드는 작업 또한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독자들에게 영화와는 또 다른 글쓰기의 참맛을 드문드문 선사해주고 있다.
출판사 리뷰
이 책은 어떻게 탄생했나
영화에 관심있는 사람들 가운데 〈영화 이렇게 보면 두배로 재미있다〉(들녘)라는 책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그 책에서 제임스 카메론, 폴 버호벤, 스탠리 큐브릭, 이명세 등 저명한 10명의 감독들을 둘러싼 영화이야기를 맛깔나게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스크린에 숨은 세계사 여행〉을 들고 나타났다. 그 책을 냈던 때와 비교하면 거의 17년만이다. 그간 영화감독으로서는 〈퇴마록〉〈2009 로스트 메모리즈〉〈잠복근무〉〈흡혈형사 나도열〉 등의 메가폰을 잡았고, 할리우드의 저명한 영화감독들을 깊이있게 소개하는 〈할리우드 감독 51〉이란 책을 펴내고, 지금은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과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 세월 속에서 아이가 자랐고, 공부를 하느라 애쓰�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과연 아버지로서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생겨났다. 아무래도 평소 관심있는 방향으로 생각이 미치게 되니, 영화를 통해 세계사의 맥락을 이해하는 원고를 써보고자 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의 일 또한 아이에게 알려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리하여 ‘아버지가 아이에게 들려주는 영화와 세계사 이야기’가 탄생하게 된다.
학교에서 달달 외우기만 하는 따분한 세계사 공부가 아니라, 재미있는 영화를 교재삼아 인류의 발자취를 더듬어보자. 그리하여 영화는 세계사라는 컨텐츠를 어떻게 요리하는지를 살펴보고, 그럼으로써 세계사는 영화속에서 어떻게 변형 혹은 재창조되는지를 따져보자. 아울러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감독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는지를 따져보자. 마지막으로 알면 달리 보이게 마련인 영화와 세계사를 관객들(혹은 독자들)은 어떤 관점을 가지고 대해야 되는지를 점검해보자. 이 책에서는 수미일관되게 영화와 세계사라는 두 가지 재료를 아주 맞춤하게 섞어 맛있는 요리로 만들어내고 있다.
인류의 5백만년 역사를 영화로 관통하다
46억년 지구역사에서 인류가 등장한 건 지극히 짧은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인류에게 그 시간은 장구하기 그지없다. 부유하는 원생세포에서 시작하여 진화를 거듭하더니, 마침내 지금으로부터 5,6백만년 전 두 발로 걷는 원생인류가 등장했다. 호모 에렉투스에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로 진화하기까지 수백만 년이 걸렸지만, 그후 겨우 몇 만년만에 인류는 어느새 지구밖 별에까지 여행을 다녀오는 존재로 변모했다. 그런 인류가 살아온 내력이야말로 지구상 최고 최대의 보물 컨텐츠가 아닐 수 없다. 쟁쟁한 세계적 영화감독들이 세계사의 한 대목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낸 영화가 수많은 관객들을 울고 웃게 만들었다.
영화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이야기인데, 세계사란 바로 인간의 역사이다. 세계사를 소재로 한 다양한 영화들이 숱하게 만들어진 만큼, 영화의 비주얼을 통해 세계사를 더욱 리얼하게 공부할 수 있다. 가령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나 〈불을 찾아서〉란 영화 속에서는, 500만년 전 우리 인류의 조상이 어떤 과정으로 도구를 만들고, 불을 쓰게 되고,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는지가 생생히 드러난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도구를 사용하게 된 인류의 진화를 설명한 작가의 말을 인용해보자.
“원숭이는 승리의 기쁨에 꿱꿱거리며 정강이뼈를 하늘로 힘껏 던집니다. 카메라가 뼈를 따라서 ‘쭉-’ 올라가다 다시 떨어지는데 어느새 그 뼈와 비슷한 모양의 우주선으로 변해 있죠. 이것을 영화 기법에서 점프 컷이라고 하는데,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이 장면으로 동물의 뼈를 최초의 도구로 사용한 원시 인류가 마침내 우주선이라는 또 다른 첨단 ‘도구’를 발명하는, 무려 5백만 년하고도 2001년에 이르는 진화 과정을 명료하게 요약했습니다. 아마 영화 역사상 이토록 대담하게 5백만 년씩 뛰어넘는 점프 컷은 나오기 힘들 겁니다.”
인류의 초기문명은 물가에서 비롯되는데, 이후 지구상을 떠도는 인류는 자리잡은 곳의 지리적 영향을 받아 저마다 다른 양상으로 발전한다. 이것이 ‘문명의 차등적 발전’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문명이 만나게 되면, 강렬한 스파크를 일으키고, 이때 ‘문명의 접변’이 발생한다. 이런 가운데 종교 또한 발생한다. 이런 주제를 훌륭하게 묘사한 영화가 〈10,000BC〉와 〈아포칼립토〉이다. 〈이집트 왕자〉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통해서는 모세가 이집트를 탈출하게 되는 사건이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배태되는 근원이라고 서술하면서, 그 이집트 고대문명은 ‘지금 우리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문명’이라고 뜻밖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영화 또한 아는 만큼 보인다
잠시 이 책에 등장하는 영화들을 통해 세계사를 살펴보자. 영화 〈300〉은 스펙터클한 전투장면이 압권이다. 이 영화의 배경은 유럽의 입장에서 볼 때 동서 문명대립의 치열한 최전선이다. 300명의 스파르타 결사대가 수십만의 병력으로 치고들어오는 페르시아 군과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원 몰사하는 테르모필레 전투를 그렸다. 저자는 바로 이 테르모필레 전투야말로 얼마 후에 이어진 페르시아와의 해전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정신적 견인차 역할을 했고, 나아가선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제패, 훨씬 후대의 로마제국의 성립에까지 영향을 미친 대전투였음을 설명한다. 스파르타의 300결사대는 비록 전투에서는 졌지만, 역사라는 큰 물줄기에서는 유럽사의 정신적 응집력을 불러일으킨 중요 계기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일본의 유신지사 사이고 다카모리를 모델로 삼은 가츠모토가 알그렌(톰 크루즈 분)에게 묻는다.
“그래, 그 테르모필레 싸움에서 스파르타 군은 어떻게 되었나?”
“모두 전멸했지.”
그러나 역사 속에서 그들의 정신은 살아남았다. 저자는 그 정신력이 대항해시대 이후 세계를 지배한 유럽인의 정신적 출발점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아시아 세력(페르시아)과 유럽(당시의 그리스)의 대결, 즉 동서열전의 대전투에서 불굴의 기상을 보여준 당시 전투의 의미를 숙연히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영화 〈아고라〉〈장미의 이름〉〈천사와 악마〉를 통해서는 천 년 동안 유럽을 반이성의 암흑상태로 만든 기독교란 종교의 황폐성을 그리고 있다. 그런가 하면 〈킹덤 오브 헤븐〉에서는 십자군 전쟁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이권쟁탈전이었는가를 실감나게 문제제기하는 동시에, 폼 잡는 성직자들의 위선적인 행태를 따끔하게 꼬집고 있다. 저자는 이런 영화를 통해서 유대인과 아랍인은 원래 같은 민족이며, 종교 또한 같은 맥락에서 발전했으며, 이기적 야욕에 휩싸여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그 전쟁은 21세기의 현재에도 아직 끝나지 않은 채 현재진행형임을 절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대항해-중상주의-제국주의의 등장과 서세동점
유럽 세계는 16세기 무렵 콜럼버스, 바스코 다가마, 마젤란 등을 통해 대항해시대를 열게 된다. 이것은 인류문명사의 지극히 큰 사건이며, 특별한 문명접변의 대사건들이 터져나오게 된다. 〈미션〉은 탐욕스런 중상주의의 물꼬를 튼 서구인들이 신대륙에 와서 얼마나 처참한 약탈을 자행하는지, 나아가 신대륙 사람들을 인간 취급하지 않는 서양인들이 종교를 앞세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는지를 고발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의 축은 대항해시대를 고비로, 서세동점이 확실한 대세를 점해 이후 400여년간 전세계를 서구인들이 호령하게 된다. 일의대수 사이인 한중일 삼국은 이런 서세동점 시대에 저마다 다른 자세를 취하게 되고, 이는 향후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 중국은 아편전쟁 이래 공산당에 의한 새로운 중국 수립까지 근 100여년 동안 수천만 명이 죽음에 이르는 황폐한 역사를 겪는다. 한국은 굴욕적인 강화도 조약 체결 이후 결국 일본의 식민지 시대를 거쳐 1945년에야 연합국의 도움을 얻어 독립을 이룬다. 그러나 일본은 1853년 페리의 내함 이후 미국과 불평등한 통상조약을 맺은 이후 근대화에 박차를 가해 명치유신을 성공시키며 아시아의 기린아로 등장한다. 이후 조선을 강제적으로 병탄한 이후 근 50여년에 걸쳐 태평양 연안의 아시아 곳곳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이런 시대를 배경삼아 만든 영화가 중국의 〈황비홍〉, 미국에서 만든 〈라스트 사무라이〉이다. 〈황비홍〉은 서세동점의 시기에 치욕적으로 무릎을 꿇는 중국의 자화상을 보여주지만, 총체적으로는 무술이라는 매개를 통해 중국의 자존심을 세우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반면 〈라스트 사무라이〉는 요시다 쇼인, 후쿠자와 유키치, 사이고 다카모리로 이어지는 정한론 다툼 속에서 세이난 전쟁을 무대삼아 근대화와 사무라이 정신의 궁극적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를 천착해가는, 다분히 친일적인 영화이다. 우리는 이런 영화들을 통해서 한국, 중국, 일본의 저마다 다른 문명접변의 자세를 되돌아볼 수 있다. 그것은 우리의 미래를 세워가는 이정표 노릇을 해줄 수 있다.
거대한 역사 속에서 개인의 삶은 어떤 의미?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 포레스트의 어머니는 “인생이란 초콜릿 상자 같은 거야. 어떤 것을 먹게 될지 모르는 거란다.”라고 말한다. 어쩌면 감독은 이 대사를 통해 역사야말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초콜릿 상자 같은 것임을 말하고자 하지 않았을까. 2차 세계대전 이후 60년대 들어 미국 현대사는 엄청난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다. 68혁명정신이 범람하는 가운데, 자유와 체제저항을 부르짖는 젊은이들 사이에 베트남 전쟁이 자리잡고 있다. 부동의 세계최강 미국이 결코 패배할 리 없다고 생각한 이 전투의 패배로 인해 미국민은 엄청난 상실감을 겪게 된다. 세계의 평화를 위해 나선다는 자부심을 가진 미국인들에게 베트남 전쟁은 변명의 여지 없이 침략의 전?이었다. 그러나 치욕은치욕대로 남고, 전쟁의 패배는 고스란히 역사의 부채로 남고 만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바로 이런 미국의 현대사의 정중앙을 꿰뚫고 지나가는 시대물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런 시대사를 결코 무겁거나 어둡게 묘사하지 않는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우스꽝스런 춤, 애플 사의 등장, 베트남 전쟁, 중국과의 핑퐁외교 등등을 포레스트라는 개인의 삶 속에 절묘하게 버무려놓았다. 한편 영화의 첫 장면에는 깃털이 날아올라 포레스트의 신발 위로 떨어지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 깃털이 다시금 날아오르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인생이 역사라는 무대 위에서 깃털처럼 날아오르는 존재임에 불과하다는 암시를 넌지시 건네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날아오르는 깃털 속에서 인간의 삶은 여전히 계속 되고, 그런 인간의 살아있는 활동이야말로 역사를 만들어가는 중심축임을 의심하지 않게 만든다. 결국 이 영화가 전해주는 메시지를 생각해볼 때, 역사란 세계시민 혹은 각국의 한 개인개인이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근대적인 인간관의 발로는 아닐까.
영화에 숨은 꼼수, 강대국의 지배논리와 패권주의
숱한 미국 영화 속에서는 끊임없이 성조기가 난무한다. 아메리카 원주민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카우보이들을 영웅적으로 묘사하고, 베트남에 출현한 람보는 마치 동물을 사냥하듯 총질을 해댄다. 심지어 우주공상과학을 토대로 한 영화속에서도 어김없이 성조기는 휘날리며, 거기에 등장하는 모든 미국인 주인공은 선한 역할을 도맡아 한다. 그것이야말로 바로 강대국의 지배논리와 패권주의를 어김없이 드러내는 것이라는 비판을 면할 길 없다. 그런데 1978년 제11기 중전회의 이래 등소평이 권력을 잡아 개혁개방을 부르짖으며 경제개발에 나선 중국의 영화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며 독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영화 〈영웅〉에서 주인공(이연걸 분)은 진정한 벗들의 목숨을 희생시킨 대가로 진시황을 죽일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만, 마침내 ‘천하를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걸고 진시황을 살려둔 채 스스로 죽음의 자리로 나아간다.
이것은 장이모우 감독이 새롭게 등장한 중국의 신 중화주의를 내세우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즉 천하를 위해서 중국이라는 제국을 중심으로 한 과거의 ‘화이질서’의 재편을 꿈꾸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장이모우 감독은 베이징 올림픽의 개막식을 주도함으로써 중국 문명의 힘을 전세계에 아로새기고자 했다. 시바 료타로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올빼미의 성〉에서도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암살하러 들어간 주인공은 끝내 그를 살려두고 나온다. 바로 천하의 안정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기실 이런 세상을 바로잡을 이라는 뜻의 천하인이란 명분은 오다 노부나가나 도쿠가와 이에야스까지 그대로 이어진 정치적 명분이 아닐 수 없다. 비록 히데요시가 천하의 전쟁광임은 누구나 알지만, 그가 있기 때문에 천하가 안정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 히데요시는 일본의 전국시대가 마감되자 곧바로 조선침략에 나선다. 그것이 곧 7년간에 걸친 임진왜란이다. 바로 이런 것들이야말로 강한 자신을 중심으로 세계질서를 입맛대로 끌고 가려는 터무니없는 망상이 아닐 수 없다. 최근 2,30여년 동안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광풍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미국식 표준으로 세계를 동조화시킴으로써 지배구조를 공고히 하려는 꼼수가 분명한 것이다. 이 땅에서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은 우리가 현재로선 주변 강대국에 둘러싸인 약소국의 처지임을 분명히 자각함으로써, 강대국들의 이데올로기에 휘둘리지 않도록 늘 분명한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본문과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읽을거리
〈스크린에 숨은 세계사 여행〉의 각 장 앞에 예로 든 20여편의 영화와 ‘함께 보면 더 좋은 영화들’과 ‘함께 읽으면 더 좋은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아마도 이렇게 영화와 세계사를 읽어나가다 보면 누구라도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영화의 얼리 어답터 혹은 수준높은 민간 영화평론가 역할을 하게 되지 않을까. 각 장 말미에는 부록으로 세계사를 공부하다 보면 누구나 떠올리게 되는 문제점들에 대한 저자 나름의 답변을 제시해놓았다. 가령 선사와 역사의 경계, 종교의 발생 이유, 일본의 정한론, 한국의 다민족 국가론 등에 관해 나름대로 정리된 틀을 제공한다. 때로는 상식으로만 바라보는 세계사 문제에 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기도 한다. 중국사를 이루는 한족과 이민족의 쟁패 문제, 유대인의 혈통 문제, 한국을 침략하는 일본인들의 정신 구조 문제 등은 한여름에 먹는 얼음 맛처럼 독자의 정신을 청량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 응모방법: 이 책을 읽고 싶은 이유를 적어주세요.
◆ 서평단 모집 기간 : 12월 12일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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