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고싶은시33

당신이 보고 싶은 날은 오늘은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그립고 맑은 날은 맑은 대로 그립더니 오늘은 당신이 아프도록 보고 싶습니다. 보고 싶을 때는 이렇게 아프도록 보고 싶은 날은 당신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움을 지나, 지금은 보고 싶은 마음까지 달려 나와 날 이렇게 힘들게 합니다. 볼 수 없는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구름은 먼 산을 보고 지나가고 바람도 나뭇잎만 흔들며 지나갑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그리움이 보고 싶은 마음까지 데리고 나와 날 이렇게 힘들게 합니다. 힘이 들어도 참을 수 있는 것은 아프도록 보고 싶어도 참아 내는 것은 볼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보겠다는 바람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울 때는 그리움으로 달래고 보고 싶을 때는 보고 싶은 마음으로 달랩니다... 2023. 10. 7.
쉽게 씌어진 시 /윤동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 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요즘같은 시기에 윤동주님의 이 시가 마음을 적신다. 우리가 그동안 배우고 알고 분노했던 사건들이 와르르 무너진 기분...' 2023. 3. 10.
즐거운 편지 ... 황동규 즐거운 편지 시/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자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2023. 2. 12.
그대 가까이 2 .. 이성복 이성복, 그대 가까이2 자꾸만 발꿈치를 들어 보아도 당신은 보이지 않습니다 때로 기다림이 길어지면 원망하는 생각이 들어요 까마득한 하늘에 새털구름이 떠가고 무슨 노래를 불러 당신의 귓가에 닿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만나지 않았으니 헤어질 리 없고 헤어지지 않았어도 손 잡을 수 없으니 이렇게 기다림이 깊어지면 원망하는 생각이 늘어납니다 2023. 2. 12.
우화의 강 -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 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어야겠지만 한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 2023. 1. 28.
가을이야기​ 가을이야기​ (용혜원) ​가을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숲길을 지나 곱게 물든 단풍잎들 속에 우리들이 미처 나누지 못한 사랑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가을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푸른 하늘 아래 마음껏 탄성을 질러도 좋을 우리들을 어디론가 떠나고 싶게 하는 설레임이 있었습니다 ​가을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갈바람에 떨어지는 노란 은행잎들 속에 우리들의 꿈과 같은 사랑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호반에는 가을을 떠나 보내는 진혼곡이 울리고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가을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한잔의 커피와 같은 삶의 이야기 가을이 거기 있었습니다. 2020. 11. 2.
엄마 걱정 엄마 걱정 / 기형도 ​ ​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지 오래 ​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한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 2019. 3. 9.
산 속에서 - 나희덕 산 속에서 - 나희덕 길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 멀리서 밝혀져 오는 불빛의 따뜻함을 막무가내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있다는 것이 인간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지 산속에서 밤을 맞아본 사람은 알리라 그 산에 갇힌 작은 지붕들이 .. 2019. 1. 18.
단풍 드는 날 / 도종환 단풍 드는 날 / 도종환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 2018. 11. 27.
나무는 – 류시화 나무는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그러나 굳이 바람이 불지 않아도 그 가지와 뿌리는 은밀히 만나고 눈을 감지 않아도 그 머리는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있다 나무는 서로의 앞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그러나 굳이 누가 와도 흔들.. 2018. 10. 8.
9월 - 이외수 - 9월 가을이 오면 그대 기다리는 일상을 접어야겠네 가을역 투명한 햇살 속에서 잘디잔 이파리마다 황금빛 몸살을 앓는 탱자나무 울타리 기다림은 사랑보다 더 깊은 아픔으로 밀려드나니 그대 이름 지우고 종일토록 내 마음 눈시린 하늘 저멀리 가벼운 새 털 구름 한 자락으로나 걸어 두.. 2018. 9. 10.
혜화역 4번 출구 혜화역 4번 출구 -이상국- 딸애는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바닥에서 잔다 그애는 몸을 바꾸자고 하지만 내가 널 어떻게 낳았는데······ 그냥 고향 여름 밤나무 그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바닥이 편하다 그럴 때 나는 아직 대지의 소작이다 내 조상은 수백년이나 소를 길렀는데 그애는 .. 2018. 9. 7.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오규원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잠자는 일만큼 쉬운 일도 없는 것을, 그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밤 1시와 2시의 틈 사이로 밤 1시와 2시의 공상 틈 사이로 문득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내 머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퍼붓는다. 할 말 없어 돌아누워 .. 2018. 8. 28.
백일홍 - 백승훈 - 제아무리 여름이 뜨거워도 어김없이 백일홍 꽃은 피고 석달 열흘 붉은 꽃빛에 뜨락이 환하다 꽃밭에 앉아 가만히 떠올려본다 사는 일이 캄캄하여 차라리 눈 감고 싶을 때마다 내 안을 환히 밝혀주던 백일홍 꽃 같은 그 한 사람을 시인의 마음같은 적이 언제였나 생각해본다. 어린시절 학.. 2018. 8. 17.
동그라미와 직선 /고명 지루할 거야 나무들은 꽃을 피우는 일도 그만 신물이 날 거야 해마다 다른 꽃을 피울 수 있다면야 몰라, 같은 빛깔 같은 모양 게다가 환히 알고 있는 순서 그대로 헤어지는 일에도 이골이 났을 거야 가을엔 모두를 떠나보낸다지만 잎이 떨어진 자리마다 어느새 새봄을 감춰 놓고 있던 걸 .. 2018. 8. 17.
어머니 / 호인수 집 떠날 때 들고 나온 손가방 밑창 아래 누런 갱지에 정성껏 싼 만 원짜리 열 장 어머니 당신은 그 갱지에 서툰 글씨로 밤새껏 저에게 편지를 쓰셨습니다 제발 술 많이 먹지 말고 모든 사람을 꼭같은 마음으로 대하고 무슨 일이든 앞장서 나서지 말고 남들처럼 자동차 면허증이나 하나 따.. 2018. 8. 17.
채송화 채송화 여름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꽃밭 화단 가장 앞자리에 자리한 키 작은 채송화는 바늘만한 잎으로 태양을 맞이하고 있다 미처 떠나지 못한 더위는 어젯밤 이슬 한모금으로 한 낮의 졸음을 쫒기엔 힘겨운 듯 속살 타는 아픔으로 누워있다 어머니, 내 어머니는 키 작은 채송화였다 대.. 2018. 6. 24.
당신이 보고 싶은 날은 당신이 보고 싶은 날은 -윤보영- 오늘은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그립고 맑은 날은 맑은 대로 그립더니 오늘은 당신이 아프도록 보고 싶습니다. 보고 싶을 때는 이렇게 아프도록 보고 싶은 날은 당신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움을 지나, 지금은 보고 싶.. 2018. 6.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