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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스테이크 스테이크 스테이크 (지혜의나무) 10

by 칠면초 2012. 1. 30.

 

 

 

 

 

 

 

 

 

마음의 언어를 통해 바라보는 시(詩)의 세계

수덕 스님의 시는 시공(時空)을 탈피하여

어디든 자유롭게 드나든다

“깨달음이 없다면 길을 떠나라!

수덕스님의 첫 시집『스테이크 스테이크 스테이크』는 불교의 사상에 하나인 시공時空을 초월한 순환적 윤회의 시세계를 노래했다. 영원한 수행자를 자처하는 수덕스님의 시 세계는 오늘도 시공을 넘어 바람과 함께 춤을 추지만 언제 다시 바랑을 짊어지고 떠날지 모른다.

그는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한 자리에 서서 / 자기를 지켜 낸 모든 것이 아름답듯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이 세상에서 자기세계를 잃지 않고 “자기가 가야 할 길을 가는 사람은 아름답다.”고 노래한다.

이처럼 (「길」)은 시인의 꿈처럼 아득한 시어들이 펼쳐지고 시를 읽다보면 어느새 바다에 떠있는 외딴섬이 연상된다. 지구촌을 누비는 여행자, 그는 행복을 위해 걷지만 정작 낯선 이국땅에서 가끔 외로움에 젖기도 한다. 어쩌면 바다 위의 홀로된 섬처럼 스스로를 타자로부터 분리하는지도 모른다. 수덕스님의 마치 경구를 읊는 듯 시집 곳곳에 배치된 언어는 그 자체만으로 “생각을 만들”게 하고 “가야 할 운명의 길” (「길에 서다」)을 스스로 열게 한다. 나는 길 위에 쓴 행인의 역사를 진솔하게 노래한 스님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우리는 각자의 인생길로 접어드는 중이다. 때로는 길 위에서 망설이다가 이내 선택한 길을 향하여 힘찬 걸음을 계속한다. 혹자는 자신이 ‘걸어온 길’이 특별하다고 여기지만 실은 그 이전부터 누군가의 전철을 반복하는 것이 자연스런 삶의 행로였다.

시적 화자도 “길은 / 생각하며 걷던 누군가의 길을 내가 다시 밟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우리에게 펼쳐진 무수한 길은 낯선 미로가 아닌 친숙한 세계이다. 너와 내가 함께하는 ‘동행의 역사’ 이것이 바로「길」이 추구하는 정신이다.

 

수덕스님의 시는 서정을 바탕으로 감각을 일깨운다.

시인이 들려주는 목소리는 “겨울 하늘의 새벽별”(「겨울 새벽별」)처럼 맑고 엄숙하다.

섬광처럼 비치는 고독과 추억들, 그 속에서 “생각 가득한 그리움”(「명상 2)으로 방황하지만 “비가 그치면 / 하늘에서 무지개가 나타나듯이”(「자유」) 자연스레 마음이 순화된다.

마침내 환멸의 세계에서 도망친 순간 “내 존재가 / 존재의 빛으로 쏟아져 내릴 때”(「눈물」) 과거는 저만치 물러난다. 어느덧 겨울밤은 깊어가고 꿈처럼 “그대 가는 길에 포근한 눈발이 날”(「다인」)릴 때, 비로소 나는 다시 태어난다.

불가에는 오래 전부터 ‘중 벼슬은 닭 벼슬’이란 이야기가 격언처럼 내려왔다. 부모와 형제, 사랑하는 사람들, 세속적 욕망과 명예, 지위 등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오직 도를 이루어 부처가 되고자 하는 목적으로 출가의 길을 떠나신 분들이 스님들이다. 그 분들에게 절집의 벼슬이란 한낱 수행의 장애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수덕스님은 오직 수행자로서의 삶을 위해 바랑 하나 짊어지고 수행의 길을 떠났다가 돌아오고 다시 또 떠날 차비를 하실 것이다. 수덕스님이 방랑의 시인인 이유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더욱 자유로울지 모른다.

 

- 김선주 / 시인, 문학평론가

❚ 추천의 글

 수덕스님의 시에는 진한 외로움과 사랑이 묻어 있다.

그 외로움과 사랑의 결을 켜켜이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축축한 그리움에 젖게 된다. 그러나 그 외로움과 사랑은 감각적 외로움과 사랑으로서의 외로움과 사랑이 아니다. 그 외로움과 사랑은 그의 전엄처럼 주이상스(jouissance : 이상과 현실을 넘어서는 죽음의 영역, 또는 상징계를 넘어서는 즐거움)로서의 외로움과 사랑이다. 그러므로 그 외로움과 사랑 속에는 깨갈음으로서의 그녀가 있고, 누이가 있고, 플라스틱 김치냉장고가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마침내 그의 수덕산에서 일평생 그를 이끌어왔던 그의 유전자 지도를 만나게 된다. 참 아릿하다.  

 

- 승한 스님 / 시인

 

 

❚ 추천의 글

수덕산 수덕나무에 수덕꽃이 피었다. / 대지의 정령들이 웅성거리고 / 하늘엔 무지개 걸렸다.

우주정원에 경사 났으니 / 모두 구경 갈 일이다. / 수덕 스님은 이미 내빼고 / 거기엔 없을 터이지만......

그 양반 찾으려면 / 꽃 속으로 들어가거나 / 우주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구태여 그럴 것까진 없겠지. / 있으나 없으나 꽃향기 이미 허공에 가득하니......

 

- 정신세계원 원장 봄날

 

 

❚ 지은이 / 수덕 스님에 대하여

 수덕스님은 인도에서 간디자연치료대학을 졸업하고 이 학교에서 카이로프락틱을 강의하였다.

그 후 간디 자연치료병원과 헤르메스병원 등에서 제자들과 의료 봉사활동을 하며 의사들을 상대로 자연치료에 대하여 강의하였다.

인도에 머물면서 몇 번에 걸쳐 달라이 라마와 만난 것을 계기로 인도, 네팔 등에서 명상여행을 하며 글로써 국내에 이름을 알리는 한편 미국 샌디에고의 막스거슨연구소와 멕시코의 티후아나 자연치료병원에서 수학하였다. 그리고 뉴욕 Greenwich Village meditation center에서 명상지도를 이끌었으며 그림과 사진 등 여러 예술분야에 실험적 전시회도 열었다. 그러면서 서울문학에 추천작가로 활동하다가 '문학과 문화'에 신춘문예 시 부분에 당선되었다.

귀국 후에는 가평의 대원사에 템플스테이관장을 역임하고 지금은 서울의 불교문화원에서 명상을 지도하며 불교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차례

시인의 말 / 지랄병 났나? / 어느 봄날 / 봄볕 / 한 물건 / 그리움으로 산다 / 투 아웃 / 푸른 집 / 두보에게 / 스테이크 스테이크 스테이크 / 수덕산에는 수덕이 산다 / 볼록거울 사이로 바람이 불 때 / / 나를 보며 / 춤추는 예언 / 그때 챙기세요 / 너는 그곳에 있다 / 그녀 / 부처를 죽이다 / 노숙 / 귀환 / 추위에 흐느적거리는 영혼에 대한 영적고찰 / 아스팔트 / 플라스틱 김치냉장고 / 기찻길 옆 작은방 / 길에 서다 / / 자유 / 마지막 사랑 / / 상실의 시대 / 춘식아 / 죽음을 기다리며 / 여름 / 이젠 / / 화장하기 / 꽃순이 / 눈물 / 욕망이 찾아오는 길 / 명상1, 2, 3 / 다인 / 동안거 / 이렇게 사랑을 논하다 / 친구에게 / 디아스포라와 가뤼의 혼재를 말하다 / 1, 2 / / 한 개의 상징과 몇 개의 비유에 대하여 / 여행 / 후생에는 / 그대 뉘시우 / 겨울 새벽별 / 사랑1, 2 / 나는 홀씨 / 그녀가 오려나 / Dark and Bright / 즉흥시1, 2 / 무제2 / 뉴욕에서 / 만왕의 왕이시어 / 가면 persona / 노가리 한 마리 / 누님1,2,3,4,5 / 사랑3 / 산다는 것 / 고향의 강 / 허수아비 / 사랑4,5,6 / 사이 / 검은 상자 / / 바라문 가는 길 / 괭이갈매기 / 독도 / 무제 / 사람은 누구나 아픔이 있지 / / 부활 / 산사가는 길 / 해설 (시공을 초월한 순환적 시세계)  

 

 

❚ 해설

*시공時空을 초월한 순환적 시세계

- 수덕스님의 첫 시집『스테이크 스테이크 스테이크』

 

김선주 / 시인, 문학평론가, 건국대학교 교수

 

수덕스님의 첫 시집 『스테이크 스테이크 스테이크』는 서정을 바탕으로 감각을 일깨운다. 시인이 들려주는 목소리는 “겨울 하늘의 새벽별”(「겨울 새벽별」)처럼 맑고 엄숙하다. 섬광처럼 비치는 고독과 추억들, 그 속에서 “생각 가득한 그리움”(「명상 2)으로 방황하지만 “비가 그치면 / 하늘에서 무지개가 나타나듯이”(「자유」) 자연스레 마음이 순화된다. 마침내 환멸의 세계에서 도망친 순간 “내 존재가 / 존재의 빛으로 쏟아져 내릴 때”(「눈물」) 과거는 저만치 물러난다. 어느덧 겨울밤은 깊어가고 꿈처럼 “그대 가는 길에 포근한 눈발이 날”(「다인」)릴 때, 비로소 나는 다시 태어난다.

 

1. 길 위에 쓴 행인의 역사

 

우리는 각자의 인생길로 접어드는 중이다. 때로는 길 위에서 망설이다가 이내 선택한 길을 향하여 힘찬 걸음을 계속한다. 혹자는 자신이 ‘걸어온 길’이 특별하다고 여기지만 실은 그 이전부터 누군가의 전철을 반복하는 것이 자연스런 삶의 행로였다.

시적 화자도 “길은 / 생각하며 걷던 누군가의 길을 내가 다시 밟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우리에게 펼쳐진 무수한 길은 낯선 미로가 아닌 친숙한 세계이다. 너와 내가 함께하는 ‘동행의 역사’ 이것이 바로「길」이 추구하는 정신이다.

 

길은

생각하며 걷던 누군가의 길을 내가 다시 밟는 것이다

 

한 자리에 서서

자기를 지켜 낸 모든 것이 아름답듯이

자기가 가야 할 길을 가는 사람은 아름답다

 

- 「길」부분

 

가지 않은 길은 늘 아쉬운 미련이 남는다. 화창한 어느 날 “숲속으로 난 작은 길”을 통해서 곧장 걸었다면 이제는 좀 더 향기로운 생활을 하고 있을까. 어두컴컴한 “도시의 골목 끝 후미진 길”을 택했다면 지금쯤 평범한 소시민의 기막힌 일상을 맞이하고 있겠지.

시적 화자는 “사람의 손이 잘 닿지 않는 길 어디쯤에”서 그 옛날 자신이 떠나보낸 추억 한 자락을 슬며시 찾아가고 있다. 어느새 “하얀 모자를 쓰고” 엷게 미소 짓는 여인의 모습이 저만치에서 보인다. 그녀가 “창문 달린 베란다에 고개를 내밀”며 누군가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안타깝게도 그들 연인은 사랑했지만 곧 헤어져야 했다. 이별 후 그녀와 관련된 모든 기억을 지우려 애썼건만, 지금까지도 “첼로의 저음”처럼 나지막하게 “플롯의 슬픈 랩소디”처럼 애절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한 자리에 서서 / 자기를 지켜 낸 모든 것이 아름답듯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이 세상에서 자기세계를 잃지 않고 “자기가 가야 할 길을 가는 사람은 아름답다.” 수덕스님의 마치 경구를 읊는 듯 시집 곳곳에 배치된 언어는 그 자체만으로 “생각을 만들”게 하고 “가야 할 운명의 길” (「길에 서다」)을 스스로 열게 한다.

 

2. 고독을 비추는 시간의 향기

 

미지의 세계처럼 아득한 시「섬」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망망대해에 떠있는 외딴섬이 연상된다.

지구촌을 누비는 여행자, 그는 행복을 위해 걷지만 정작 낯선 이국땅에서 가끔 외로움에 젖기도 한다. 어쩌면 바다 위의 홀로된 섬처럼 스스로를 타자로부터 분리하는지도 모른다.

 

는 시가 되고

가 되다

 

시애틀에서 보았던

고래가 포항으로 돌아왔다

기나긴 여정에

피곤함도 없이 나를 불렀다

 

네 줄의 현에

활이 미끄러지듯 첼로를 쓰다듬을 때

그녀는

남쪽의 텃밭에서

배추를 손질하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

여기저기 밝힐 때

아직 놀이를 마치지 못한 아이들은

어둑어둑한 골목길에 아쉬움을 뱉는다

 

아직

그녀는

포항에서

돌아오지 않았음에도.......

 

- 「섬」전문

 

누군가의 노래처럼 고독이 무섭게 엄습해온다. 불현듯 ‘섬’ 그 곳에서도 생명이 탄생하고 “무는 시가 되고 / 가 되”어 인류의 역사는 더욱 풍성해진다. 태초에 모든 것은 무에서 시작되고,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그들의 어미로부터 나온다. 사람이 그렇고 주변의 동식물이 다 그렇다. 과연 생명의 원천인 ‘어미’는 어디에서 태어났는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식으로 점점 더 생각의 골은 깊어지고, 해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지만 명쾌한 답을 구하기 어렵다.

무슨 일인지 “시애틀에서 보았던 / 고래가 포항으로 돌아왔다” 시애틀에서 포항까지의 간극을 물리적 거리로 환산하면 분명 “기나긴 여정”이다. 그 와중에 고래는 지치지도 않는지 “피곤함도 없이 나를 불렀다.” 나곧 시적 화자를 부르는 고래의 정체는 무엇인가.

언제 어디서나 “나는 지금도 잊지 않습니다. / 그대를 처음 만났던 때를”(「뉴욕에서」) 진정 사랑한 그대는 “하늘이 있어 땅이 있듯이”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생명처럼 소중한 존재이다. “어둠은 빛의 존재로 가능한 것처럼” 우리는 서로에게 영원한 등대燈臺로서 절대적 가치를 지닌다. 이제 그대를 저 멀리 떠나보낸다. 세계의 “상실은 또 하나의 세계를 꿈꾸며 / 관세음보살의 미소처럼 싱그럽”(「뉴욕에서」)게 다시 피어난다. 어느 한 쪽이 부재한 상태에서도 늘 함께 호흡한다. 그들은 삶과 죽음을 초월하여 순환적 세계를 꿈꾸는 것이다. 마치 시애틀의 고래가 어느새 “남쪽의 텃밭에서 / 배추를 손질하”며 웃음 짓는 소박한 여인 “그녀”로 환생한 것처럼.

외딴섬마냥 각자의 세계로 숨어든 사람들, 그 속에 갇힌 자아가 보인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 / 여기저기 밝힐 때”면 잠들었던 섬들이 일제히 눈을 뜬다. 저녁이 다가오고 “아직 놀이를 마치지 못한 아이들은 / 어둑어둑한 골목길에 아쉬움을 뱉는다.” 한 아이는 낮에 쌓은 모래성을 쉽게 무너뜨리고 또 다른 내일을 기약한다. 섬 안에 갇혔던 “네 줄의 현에” 설익은 자유를 담고 “첼로”의 그윽한 선율에 마음을 빼앗긴다. 창문 밖에 낯익은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아직 / 그녀는 / 포항에서 / 돌아오지 않았음에도” 그녀의 온기가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수덕의 시는 시공時空을 탈피하여 어디든 자유롭게 드나든다. 순식간에 시애틀과 포항을 왕복하고, 고래에서 여인으로, 아이에서 어른으로, 타자에서 자아를 기점으로 끝내 최후의 불자로 거듭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가 노래하는 윤회이며 재생의 힘이다.

 

3. 매혹의 서사, 그대를 향한 노래

 

시인은 역사에 흐르는 특별한 사랑마저 흔히 접하는 우리들 이야기로 보편화시킨다. 때로는 지나간 사랑이야기가 현실의 아픔과 갈등을 치유하는데 큰 힘이 된다.

프랑스 혁명기에 나폴레옹의 등장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당대 최고 영웅을 순식간에 매료시킨 조세핀은 마지막까지 그의 영혼을 거머쥐었다. 그럼에도 불신과 결핍의 날들은 계속되고 “얼마 남지 않은 추억까지 / 웨딩의 슬픈 곡조에 파묻힌” 채 그녀는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다.

 

세인트헬레나로 가면서 나폴레옹은 주치의 앙등 마르사에게 말했다

내가 죽은 뒤

내 위장을 자세히 부검해 보라고

아침 음식 접시 위의 커다란 스테이크처럼

밤색 소스를 바른 채

그녀는 하얀 침대 위에 생소하게 누워있고

 

오랜만에 쬐는 낯선 조명은

얼마 남지 않은 추억까지

웨딩의 슬픈 곡조에 파묻히게 했다

 

- 「스테이크 스테이크 스테이크」부분

 

어느 날 누군가의 결혼식 장면을 지켜보다가, 문득 상상의 세계로 접어든다.

그토록 원했건만 “조세핀은 과연 결혼식을 올려 보기나 했을까.” 역사적 문서에 따르면 나폴레옹과 조세핀은 성대한 결혼식을 치렀다고 전해진다. 황당하게도 시 속의 조세핀은 “웨딩마치에 맞춰 부케를 들어 본”적도 없는 비운의 신부로 묘사된다. 이와 동시에 “부케에 그리움 하나씩을 꽂아 보긴 했을까”란 설의법으로 그녀에 대한 연민의 정을 한층 두텁게 한다.

시적 화자는 “옆자리에 앉은 여자가 몇 캐럿의 다이아를” 몸에 지니고 자랑하듯 “뱀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며 치근”대도 그 순간 흔들리지 않으려 애쓴다.

웃음소리와 소음이 가득한 공간에서 “모피 코트 위에 걸어놓은 귀걸이를 스테이크 접시 위에 내려놓고” 주위를 한번 휘익 둘러본다. 음악 소리가 흐르는 가운데 “스테이크”를 썰듯이 우아한 자태로 “나는 칼질을 했다.” 어디선가 “신부 입장을 알리는 장내 멘트와 함께 다시 수근”대는 소리가 들려오고 급기야 “낯선 병정들의 얼굴이 춤추기 시작”한다. 누군가 그리워 고개를 들지만 “익지 않은 시선들이 어설프게 교차하고” 잘못된 만남의 예고인지 “콜라의 맥주 거품처럼” 들떠서 제대로 소통이 안 된다.

마침내 그의 유언에 따라 “나폴레옹의 위장을 들어내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포착된다.

그것은 놀랍게도 “이미 추방당한 조세핀이 알몸으로 / 그 속에 다시 세 들어 살고 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운명의 여인을 가슴에 묻고 떠나간 나폴레옹, 그의 심장은 아직도 불꽃처럼 뜨겁고 활기차다. 이와 함께 “흑백 사진은 이제 더 이상 추억 놀이가 아닌 단순한 흑백 놀이임”을 깨닫는다.

이처럼 시인이 전하는 시「스테이크 스테이크 스테이크」는 한편의 영화처럼 드라마틱하게 감각적으로 펼쳐진다.

 

4. 방황하는 자아, 를 만나다

 

불자의 생활은 여타의 속인들과 비교하면 정결하기 그지없다. 매일 불경을 읊고 검소한 옷차림과 채식 생활 등으로 심신수양에 힘쓴다. 세인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일을 그들은 기꺼이 맡아 극복해낸다. 그럼에도 불완전한 사람이기에 때로는 「욕망이 찾아오는 길」모퉁이에서 ‘방황하는 자아’로 돌변할 때가 있다.

 

뿌연 도시

칙칙한 비

듬성듬성 돋은 내 까까의 흰머리 위에서

찌그러진 우산을 비집고

고개를 내미는

빗방울이 굴러 떨어질 때

바로 그때

 

- 「욕망이 찾아오는 길」전문

 

시인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욕망의 형태를 선명한 이미지로 형상화한다. 안개처럼 모호한 도시의 얼굴이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엉켜 기괴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흠칫 놀라다가도 이내 “뿌연 도시 / 칙칙한 비”가 내리는 길목에서 잠시 회상에 잠긴다. 어느새 “듬성듬성 돋은 내 까까의 흰머리 위에서 / 찌그러진 우산을 비집고” 아우성치는 모습이 애처롭다. 문득 “고개를 내미는 / 빗방울이 굴러 떨어질 때 / 바로 그때” 무슨 일이 생길지 의아한 순간이다. 그토록 애써 깎은 머리로 청렴을 원했건만 언제든 비집고 들어오는 “욕망”의 그늘아래 또다시 무너지고 만다. 아름다운 추억이 욕망의 멍에를 쓰고 “내 까까의 흰머리”는 온통 세속의 먼지로 뒤덮인다. 숭숭 뚫린 구멍사이로 바람이 분다. 추억으로 떨어져 내리는 빗방울과 그 허허로움, 적막의 흰 바람이 저만치 홀로 가고 있다.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고 성공 없이 슬픈 날에도 화자는 힘써 견뎌왔다. 빗물에 씻긴 마을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그는 아직 살아있고, 흙처럼 겸허히 살고프다.

 

태곳적부터

인간의 죽음은 흙이 되고

나무들의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런가 보다

나도 지난밤 꿈에

초록 나무숲의 본향에서

비단결 같은 낮잠을 청한 것을 보니

 

- 「사이」부분

 

누구나 알지만 정작 모르는 것이 “인간의 죽음”일 것이다. 시인은 “초록 나무숲”을 그의 “본향”으로 지칭하며, 이와 연계하여 “인간의 죽음은 흙이 되고 / 나무들의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재생의 원천으로 노래한다. 이것은 비단 개인뿐만 아니라 세상의 무수한 이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 아득한 옛날부터 “인간의 삶은 그렇게 돌고 돌아 / 하나의 원으로 이루어지”며 이런 현상을 순환론이나 불교의 윤회설로 제시한다. 시적 화자는 지극히 평범한 어휘들의 나열 속에서 묵묵히 구도자의 삶을 이어간다. 그는 “삶에서는 당당하고 겸손하며 / 죽음에는 용기와 깨달음으로 맞이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발원한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세계, 그곳은 어디쯤일까. 죽음 너머 저편에서 또 다른 삶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이처럼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미학적 거리 「사이」는 끝없이 되풀이되는 인류의 역사이며, 지금도 계속된다.

 

 

❚ 표4 글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한 자리에 서서 / 자기를 지켜 낸 모든 것이 아름답듯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이 세상에서 자기세계를 잃지 않고 “자기가 가야 할 길을 가는 사람은 아름답다.(「길」) 시인의 꿈처럼 아득한 시어들이 펼쳐지고 시를 읽다보면 어느새 바다에 떠있는 외딴섬이 연상된다. 지구촌을 누비는 여행자, 그는 행복을 위해 걷지만 정작 낯선 이국땅에서 가끔 외로움에 젖기도 한다. 어쩌면 바다 위의 홀로된 섬처럼 스스로를 타자로부터 분리하는지도 모른다. 수덕스님의 마치 경구를 읊는 듯 시집 곳곳에 배치된 언어는 그 자체만으로 “생각을 만들”게 하고 “가야 할 운명의 길” (「길에 서다」)을 스스로 열게 한다.

 

- 김선주 /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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