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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꽃피는 삶에 홀리다 (생각의나무) 30

by 칠면초 2009. 4. 10.

꽃 피는 삶에 홀리다

                                손철 ․ 에세이

 

 

 

 

 

 

“사람과 사랑에 취해 시처럼 그림처럼 인생을 색칠하는

손철주의 황홀경”




■ 심상찮은 글쟁이와 ‘문장의 탄생’


모든 훌륭한 에세이에는 글쓴이의 품격이 녹아들어 있다. 이양하나 페이터, 김훈이나 장 그르니에의 에세이가 사람들을 감염시키는 건, 그들의 삶이 구현하는 품격이 바로 육성이 되어 매혹적인 질감을 전하기 때문이다. 글은 곧 사람이라는 뷔퐁의 말을 전제하지 않더라도 글쓴이의 품격이 육화된 것이 바로 문장의 독특한 체體와 류流를 만든다. 손철주는 타고난 겸양으로 자신의 이재異才를 가리는 사람이지만, 그의 산문은 굳은 바위를 곱게 빻아 만든 가루로 수를 놓는 것마냥 옹골차고 웅숭깊다. 에세이 문학의 오랜 전통이 뻔한 신변잡기와 뻔뻔한 노출과다증으로 흐트러지고 있는 요즈음, 가히 우리 시대의 드물게 곧은 명문장이라 할 만하다. 이를 손철주체라 부르면 어떨까.

『꽃 피는 삶에 홀리다』는 미술 칼럼니스트로서 그동안 그가 보여주었던 전문가로서의 정치하고 미려한 감식안을 우리네 삶에 들이댄 결과물이다. 다시 말해, 만화경처럼 펼쳐진 우리네 삶이 가진 보편타당한 질서와 형편을 살피는 글들만을 묶어, 우리 시대 또 하나의 심상찮은 문장가로서 손철주의 탄생을 알리는 산문집이다. 지금은 최고의 작가가 된 김훈이 『자전거 여행』이라는 산문집을 통해 문장가로서 자신의 문제적 존재감을 증명해 보였듯, 손철주는 이 책에 이르러, 자신의 숨길 수 없는 재능을 압도적으로 선보인다.   


■ 순결하고 농염한 산문의 매혹에 빠지다


담장 너머로 개나리, 진달래, 목련이 한창이다. 봄보다 먼저 도착한 꽃을 보며 사람들은 봄을 맞으려는 준비로 설렌다. 속도에 떠밀려서 정신없이 살고 있는 우리 삶에도 꽃 같은 존재는 있을까? 단조롭기만 한 일상의 사이사이로 화사한 얼굴을 내미는 꽃 같은 존재들. 『꽃 피는 삶에 홀리다』의 저자인 손철주는 그것이 사람이고, 사랑이고, 예술이라고 말한다. 일상에서 마주친 작은 일 하나에서 인정을 생각하고, 한시 구절 속에 담긴 한 여인의 기구한 삶에 가슴 아파하는 순간순간들이 모두 봄 햇살처럼 빛난다.

이 책은 대표적인 미술 스테디셀러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그림 보는 만큼 보인다』를 통해 쉽고 편안하게 미술을 소개해 주었던 미술 칼럼니스트 손철주의 사람과 예술, 사랑에 대한 농염하고 매혹적인 미셀러니다.

저자는 오랫동안 신문사에서 미술 담당 기자로 있으면서 미술에 대한 글을 써왔고, 현재 학고재 주간이자 사단법인 ‘우리문화사랑’의 운영위원으로 일하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예술과 더불어 살고 있다. 그는 많은 문화인들과 교유하며 영향을 주고받았는데, 이런 만남들이 삶에 얼마나 많은 윤기를 더하는지, 또 삶의 소소한 면면이 얼마나 큰 깨달음을 주는지 그의 글을 읽으면 알 수 있다. 매일 만나는 가족들의 말 한마디에서 얻은 통찰과 작은 예술품 한 점에서 얻은 감화는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달되어 인생이라는 황홀경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 “잡하고 농탕한 손철주의 트로트 본색!”


 봄날에 핀 꽃처럼 돌아보면 짧아서 꿈같은 인생에 대한 아쉬움과 인생길에서 만난 정다운 사람들, 사랑하는 예술에 대하여 저잣거리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들려주듯 어깨의 힘을 풀고 솔직담백하고 유머러스하게 털어놓았다. 그래서 저자는 스스로 ‘난잡하고 농탕한 트로트 본색’이라고 밝혔다. 이제까지 독자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들려주었던 미술 이야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솔직한 자신의 면면을 드러내 보인다. 하지만 꽃망울을 터뜨리기 직전 숨 막히는 순간처럼 아름다운 문체의 긴장감은 팽팽하고, 한시와 적절히 어울린 글들은 뛰어난 완결성을 보인다. 다시금 마음을 붙잡게 만드는 세상과 인생을 관조하는 깊은 혜안은 놀랍고, 대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따뜻한 시선은 책을 읽는 내내 아슴아슴하면서 가슴을 훈훈하게 데운다. 그의 인생이 만만찮은 내공으로 이 한 권의 책에 담겨 있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총 3장 50개의 꼭지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가족, 지인, 음식 등을 통해 발견한 인생사의 즐거움과 깨달음을 다룬 글이고, 2장은 시바 료타로, 이병주, 고려 충선왕 등 감동과 회한을 주었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3장은 신윤복과 김홍도의 춘화부터 19세기 영국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의 <눈먼 소녀>까지 동서양을 넘나들며 예술품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 한국화가 사석원에 대한 각별한 분석과 흥미로운 해설이 돋보이는 글도 실려 있다.

 이 책은 여러 지면을 통해 저자가 소개한 적이 있는 글 가운데 산문의 매혹과 인생의 연륜이 느껴지는 좋은 글만 추려 실었다. 비록 형식은 수필이지만 그의 묵직한 삶의 울림은 젊은이들에게 멘토가 되어주기에 충분하며, 중년의 독자들에게는 봄날 함께 길 떠나고 싶은 동무가 되어줄 것이다.


■ 『꽃 피는 삶에 홀리다』 속으로


*1장 ‘꽃 피는 삶에 홀리다’


스님이 토굴로 출발하며 내게 전화하셨다. 잘 가시라 잘 있어라 인사 끝에, 송한필의 시가 탐났다고 이실직고했다. 스님은 알은 척하며 한마디 던지신다. “피고 지는 꽃 연연하지 말고 비바람 탓하지 마소.” 그게 안 주신 이유냐고 투덜댔더니, 스님은 내가 잊고 있던 시 하나를 기어이 상기시켰다. 고려 문인 이규보의 시다.


꽃 심으면 안 필까 걱정하고/꽃 피면 또 질까 걱정하네/피고 짐이 모두 시름겨우니/꽃 심는 즐거움 알지 못해라


스님이 떠나도 새날이 오니 알겠다. 갈 것이 가고 올 것이 온다.

-‘꽃은 피고 지고’ 중에서


 이 교수가 간 뒤에도 나는 내내 이산해의 국화가 눈에 삼삼했다. 그는 우연히 그 작품을 보았다고 했다. 그는 우연과 마주했다 해도 작품을 경매에 낸 소장자와 경매 관계자는 어떻게 된 노릇일까. 가치를 알고 있었더라면 최저가를 오십만 원으로 매기지는 않았을 터이다. 뻔한 이야기지만 결국 ‘눈’이다. 작품을 알아보는 눈이 있어야 횡재도 온다. 게다가 이 교수의 발품은 사시사철 부산하다. 미술동네에 떠도는 말로, 먹이는 냄새를 풍긴다. 발견은 우연이었다 해도 그의 발걸음은 필연이었을 것이다.

-‘우연은 누구 편인가’ 중에서


조선 후기 한의학자로 ‘사상의학’을 창안한 이제마의 말이다. “사람의 엉덩이에는 게으름이 들어 있고, 어깨에는 교만함이, 허리에는 음란함이, 심장에는 욕심이 들어 있다.” 게으름과 교만함과 음란함과 욕심이라니, 이야말로 만병의 근원 아닌가. 몸이 아예 병덩어리다. 몸은 마음에 의지하고 마음은 몸에 깃드니 어느 세상에서 묘약을 구하겠는가. 아무래도 백약이 무효일 성 싶다. 그 많은 약을 선물한 친구들아, 섭섭하겠지만 도리 없다. 무슨 수가 있겠는가. 아무 수가 없다. 나는 약 안 먹고 버티련다. 삶은 고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다. 그것이 직방이다.

-‘묘약을 어디서 구하랴’ 중에서 


2장 ‘사람의 향기에 취하다’


일본에서 건너온 시바 료타로의 붓글씨 하나를 얻었다. 테두리를 대나무로 장식한 표구가 빼다 박은 일본 솜씨다. 시바의 육필은 호협한 그의 문장과 달리 단정했다. 거들먹거리는 대가의 유품이 아니라서 살가운 느낌이 들었다. 하라가나와 한자를 섞어 쓴 글씨는 또한 뜻이 묘했다. 우리말로 풀면 이렇다.

“돌아보면 다시 피었다. 꽃 삼천 부처 삼천”

음절로 보니 하이쿠는 아니다. 글맛은 이슬 마신 듯하다. 싱겁지만 투명하다. 시바가 돌아본 과거는 온통 꽃길이었던가. 삼천 그루의 꽃이 어룽져 삼천불이라니, 그의 상념에 꽃멀미가 난다. 아득하니 아름다운가, 아름다우니 아득한가.

-‘방 안에 꽃 들여 놓으시지요’ 중에서


쪽빛의 스펙트럼은 넓다. 뉘앙스는 천차만별이다. 서양의 먼셀 표색계가 무색할 정도로 능준하다. 비유를 허용한다면 그 쪽빛의 스펙트럼은 청산리 벽계수에서 비갠 날의 가을 하늘, 흐린 날의 만경창파, 갓 시집온 새아씨의 옥반지, 초가을 햇빛에 빛나는 청자 비색 등으로 천변만화할 것이다. 통영에서 본 쪽색은 제승당으로 가는 바다 길목에서 가장 짙푸르렀다. 꿈엔들 잊지 못할 그 쪽색은 여름의 뙤약볕 아래에서 한 생애를 다 바쳐 빛났다.

-‘쪽빛 바다에 떠도는 한 조각 붉은 마음’ 중에서

   


3장 ‘봄날의 상사相思를 누가 말리랴’


소재의 상징성을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그림의 마음씨를 읽어내는 것이다. 최북의 <풍설야귀인>을 보면 세찬 풍파에 시달려 늙고 지친 나그네가 쓸쓸히 고향으로 돌아가는 애절한 마음씨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림의 마음씨는 어떻게 아는가. 감상자가 자기 마음을 실어서 볼 때 가능하다. 모든 일이 이렇듯, 마음이 실리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는 게 없다.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중에서


음화가 키치에서 맴돈다면 춘화는 서정에 가깝다. … 본시 춘화는 춘의와 춘정을 형상화한다. 봄은 덧없다. 오는 듯 가버린다. 그래서 봄은 짧디짧은 황홀이다. 꽃은 황홀경 속에서 핀다. 꽃이 피면 그리움이 맺힌다. 당나라의 시 잘 짓는 기생 설도는 「봄 바라는 노래」를 지었다.


꽃이 펴도 함께 즐길 수 없고/꽃이 져도 함께 슬퍼하지 못하니/임 계신 그곳 묻고 싶어라/꽃이 피고 꽃이 질 때는


한 줌의 재로 사위어가도 봄날의 상사는 누가 말려도 핀다. 봄의 짧은 황홀이 있어 추레한 인생을 견딘다. 단원과 혜원의 에로스는 ‘임 계신 그곳 묻고 싶은’ 마음에 담긴 아찔한 유혹이다.

-‘봄날의 상사相思는 말려도 핀다’ 중에서



■ 차례


1. 꽃 피는 삶에 홀리다

꽃은 피고 지고|좋은 것 두고 떠나는 게 인생이야|자태는 기록하지 않는다 

향기는 가고 냄새는 남다|없는 곳에 있는 사람들|죽은 개와 산 부모|삼 세 판이라고  

호랑이 등에 탄 아내여, 내려오라|예쁜 남자|한 가지 일, 한 마디 말|내 사랑 옥봉

시들어버린 연꽃|우연은 누구 편인가|닿고 싶은 살의 욕망

사랑은 아무나 하고, 아무 때나 해라|지곡마을의 쪽빛 농사|침묵 속으로 달리다

옛사람의 풍경 하나|묘약을 어디서 구하랴|얘야, 새우는 너 먹어라

값비싼 민어를 먹은 죄|‘누드 닭’의 효험|이중섭의 소가 맛있는 이유 


2. 사람의 향기에 취하다

지나가는 것이 지나가는구나|연꽃 있는 사랑 이야기|입 다문 모란, 말하는 모란 

방 안에 꽃 들여 놓으시지요|옷깃에 스친 인연|참 애석한 빈자리 

부드럽고 구수하고 어리석고 아름다운|동풍에 쫓기는 배꽃 만 조각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었구나|잊혀진 화가, 잊을 수 없는 사람 

붓에게 띄우는 오래된 사랑가|산을 떠났나, 산이 떠났나|쪽빛 바다에 떠도는 한 조각 붉은 마음  


3. 봄날의 상사相思를 누가 말리랴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오백 년 조선의 마음을 적신 시화  

속 깊은 선비의 못생긴 그림|산 자의 절망은 바다에서 깊어진다 

봄날의 상사相思는 말려도 핀다|조선 백자 달항아리|게걸음 하는 사람 

좀팽이들은 물렀거라|와사비 대신 버터|캐보나마나 자주감자|애틋한 자매  

내가 매력을 느낀 남자가 있냐고?|천하는 아무 일이 없다|영원을 부러워하지 않는 찰나




■ 저자 소개


손철주

한시와 꽃, 그림과 붓글씨, 한잔의 술이 있으면 썩 잘 노는 사람이다. 오랫동안 신문사에서 일하며 미술에 대한 글을 써왔고, 스테디셀러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그림 보는 만큼 보인다』를 낸 미술 칼럼니스트이다. 사단법인 ‘우리문화사랑’ 운영위원이자 학고재 주간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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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예쁜글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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