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흙탕물에 물들지 않는 연꽃같이,
오직 외곬으로 자분자분하게 평생을 살아 온 예술가 22인을 인터뷰하다
이 책, 두께부터 예사롭지 않다. 한 장씩 넘기다 보면 더 예사롭지 않다. 화가, 사진가, 시인, 건축가, 판화가, 춤꾼, 가수, 조각가, 하모니시스트, 현장예술가……. 이 다양한 직업군을 한 권에서 모두 만날 수 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더 놀라운 일들이 펼쳐진다. 신미식, 장사익, 남궁산, 이상은, 조갑녀, 이매방, 김홍희, 이외수, 임의진, 강제윤, 전제덕, 정미조, 하용부 등… 이름만 들어도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이들의 이름이 빼곡히 들어 있다.
송준, 그는 전국의 구석구석에서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하며, 예술을 천직으로 삼고 평생을 살아 온 예술가 22인에 대한 전방위적 이야기를 담아냈다. 그가 이들의 삶을 처음 만나기 시작한 것은 5년 전이었다. 평소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송준. 그는 작정하고 예술가들을 만나러 떠나는 대장정의 길을 시작했다. 어떤 이와의 인터뷰는 3박 4일 혹은 4박 5일 동안 계속됐다. 이쯤되면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만남이 아니라, 그저 친구와 함께 떠난 여행의 수준이었다. 그렇게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함께 웃고 함께 울었다. 그렇게 보내고 나서야 그들 내면의 속깊은 이야기, 잘 알려지지 않은 작업에 대한 뒷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의 곁에는 정형우 사진작가가 늘 함께 했다. 공연예술 사진계의 그를 따라올 자가 없을 만큼 치밀하고 세심했다. 송준이 그들의 내면을 글로 옮겼다면, 정형우는 그 내면이 보다 잘 드러나도록 사진을 찍었다. 이 환상의 콤비가 이루어낸 글과 사진들은 <바람의 묵시록>이라는 꼭지로 월간 ≪아트뷰≫에 연재되기 시작했고, 이것이 다듬어지고 묶어져 단행본 ≪바람의 노래≫로 탄생했다. 송준의 글은 담백하고 따뜻하며, 정형우의 사진은 깊고 진중하다.
오직 한 길을 걸어 온 예술가들의 꿈과 숙명
예술가라기보다는 연예인에 가깝게 여겨졌던 가수 이상은은 그동안 소식이 궁금하기도 했었는데 이 책에서 만날 수 있어 무척 반갑기까지 했다. 브라운관에서 보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그녀의 내면을 엿보는 기분마저 들었다. ‘담다디’로 잘나가던 어느 여가수의 고충은 지금 아이돌 가수들이 겪는 어려움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을 테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겪은 후에 한층 성숙해진 모습으로 꾸준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그녀는 역시 이 시대의 프리마돈나이다.
비교적 대중들에게 친숙한 소리꾼 장사익의 <비 내리는 고모령> 작곡이야기는 그의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만큼이나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찔레꽃’의 노래가 미국의 한 공연장에서 울려 퍼졌을 때 관객석에서는 모두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단다. 지금 들어도 우리 모두의 심금을 울린다. 정말이지 명곡이 아닐 수 없다.
다수의 책을 출간한, 그래서 우리는 모두 글쟁이로 알고 있는 이외수는 여기에서만큼은 선묵화가로 변모했다. 긴 백발을 늘어뜨린 이외수는 평소 젊은이들과 소통하며, 감각적인 책들을 많이 집필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지만, 의미 있는 그림 작업도 많이 남겼다. 젓가락에 먹물을 묻혀 그려낸 그림들 하며, 화선지 위에 붓으로 쓱쓱 그려낸 작품들은 그의 주특기인 촌철살인의 한마디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이외에도 그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춤꾼 조갑녀, 이매방, 하용부의 공연 사진은 정지된 그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사진에서 빠져 나와 어깨를 들썩이며 춤판을 벌일 것만 같다. 특히 조갑녀의 나이를 잊은 춤사위는 감동을 넘어서 웅장미마저 느껴진다. 또한, 본인의 이름으로 책을 14권이나 찍어낸 사진가 신미식의 ‘때를 기다렸다 셔터를 눌러야 한다’는 사진철학은 뒤에 나오는 사진가 김홍희의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으니 순간적으로 셔터를 눌러야 한다’는 그것과 대비되어 쏠쏠한 재미를 주기도 한다. 그 밖의 판화 외길을 걸어온 남궁산이 대한민국의 쟁쟁한 작가들에게 만들어 주었다는 장서표도 쉽게 그 매력에 빠질만 하다.
소리없이 대한민국 예술의 변두리를 빛내다
예술은 어렵거나 독특한 것만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요, 소수만이 즐길 수 있는 유희도 아니다. 이들이 보여 주는 속내처럼 진심이 묻어나는 삶 자체야말로, 그것이 바로 예술인 것이다. 그들이 보여 주는 작업과 작업실 풍경은 고스란히 우리의 인생으로 이어진다. 그 속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대한민국 예술의 희망을 발견한다.
이렇게 22인을 한자리에 모은 이유는 한길 외곬으로 평생을 살았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각기각색으로 저마다의 분야에서 열정을 쏟고 있는 이 사람들에게 세간의 평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큰 소리 내지 않고, 먼지 하나 날리지 않고 묵묵히 제 갈 길을 걸을 뿐이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조용하지만 치열하게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이들의 예술 인생은 우리의 삶을 보다 넉넉하게 해 준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이런 예술가들이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 준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같은 현대인들에게는 마음의 의지가 되기도 하고 위안이 되기도 한다.
이 많은 예술가들이 하나같이 무장해제 되어 속 깊은 내면의 이야기와 예술혼이 담긴 이야기를 건네 오는데 어찌 여기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있을까.
▪ 책 속으로
“이렇게 불러야지, 그런 게 없슈. 노래가 지 혼자 기냥 알아서 흘러나오는 거지.
엄니 돌아가셨을 때도 가슴에서 울컥 둑이 하나 무너지길래 <비 내리는 고모령>을 불러드렸쥬.
좋은 시를 만나면 흥얼흥얼 가슴이 먼저 말해유. 그 느낌을 받아 적는 건데,
무슨 작곡은유. 기냥 만드는 거쥬. 가슴 저 속에서 기냥 노래가 나온다니께유.”
장사익의 노래를 두고, 어떤 이는 ‘된장’ 같다고 하고, 어떤 이는 ‘토종 고추’ 같다고 하고, 어떤 이는 장 씨의 노래 제목을 빌려 ‘찔레꽃’ 같다고 한다. 시원하게 속을 풀어주는 된장의 넉넉함에 대한 비유고, 매콤하고 짜릿하게 어혈을 뚫어 주는 고추의 강기에 대한 비유고, 찔레 향기처럼 은은하게 멀리 퍼져 가는 뒷심에 대한 비유일 것이다.
49쪽 <찔레꽃 장사익> 중에서
“춤이 앵겨오면 힘든 줄도 몰라. 춤이 앵겨오려면 가슴을 넓게 열어야 혀. 대범하게.
큰 마음에 큰 춤이 깃드는 것이여. 인내해야 허고. 참고 또 참는 거여.
참은 힘이 춤으로 고이도록, 꼭대기에서도 누르고 또 눌러.
그렇게 누르고 누른 가슴에 무거운 춤이 맺히는 것이여.
팔꿈치에 장독이 매달린 듯이 무겁게, 무겁게. 그래서 팔에 힘이 빠지면 비로소 몸에서
우리 산능성이의 선이 나오는 거여. 처마의 선이 나오는 거여.”
환호성과 함께 일제히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수십 개의 휴대전화 카메라가 사람들 머리 위로 솟아올랐다. 조갑녀 명인이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원기를 회복한 조 명인의 즉흥 춤사위가 열린 것이었다. 보여주는 춤과 노는 춤의 차이였을까. ‘무거운 춤’의 진면목이 거기 있었다. 무겁지만 둔하지 않고, 흥겨우나 들뜨지 않고, 은은히 피어오르는 내면의 신명.
145쪽 <민살풀이 춤의 명인, 조갑녀> 중에서
“저는 작가로서 늘 세상과, 젊은 사람과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 혼자 에헴, 하고 돌아서서 ‘요즘 젊은 애들은…’하며 비난해 봤자 뭐가 달라지나요.
그들과 이야기하기 위해선 공감하고, 그들이 생각하는 바, 느끼는 바를 먼저 알려고 노력해야지요.
인터넷에 탐닉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지요.”
이만큼 고집스러운 삶도 드물다. 이만큼 화제 만발한 삶도 드물다. 베스트셀러 작가에서 걸인에 가까운 기행에 이르기까지 이만큼 진폭이 큰 삶도 드물다. 이제는 텔레비전에도 자주 등장하는 ‘인기 어르신’이 되었다. 홈페이지에 블로그로 트위터로, 인터넷 뉴미디어에도 발 빠른 얼리 어댑터다.
207쪽 <‘말괄량이 어르신’ 이외수> 중에서
▪ 예술가들이 본 송준(추천사)
슬픔도 가락을 타면 흥이 됩니다. 노래의 힘이 그렇듯 송준의 책 ≪바람의 노래≫가 그렇습니다. 단언컨대 송준은 당대의 검객입니다. 송준의 문장은 유장하면서 군말이 없고 정밀하면서도 따뜻합니다. 무릇 글과 사람이 같이 가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송준은 글이 곧 사람입니다. 게다가 그는 풍류객이기까지 합니다. 세상에 이런 청복을 누리는 사내가 또 있을까요.
시인 강제윤
송준은 소탈한 생김새로 위장(?)을 하고 있지만 섬세하고 치밀한 사람입니다. 우선 그의 너털웃음 한방에 우리는 무장해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집요한 공세에 마침내 항복을 하고 속내를 털어놓게 됩니다. 판화가 남궁산
언뜻 눈에 띄지 않게 숨어 사는 예술가들의 향기를 좇아 그들이 보여주는 독특한 삶의 경험과 스타일을 노골적이고 솔직하게 풀어 놓은 송준의 순례기. 깊은 산속 바위틈에서 꽃망울을 터뜨리는 누운아기별꽃의 아름다움이 송준의 시선을 통해 새롭게 피어납니다. 화가 문순우
샘이 깊은 물은 맛나고 맑습니다. 내면 깊숙이 숨어 있는 보석을 찾아내는 어진 광부의 마음으로 사람과 세상의 일들을 따뜻하게 풀어 놓는 송준 선생님의 혜안이 하루하루 사는 우리들에겐 봄에 피어난 꽃향기입니다! 소리꾼 장사익
한 사람을 글로써 표현하기 전, 그 사람과의 만남을 중시했던 작가. 한 사람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을 글로 옮겨낸 사람. 그 사람이 송준입니다. 춤꾼 하용부
▪ 글 송준
작가, 저널리스트.
느림 속에 깃든 안온함과 그늘 속에 숨은 아름다움을 배우는 중이다.
1963년생. 대전에서 나고 자랐다. <시사저널> 공채 1기로 ‘괴로운 글쓰기’의 업을 시작하였고, 10년 동안 문화부와 기획특집부 기자로 일하며 원 없이 문화의 바다에서 유영하였다. 2000년부터 오래도록 희망해 온 프리랜서의 길로 접어들었다.
영화ㆍ미술ㆍ건축 분야의 글을 쓰는 한편으로, 이민용ㆍ황철민 감독 등과 함께 시나리오 작업을 해 오고 있다. 2003년에는 중견 영화평론가 그룹 ‘젊은영화비평집단’의 회장을 맡아 비흥행 아트 영화를 중심으로 <작은 영화제>를 개최했다. 같은 해 각색을 맡아 작업했던 황철민 감독의 영화 <프락치>가 2004년 제34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다.
2004년부터 외곬으로 예술에 삶을 묻은 사람들을 만나 그 시퍼런 꿈과 숙명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저서로 영화 이야기 ≪아웃사이더를 위한 변명≫(2004, 심산)과 축제 이야기 ≪함평 나비혁명≫(2008, 페이퍼로드)이 있다.
▪ 사진 정형우
사진작가.
1971년생. 청주대 공과대학에 진학하였다가 우연히 접하게 된 사진동아리에서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운다. 빛의 눈꺼풀, 사진이 외길이 되었다. 청주대를 졸업한 뒤 신구대학교 사진학과로 다시 진학하여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는다. 1997년 서울 예술의전당 사진실 근무를 시작으로, 공연전문지 월간 <객석> 사진기자로 7년 여, 2006년부터 성남아트센터의 월간 <아트뷰>의 포토디렉터로 4년 여를 활동하면서 연극ㆍ무용ㆍ음악 등 무대공연예술의 전문 사진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유난히 말수가 적고 수줍음이 많은 동안의 훈남 정형우 작가는 스튜디오와 공연장에서 해와 달을 맞고 보내며 살았다. 셔터 소리조차도 무대의 음향과 배우들의 동작을 계산하여 눌렀을 정도로 세심한 청년이었다. 그런 그가 2009년 10월 작가로서의 삶과 예술에 대한 고뇌 속에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전시를 위해 준비해둔 사진들로 2010년 6월 ‘갤러리 와’(경기도 양평)와 ‘물파 갤러리’(서울 인사동) 두 곳에서 <정형우 사진전>이 열린다.
▪ 차례
낯설음도 뼈 아픔도 다 설원인데
칠판 위에 ‘유랑’을 그리는 화가 김명희 잃어버린 ‘시간의 초상’을 찾아서
사진가 신미식 꿈 아닌 꿈을 엮어서 길 아닌 길을 열다
찔레꽃 장사익 희망을 노래하는 눈물의 연금술사
사랑의 배거번드 조병준 사랑은 물드는 것, 한없이… 하염없이…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건축가 곽재환 경계에서 사랑의 꽃을 피우는 레옹의 건축
판화가 남궁산 희망과 허망 사이, 긴 그리움에 대한 명상
내면의 노래 이상은 억겁의 기억을 짝짝이 날개로 날아온 나비
민살풀이춤의 명인 조갑녀 65년 만에 피어오르는 업보의 신명
스스로 하늘 냄새를 지닌
‘나는 사진이다’ 김홍희 광야에서, 스스로 이정표가 되어
아트 노마드 문순우 바람과 안개의 ‘보헤미안 랩소디’
‘말괄량이 어르신’ 이외수 초월인가 포월인가… 어느 아웃사이더의 피안
어깨춤의 이방인 임의진 무정형․무정처의 ‘사랑의 미학’
허공의 비단길을 걸어서
섬을 찾아 떠도는 유랑시인 강제윤 섬 아닌 섬에서 부르는 ‘저문 날의 오디세이’
조각가 양종세 ‘소 찾아’ 길 떠났다가 ‘소가 되어’ 돌아온 보헤미안
성산포 시인 이생진 섬에 고독의 날개가 있다
영혼의 하모니시스트 전제덕 그리울 때, 하모니카처럼 속삭이라
오지의 수묵화가 최용건 그리움의 극지에서 무심의 필법을 구하다
강철로 된 무지개
뉴욕의 앙상블라주 변종곤 버림받은 존재를 위한 소나타
춤의 마루, 승무 이매방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화가로 돌아온 정미조 ‘가지 않은 길’을 위한 랩소디
현장예술가 최병수 알바트로스, 검은 하늘을 날아오르다
춤판 50년 하용부 저 무중력, 빛의 경지를 향하여
◆ 응모방법: 이 책을 읽고 싶은 이유를 적어주세요.
◆ 서평단 모집간 : 6월 23일 ~ 6월 29일
◆ 모집인원 : 10명
◆ 발표일 : 6월 30일 (→이벤트 당첨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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