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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랑 때문이다 (오마이북)10

by 칠면초 2011. 5. 23.

 

 

 

 

 

 

 

 

 

 

 

 

 

‘인간을 사랑하고자 했던 한 인간’ 조성만의 삶

그리고 이를 통해 바라본 80년대 세대의 청춘, 사랑, 투쟁

 

 

사랑 때문이다.

내가 현재 존재하는 가장 큰 밑받침은 인간을 사랑하려는

못난 인간의 한 가닥 희망 때문이다.

이 땅의 민중이 해방되고 이 땅의 허리가 이어지고

이 땅에 사람이 사는 세상이 되게 하기 위한

알량한 희망, 사랑 때문이다.

나는 우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고

우리는 우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 1988년 3월 18일, 조성만의 일기에서

 

 

 

이 평전의 주인공은 ‘조성만’이면서 조성만과 함께 한 시대를 살아온 80년대 세대의 청춘들이다. 요셉 조성만 평전 《사랑 때문이다》는 조성만 열사의 삶과 죽음, 1980년대 정치·사회·문화적 변화를 배경으로 고민하고 흔들렸던 청춘들의 삶과 사랑, 투쟁을 다루고 있다. 91학번인 저자가 88만원세대이자 촛불세대인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바치는 23년 전 80년대 세대의 청춘보고서인 셈이다.

저자인 송기역 씨는 조성만 평전을 집필하기 위해 2년 가까이 그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만나고 취재하면서 80년대와 조성만을 우리 곁으로 복원시켰다. 저자는 “우리 역사상 최초로 혁명의 길을 모색한 80년대 세대를 조명함으로써, (체제내적 삶에 포박된 1990년대, 2000년대 세대를 극복하려는) 촛불세대들이 찾으려는 길과 희망에 단서를 제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격동의 80년대, 스물넷의 짧은 삶을 치열하게 고민하며 젊은 ‘신부’로 살았던 이름, 조성만.

조성만 열사는 1988년 5월 15일, 명동성당 교육관 옥상에서 5·18 광주민중항쟁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던 성당 벗들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바라본 후 할복 투신했다. 스물넷 짧은 삶이었다. 유서에는 한반도 통일, 미군 철수, 군사정권 퇴진, 서울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 등을 요구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1984년 서울대 자연대 화학과에 입학한 조성만은 지하서클과 명동성당 가톨릭민속연구회에서 활동했다. 이 시기에 조성만은 인간의 자유와 해방이 과연 무엇이고 어떤 모습인가를 본질적으로 질문하며 치열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었던 조성만이 가슴속에 이처럼 뜨거운 불덩이를 품고 있으리라는 것을 당시엔 누구도 쉽게 눈치 채지 못했다.

특히 신부의 삶을 꿈꾸던 조성만에게 점점 보수화되는 교회의 모습과 고통받는 민중의 모습은 외면하기 힘든 ‘현실’이었다. 조성만은 1987년 6월항쟁 시기에 서울의 거리와 명동성당에서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고, 그해 12월 대선에서 부정선거를 목격하고 투표함을 지키기 위해 구로구청에서 마지막까지 저항했다.

조성만이 사회적 자아에 눈을 뜨게 된 데에는 두 가지 계기가 있었다. 하나는 전주 해성고에 입학한 해에 광주민중항쟁을 겪었던 일이고, 또 하나는 고교 시절 중앙성당에서 만난 문정현 신부의 삶이었다. 용기 있게 정부와 권력자를 비판하는 문 신부의 모습에 조성만은 큰 감동을 받았고, 이때 가슴에 품은 신부의 꿈은 죽는 날까지 변하지 않았다.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치열하게 고민하던 그가 끝내 자신의 온몸을 던짐으로써 말하고자 했던 것은 결국 ‘사랑’이었다.

조성만은 왜곡된 역사, 인간을 돈의 노예로 변화시키는 사회 구조에 참담함을 느꼈고, 결국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사랑 때문이다’라는 결론이 이르렀다. 다음은 그가 쓴 일기의 한 대목이다.

“체제가 인간을 돈의 노예로 많이 변화시키는 과정이 너무나 화가 나고 그 인간에 대하여는 너무나 불쌍한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민중’이 그러한 모습을 보일 때는 미칠 지경이다. (중략) 사랑 때문이다. 내가 현재 존재하는 가장 큰 밑받침은 인간을 사랑하려는 못난 인간의 한 가닥 희망 때문이다. 이 땅의 민중이 해방되고 이 땅의 허리가 이어지고 이 땅에 사람이 사는 세상이 되게 하기 위한 알량한 희망, 사랑 때문이다.”

 

 

이 책은 조성만 자신이 그토록 이루고 싶었던 꿈인 한 신부의 삶에 관한 표식이자, 1980년대를 살아간 청춘들의 표식이다.

‘인간을 사랑하고자 했던 한 인간’ 조성만의 삶은 ‘인간을 향한’ 치열한 순례의 과정이었다.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려는 ‘인간을 향한’ 길은 결국 당시 80년대 상황 속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 군사정권 반대, 미군 철수 등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과 투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조성만 열사의 죽음을 전후로 대중적인 통일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고, 1989년 임수경 씨와 문규현 신부의 방북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에 대해 문정현 신부는 “임수경과 문규현은 ‘통일의 꽃’이 아니라 ‘조성만의 꽃’이다. 성만이가 그렇게 꿈꾸던 일이 두 사람을 통해 피어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1989년 문규현 신부가 방북하게 된 것은 조성만의 영향 때문이었다”고 회고했다.

격동의 80년대를 보낸 세대들에게 민주주의와 자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무엇을 고민하고 아파했을까? 저자인 송기역 씨는 “이 책을 쓰면서 김수영의 시 <푸른 하늘을> 가운데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의 그 ‘피의 냄새’를 생각했다”며 “민주주의의 길에서 자신을 기꺼이 투신해 고통을 받아들였던 그 냄새를 기억하며 이 책을 썼다. 조성만을 만나는 동안 80년대 청춘들의 삶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촛불세대들에게 그들의 삶과 사랑을 들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명동성당 가톨릭민속연구회 회원들이 중심이 된 조성만 추모모임 ‘성만사랑’은 매년 5월 15일 기일이 되면 추도식과 함께 광주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그를 기억하는 천주교 단체들은 그날의 고통과 의미를 간직하기 위해 조성만이 투신한 자리에 표지석을 세우려 하고 있다. 또한 조성만의 죽음을 ‘정치적 순교’로 규정하고, 순교자로 공식 지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명동성당과 천주교 주교단의 반대로 아직은 이를 현실화하는 일이 요원한 상태다. 조성만을 ‘신앙의 스승’이라 부르며 23년 동안 마음에 간직하고 살아온 문정현 신부는 이 책에서 “언젠가 그가 떨어진 자리에 작은 돌이라도 새겨 흔적을 남기고 싶다”고 밝혔다.

 

 

나는 매일 명동성당을 걷는다.

본당을 지나 교육관 앞 한 청년이 떨어져 죽은 자리를 지날 때면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춘다.

지난 세월 나는 그가 옥상 위에 서 있던 순간을 숱하게 떠올리곤 했다.

그 청년의 이름은 조성만이다.

 

그는 누구인가? 나의 신앙의 스승이다.

내 방엔 그의 사진이 23년째 걸려 있다.

나는 성만이를 가슴에 묻고 살았다.

지난 23년을 돌아보면 단 하루도 피 터지게 살지 않은 날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온통 세상에 바치는 자의 심정을 나는 아직도 모른다.

그래서 성만이를 생각하면 너무 슬프고 눈물이 난다.

 

성만이가 떠난 지 23년이 지났다.

지금 사람들은 자기 근본을 잊은 채 살고 있다. 돈이 하느님이다.

4대강 사업, 재개발, 구조조정, 이게 다 돈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종교는 고통받고 소외받는 이웃을 보듬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많은 종교인들이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실제로는 권위주의에 물들어 있다.

 

하지만 예수의 사랑은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그 사랑은 누구도 덮을 수 없다.

‘인간을 사랑하고자 했던 한 인간’ 성만이도 그렇다.

그 사랑을 이 책을 통해 만났으면 좋겠다.

- ‘길 위의 신부’ 문정현(여는 글 중에서)

 

 

 

 

● 조성만 열사는 누구인가?

 

조성만(요셉)

1964년 12월 13일(음력) 전북 김제군 용지면 용암리 모산마을에서 조찬배, 김복성의 4남 중 둘째로 태어났다.

전주 해성고에 입학한 해에 5·18 광주민중항쟁을 겪으며 사회적 자아를 만났고, 고교 시절 중앙성당에서 만난 문정현 신부의 삶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이때 가슴에 품은 신부의 꿈은 죽는 날까지 변하지 않았다. 그의 인생은 사제의 길을 향한 ‘순례자’의 삶이었다.

1984년 서울대 자연대 화학과에 입학한 후 지하서클과 명동성당 가톨릭민속연구회에서 활동했다. 제대 후 복학을 포기하고 신부가 되려고 했으나 가족의 반대로 뜻을 뒤로 미루었다.

1987년 6월항쟁 시기에 서울의 거리와 명동성당에서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다. 그해 12월 대선에서 부정선거를 목격하고 투표함을 지키기 위해 구로구청에서 마지막까지 저항했다. 1987년 가톨릭민속연구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서울올림픽을 앞둔 1988년 5월 15일, 명동성당 교육관 옥상에서 5․18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성당 벗들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바라본 후 할복 투신했다. 스물넷 짧은 삶이었다. 한반도 통일, 미군 철수, 군사정권 퇴진, 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 등을 외치며 투신 전에 뿌린 유서는 80년대 청년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가 온몸을 던진 자리에는 명동성당과 가톨릭 주교단의 거부로 작은 표지석 하나 없다.

 

 

● 지은이 소개

 

송기역

전북 고창에서 태어났다. 시를 쓰고, 숨어 있는 사람들과 생명의 목소리를 받아 적는 르포작가로 살고 있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 사라져가는 세대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대추리 주민들의 삶과 저항을 다룬 시 〈트랙터 순례자들의 노래〉로 전태일문학상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 《허세욱 평전-별이 된 택시운전사》, 《흐르는 강물처럼-우리 곁을 떠난 강,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등이 있다. 현재 여러 매체에 르포르타주를 기고하고 있다.

 

 

 

 

● 차례

 

• 조성만 평전을 내며

• 여는 글 / 인간을 사랑하고자 했던 한 인간 • 문정현

• 여는 시 / 그가 남기고 간 어리석고 큰 사랑 • 문규현

 

23년

 

1부 순교

기억나지 않는 이야기 / 가장 길었던 5월의 어느 날 / 어머니, 당신의 아들

/ 23년의 비밀 / 빛나는 별

 

2부 좁은 문

가족사 / 한글과 구구단 / 주인집 숙자와 일일연속극 <여로> / 1980년 5월 18일

/ 문정현 신부를 만나다 / 어머니 목숨을 건 대학시험

 

3부 1984

80년대와 빅 브라더 / 첫 만남 / 명동의 열두 제자들 / 돌들의 외침 / 지하생활자들

 

4부 통나무 십자가

뜻 없이 무릎 꿇는 / 이등병의 편지 / 허공에 뜬 교회 / 뿌리를 가진 나무 / 피할 수 없는 불길

 

5부 신부의 길

신부를 꿈꾸다 / 박종철과 전두환, 불운한 만남 / 가문협의 동우회 사건

/ 1987년 12월 구로구청 / 세상의 지하실에 불을 밝히다

 

6부 부활

1988년 분단올림픽 /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벗이여 해방이 온다 / 가난한 세상에 보내는 마지막 편지 / 높은 곳에 홀로 선 십자가 /자살인가, 순교인가 / 동생 조성환의 일기 / 사랑 때문이다

 

• 작가의 말 /

1980년대를 살아간 청춘들의 표식

 

• 조성만이 남긴 일기

 

 

 

● 본문 중에서

 

-1988년 5월 15일 15시 40분.

조성만은 확성기의 사이렌 스위치를 올렸다.

“왜애앵!”

최효성(명동성당 청년단체연합회 회장)은 운전석 앞유리를 통해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광주 민중항쟁 계승 마구달리기’ 행사를 이끌 선도차량 운전석에 지도신부 김민수와 함께 타고 있었다.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4층짜리 교육관 옥상 난간에서 확성기를 들고 있었다. 그 모습은 흡사 명동성당 건물 위에 걸린 ‘하얀 십자가’같았다. 위태로워 보였다. 흰 옷을 입은 사람이 조성만인 것을 아는 순간, 그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게 되었다. 이상한 직감이자 확신이었다. 갑자기 머리에 쥐가 나며 통증이 일었다. 그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안 돼!”

 

-19시 20분

조성만이 숨을 멈췄다. 1988년 5월 15일 오후 7시 20분이었다. 대책위원회는 조성만의 사망을 공식 발표했다. 부모님이 전주에서 출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청년들은 백병원에서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명청의 청년들이 경찰의 시신 탈취에 대비해 백병원 주변에서 각목을 들고 경비를 섰다.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죽음이 발생할 때면 시신을 뺏어가는 일이 많았다. 병원에서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청년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도처에서 들렸다.

 

-16일 새벽

전경들이 시신을 탈취하러 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청년들은 정부의 시신 탈취에 대비해 각목과 쇠파이프를 움켜쥐었다. 어둠 속에서 저벅거리는 군홧발 소리가 들려왔다. 청년들은 백병원을 지키며 밤을 새웠다. 무서운 밤이었다.

명동성당에서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시민과 학생 수백 명이 밤을 새우며 어둠 속에서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었다. 뚝딱뚝딱 끊이지 않는 망치소리가 들렸고 사람들이 부지런히 주고받는 목소리가 들렸다. 성당 한편에선 장례에 사용할 걸개그림을 그리고 있고, 한편에서는 풍물 연습을 하고 있으며, 또 한편에서는 만장을 만들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역할을 나누어 자발적으로 손길을 모으고 있는 광경이었다. 그들은 누가 불러서 온 사람들이 아니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제 발로 직접 찾아온 상주들 같았다. 벌써 수십 개의 만장이 완성되어 있었다.

 

-구로구청 사건을 겪은 후 조성만은 지하실에서 겪은 공포가 머릿속에 떠오르곤 했다. 죽은 세진이 겪었을 고통이 가깝게 느껴져 소스라친 적도 있었다. 성당에 간 날이면 명동성당 본 당 뒤편의 성모동산을 멍하게 배회했다. 그는 밤늦은 시간까지 성당 기도실에서 기도를 하는 날이 많아졌다.

어느 날 가민연 술자리에서 조용히 술을 마시던 그가 주먹을 움켜쥐어 소주잔을 깨뜨린 적이 있었다. 회원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조성만이 그런 행동을 할 것이라곤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피가 흥건해진 손을 더 이상 바라보지 못하고 회원들은 고개를 돌렸다. 선배 회원이 피를 닦아주며 말했다.

“휴우, 놀랐잖아. 왜 갑자기 소주잔을 깼어?”

성만은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유치장에서 나온 후 조성만이 보는 세상은 모두 어두컴컴한 지하실이었다. 그가 미사를 보는 명동성당도 햇빛이 들지 않는 지하실이었다. 그는 세상의 지하실에 불을 켜고 싶었다.

 

 

 

 

● 조성만이 남긴 유서 전문

 

 

†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아멘

척박한 땅, 한반도에서 태어나 인간을 사랑하고자 했던 한 인간이 조국통일을 염원하며 이 글을 드립니다.

한반도의 통일은 그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막아져서는 안 됩니다.

조국이 분단된 지 어언 44년, 일제치하의 조국을 구하고자 자기의 삶을 버리고 싸워갔던 자랑스러운 독립군의 정신은, 인류를 자기 나라의 이익을 뽑아내는 장소로 여긴 미국에 의해서 땅에 묻힐 수밖에 없었으며 그 대리통치세력인 해방 후의 정권들(친미사대주의자인 이승만, 독립군을 때려잡던 일본육군사관학교의 후예들, 이들의 반민족적 행동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에 의해서 이 땅의 주인인 민중들은, 어느 한구석 성한 곳 없는 사회에서, 민족의 바람인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이야기만 해도 역적으로 몰리는 세상에서 삶을 뿌리 뽑힌 채 갈수록 비인간화되는 모습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몇 년 전 혈육을 부여잡고 말을 잇지 못하는 이산가족의 모습은 이 땅의 현실이며 노동형제들, 농민들, 학생, 공무원, 경찰, 사병 등등 반쪽이 된 조국의 구성원들이 처해 있는 현실은 차마 양심을 지닌 인간을 편안케 하고 있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 모든 모습의 원인은 바로 한반도를 본국의 이득을 위한 땅으로 여기는 미국과 그 대리통치세력인 군사정부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은 외면 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올해 열리는 올림픽도 미국과 현 군사정부의 기득권 유지에 필요한 행사라는 것은 의심할 나위도 없으며, 올림픽을 통해 한반도를 영구분단화하려는 것은 이 민족의 가슴에 못을 박는 행위입니다. 민족 문제의 해결은 조국통일로써만 가능하다는 사실로 볼 때 한반도의 통일을 가로막는 미국과 군사정부의 반민족적 행위는 우리에 의해서 막아져야만 합니다.

 

한반도에서 미국은 축출되어야만 합니다.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 미국의 등장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을 동반했습니다. 민족의 독립을 외쳤던 제주도민의 학살인 4·3, 한국전에서 보여준 미군의 우리 민족(북한과 남한을 포함하여)에 가했던 살상, 5·16의 지원, 저 잊을 수 없는 80년 광주학살 등 오직 제국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미국의 모습은 이 땅을 단 한 발의 원폭으로 초토화시킬 수 있는 상황을 유발하고 있으며, 더 이상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손으로 조절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 습니다. 민족 문제의 해결은 미국을 축출함으로써만 가능하다는 사실은 이제 더 이상 민족반역으로 여겨질 수 없습니다.

 

군사정부는 반드시 물러나야 합니다.

오직 정권욕에 가득 찬 현 군사정부는 이 땅의 현실을 은폐한 채 미국에 대한 사대적인 태도를 표명하며 정권유지에 혈안이 되어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조국의 운명을 그네들 손에 맡길 수 없다는 판단을 낳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민족의 한인 광주학살을 주도한 현 군사정부, 자랑스런 조국 아메리카의 후예들!

 

다가오는 올림픽은 반드시 공동 개최되어야만 합니다.

분단고착화와 정권유지와의 타협에서 이루어질 올림픽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남한과 북한이 같이 참여하여 민족화해와 민족통일을 이루는 기반이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한국전쟁 이후 서로 철천지원수가 되어 살아야만 하는 현실 속에서 같은 형제라는 낱말을 잊고 살아 왔습니다. 통일이 국시가 아니라 반공이 국시인 현실 속에서 국민학교 음악책에서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가 없어지는 것을 목격해야만 했으며, 통일에 대하여 논의했다고 국가보안법이라는 족쇄가 채워지는 현실을 뜬눈으로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도대체 누가 반민족적이고 도대체 누가 애국하는 사람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현실. 우리는 우선 아무 거리낌 없이 민족의 동질성을 찾아야 합니다. 그랬을 때만이 진정한 통일은 이루어질 수 있으며 한 민족이 함께 어우러지는 세상에서 평화를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현재 우리나라 사람 중에서 남북공동올림픽을 거부할 집단은 현 군사정부와 그 밑에서 민족을 팔아먹는 사람들 이외에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올림픽은 민족화해의 장이 되어야만 합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찢어진 우리나라를 하나가 되게 해야 합니다.

진정한 언론자유의 활성화, 노동형제들의 민중생존권 싸움, 농민형제들의 뿌리 뽑힌 삶의 회복, 민족교육의 활성화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문제를 쌓아놓고 있는 현실 속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무수한 우리의 형제들이 고통 받고 있다는 현실은 차분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인간에게 더 이상의 자책만을 계속하게 할 수는 없었으며, 기성세대에 대한 처절한 반항과, 우리 후손에게 자랑스러운 조국을 남겨주어야 한다는 의무감만을 깊게 간직하게 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떠오른 아버님, 어머님 얼굴. 차마 떠날 수 없는 길을 떠나고자 하는 순간에 척박한 팔레스티나에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한 인간이 고행 전에 느낀 마음을 알 것도 같습니다.

 

분단조국 44년(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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