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2월 12일 밤.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은 허삼수, 우경윤 대령에게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강제연행을 지시했다.
당시 국군보안사령부 인사처장 겸 계엄사령부 소속 합동수사본부 조정통제국장이던 허 대령은 합동수사본부 수사 제2국장 우 대령 등과 함께 대통령의 재가도 없이 오후 6시 50분경 무장한 제33 헌병대 병력을 정 총장 공관 주변에 배치했다. 이로부터 약 20분이 지난 7시 10분경 정 총장을 체포해 국군보안사령부 서빙고 분실로 연행했다.
같은 시간에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은 총리공관에 머물고 있던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 총장 체포에 대한 재가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한다. 이에 오후 9시 30분경 유학성 황영시 차규헌 박희도 등과 함께 집단적으로 대통령을 다시 찾아가 재차 정 총장의 체포 및 연행에 대한 재가를 강압적으로 요구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신군부세력은 ‘12월 13일 오전 5시 10분경 대통령이 재가를 했다’고 발표했지만, 대법원은 ‘이는 정 총장이 이미 체포된 이후이고 또 신군부 세력이 군권을 장악한 이후에 이루어진 것으로서 ‘사후승낙’에 불과하기 때문에 반란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12·12사태 다음 날 아침 정 총장 연행에 대해 당시 노재현 국방부 장관은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에 관여했던 것이 판명되었기 때문”이라는 짤막한 배경설명을 발표했지만 노 장관 역시 신군부에 의해 장관직에서 쫓겨났다.
12·12사태를 주도했던 신군부세력은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계기로 국가권력을 탈취함으로써 쿠데타를 마무리했다. 1980년 ‘서울의 봄’을 짓밟고 등장한 제5공화국의 뿌리는 여기에서 시작됐다.
12·12사태의 진상은 이후 10여 년간 밝혀지지 못한 채 권력에 의해 은폐되어 오다가 김영삼 정부 때 신군부의 주역인 전두환 노태우가 구속돼 사법적 심판을 받는 과정에서 ‘한국정치사에서 5·16 이후 또 한 번의 하극상에 의한 군사쿠데타’로 결론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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