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인생, 사랑 하나면 두려울 것 없네
“시간의 옆구리, 작은 골방 하나를 나는 알고 있다.
가끔 나는 그 골방으로 들어가 명상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린다.
그때는 시간도 공간도 정지한다. 그리고 모든 현실은 사라져 버린다.”
소설가 이외수가 쓰고 화가 정태련이 그린 신작 산문집
이외수 작가와 정태련 화백이 신작 그림 에세이『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방』으로 2017년 독자들을 만난다. 30여 년이 넘도록 나이를 초월해 우정을 나누고 있는 두 작가는 그동안 베스트셀러『하악하악』『절대강자』『쓰러질 때마다 일어서면 그만,』 등을 출간해 150만 부 이상 판매하면서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두 작가가 여덟 번째로 함께 만든 이 책에는, ‘치열한 인생, 사랑 하나면 두려울 것 없네’라는 말처럼, 험난한 인생을 사랑으로 버텨 내리라는 다부진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외수 작가가 매일의 일과를 보내며 집필한 원고는 정태련 화백이 1년여 동안 그려낸 그림 73점과 어우러졌다.
전체 7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이외수 작가가 직접 고백하는 어린 시절 에피소드부터 현재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국내 최초 트위터 팔로어 100만 명 돌파’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작가는 소셜 미디어로 끊임없이 독자들과 소통하게끔 만드는 동력이 사실 ‘외로움’에서 나온다는 것을 나지막이 고백한다. ‘시간과 공간이 정지한’ 방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픈 마음은 어린 시절의 남모를 아픔과도 떼어 낼 수 없었던 것이다.
작가는 독자들의 감성을 북돋우는 촌철살인의 글들은 모두 타인과의 연결을 꿈꾸는 작가 자신의 외로움에서 발아했음을 속속들이 털어놓는다. 알을 깨고 나오는 새처럼, 혼자만이 알고 있는 ‘영혼의 골방’에서 나와 스스로 외로움을 달래고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삶의 기쁨을 누린다는 작가의 이야기가 솔직하게 읽힌다. 이와 더불어 유머러스한 에피소드, 개인적인 일과 등이 흥미롭게 읽힌다.
세밀화 중심의 전작들과 달리, 정태련 화백은 이번 책에서 연필과 색연필, 마커 등 혼합 재료를 활용하여 부드러움과 강렬함의 변주를 보여준다. 특히 시간이 정지한 듯한 이미지를 드로잉 기법으로 표현해냄으로써 고독과 외로움의 순간들을 감각적으로 포착했다.
사회적 격변의 시대를 통과해 개인적인 고민이 점차 커져 가는 이때, 이 책은 ‘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나만의 방으로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하여 삶에 대한 고민으로 지친 이들이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마련케 해줌으로써 위안과 안식으로의 길을 열어줄 것이다.
지은이 이외수
독특한 상상력, 탁월한 언어의 직조로 사라져가는 감성을 되찾아주는 작가. 1946년 경남 함양군에서 태어났고, 춘천교대를 자퇴한 후 홀로 문학의 길을 걸어왔다. 현재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 감성마을에 칩거, 오늘도 원고지 고랑마다 감성의 씨앗을 파종하기 위해 불면으로 밤을 지새고 있다.
장편소설 『보복대행전문주식회사』 『장외인간』 『괴물』 『황금비늘』 『벽오금학도』 『칼』 『들개』 『꿈꾸는 식물』과 소설집 『완전변태』 『훈장』 『장수하늘소』 『겨울나기』 등을 발표했다. 시집 『더 이상 무엇이』 『그대 이름 내 가슴에 숨 쉴 때까지』와 에세이 『자뻑은 나의 힘』 『쓰러질 때마다 일어서면 그만,』 『사랑외전』 『절대강자』 『코끼리에게 날개 달아주기』 『아불류 시불류』 『청춘불패』 『하악하악』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 우화집 『사부님 싸부님』 『외뿔』, 대담집 『먼지에서 우주까지』 『뚝,』 『마음에서 마음으로』 등을 출간했다.
그린이 정태련
세밀화를 통해 우리 땅의 생명, 민족 고유의 유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을 평생의 소명으로 간직하고 살아가는 화가. 서울대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후 다년간 생태 관련 세밀화 작업에 전념했다. 현재 북한강 상류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서 느림의 삶을 영유하고 있다.
그린 책으로는 한국의 민물고기가 꿈틀대는 『하악하악』, 천년의 유물을 담은 『절대강자』, ‘세상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주제로 한 『사랑외전』, 야생화가 돋보이는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 ‘시간과 나, 그리고 영원’을 그린 『아불류 시불류』, ‘민물고기와 야생화의 아름다운 만남’인 『쓰러질 때마다 일어서면 그만,』, 세밀화와 입체적 기법의 만남을 추구한 『청춘불패』가 있다. 그 외에도 『보리 동식물도감』 『우리 땅에서 사라져가는 생명들』 『수많은 생명이 깃들어 사는 강』 등에 그림을 그렸다.
본문 중에서
어릴 때 나는 할머니와 같이 살았다. 어머니는 두 살 때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전쟁통에 행방불명이 되고, 나는 할머니와 동냥밥을 얻어먹거나 이삭을 주우면서 끼니를 연명했다. 우리가 사는 곳은 산 밑 다 허물어져 가는 초가 움막이었다. 날마다 잠에서 깨어나면 대낮에도 컴컴한 어둠이 웅크리고 있었다. 움막 안에는 아무도 없고 어둠과 함께 적요만이 나를 짓눌러 왔다. 어둠 속의 적요는 곧 공포였다. 다섯 살 때였다.
우리가 사는 움막은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거적때기를 들추고 밖으로 뛰쳐나가면 마을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나는 마을 어디쯤엔가에서 동냥밥을 얻고 있거나 이삭을 줍고 있을 할머니의 귀에까지 들리도록, 고래고래,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울어 댔다. 그러나 아무리 울어 대도 할머니는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적요가 공포다. 곁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 또한 공포다. ―<1장 적요는 공포> 중에서
내가 전라도 어느 지역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평소 나를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따르던 조폭 오야붕이 내 차를 운전하게 되었다. 자기가 있는데 절대로 형님이 직접 운전대를 잡게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막무가내였다. 그런데 이 녀석, 고속도로를 내달리던 중 안전 설치물이 없는 길이 나오자 갑자기 중앙선을 침범, 유턴을 해 버린다. 기름이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하향선 쪽 주유소가 가깝다고 했다. 나는 녀석을 심하게 나무랐다. 의기소침해진 조폭 오야붕. 녀석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런데 얼마나 고속도로를 내달렸을까, 녀석이 갑자기 말문을 열었다.
“형님 말입니다. 지는 전생에 무얼 하면서 살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제가 쓴 시는 기억나지 말입니다.”
“니가 전생에 시를 썼단 말이냐?”
“그렇지 말입니다 형님.”
“함 읊어 봐라.”
녀석은 크게 심호흡을 한 다음 느린 목소리로 시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이런 개시키!” ―<2장 청량한 액체 상태> 중에서
그러면, 읽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고 나아가 세상을 보다 나은 쪽으로 변모시키는 글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 일단 읽는 맛과 감동을 겸비하고 있다. 재미없는 글을 끝까지 읽어 달라고 말하는 것은 문자 고문을 끝까지 당해 달라는 말과 같다. 대개 감동과 재미를 겸비한 글들은 발효된 진실이 배합되어 있다.
―<3장 털갈이의 계절> 중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꽃이 영원토록 색깔도 변하지 않고 시들어 떨어지지도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바람이 꽃에게도 좋은 바람일까. 꽃은 시들어 떨어져야 열매를 맺을 수 있고 열매를 맺어야 꽃의 사명을 다할 수 있다.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7장 기다림 속 희망> 중에서
차례
1장 적요는 공포
2장 청량한 액체 상태
3장 털갈이의 계절
4장 바람의 칼날
5장 솜이불과 가시방석
6장 조각구름 한 덩어리
7장 기다림 속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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