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평론가로 『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 여행』 등을 통해 건축물에 담긴 역사와 인물들의 이야기를 소개해온 저자가 이번에는 선비들의 발자취를 따라 나섰다. 삼촌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겨 궁궐에서 쫓겨난 단종에서 대한제국 마지막 황세손 이구까지, 그들의 고단한 여정이 남아 있는 옛 건축물을 하나하나 찾아간다. 아빠와 딸의 대화를 통해 딱딱한 교과서 속 선비들이 톡톡 튀는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출판사 서평>
어라, 가까운 곳에 이런 역사 현장이 있었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고 찾아가는 답사 여행기
-옛 건축물에 선비들의 발자취가 살아 숨 쉰다!
대개 부모들은 아이들과 역사 현장을 찾더라도 배경 지식이 부족해 아이들 앞에서 입을 다무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딱딱한 교과서로 배운 역사 인물들에게 이미 흥미를 잃은 상태이기 쉽다. 이 책은 부모와 아이들이 책 속 유적지를 찾아갈 때도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만, 무엇보다 역사가 어렵고 지루하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주변에 있는 역사 현장에 새롭게 관심을 갖게 해준다. 특히 저자는 아이들이 경쟁만 강요받는 교육에서 벗어나 사람됨을 배우기 위해서는 인문학 교육이 필요하고 그 방법으로는 답사 여행만 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답사 여행이라고 굳이 애써 멀리 유명한 곳을 찾아다닐 필요도 없다. 이 책에 소개된 선비들의 발자취 중 서울 지역만 살펴보더라도 압구정, 망원정, 청룡사, 사육신 묘, 청권사, 새남터 등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 많다. 서울이 아닌 곳에서도 남간정사(대전), 환벽당(광주) 등 자신이 사는 곳 주변에 역사적인 인물이 거쳐 간 건축물과 기념물이 숨어 있음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여름 휴가철 영월에서 래프팅을 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그곳에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잠시 시간을 내 마음의 휴식을 얻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저자는 딸과 대화하면서 고전과 역사, 건축에 대한 지식도 함께 전한다. 한시와 사자성어를 틈틈이 일러주는 한편 선비를 소개하는 중간에도 과거 시험이 어떻게 치러졌는지, 호(號)는 어떤 방식으로 붙였는지, 유배지는 어떤 기준으로 정해졌는지, 한자로 되어 있어 잘 이해하기 어려운 벼슬들은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서원의 건물은 어떤 기준으로 배치하였는지, 한옥은 왜 위대한 건축물인지 등을 알기 쉽게 풀어준다.
<저자 소개>
1960년 서울 생. 부친은 대한민국 육군 중령으로 전역한 한국전쟁 참전 용사. 아버지께 독서가 가장 중요한 재산이라는 가르침을 얻음. 중학교까지는 성적이 상위권이었으나 1976년 강남의 영동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성적이 바닥까지 밀려남. 4형제의 막내로 과외와 학원을 한 번도 못 경험함. 강남의 치맛바람에 내 꿈은 날아가고. 이때부터 삐딱해지기 시작.
명지대 건축과에 턱걸이 입학. 명문대 애들이 안 하는 건 뭘까. 글쓰기군. 건축평론으로 대한민국 1호 석사. 건축 잡지 만듦. 박봉. 아예 시장 자체가 없다. 다들 안 하는 이유가 있었군. 절필. 공사현장에 뛰어든다. 돈이나 벌자. 어라, 건축현장에 건축인이 없네. 건축업자들뿐.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에 부실공사가 판치고. 법대로 시공하자던 난 가격 경쟁력이 없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은퇴.
불혹에 택시 운전 시작. 5년 동안 5만 명의 손님과 대화. 충격. 난 내 또래 사람들이 다 대학원까지 공부한 줄 알았다. 너무 위만 보고 살아 왔군. 이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써도 되겠군. 건축계를 비롯해 각계 어른들 찾아다니며 들은 말씀을 채록. 대한민국 현대건축은 어두운 정치 현실의 반영이었음을 까발렸다. 야사도 포함해서. 난 진지하게 고해성사를 한 셈인데 독자들에게는 흥밋거리로만 비쳤나. 내 책은 심심할 때 읽는 땅콩이라는 댓글이 계속 올라오고. 나 원 참.
2007년 숭례문 전소. 전국의 문화재를 찾아 나섰다. 현대건축을 전공한 나는 문화재 탄생 비화를 캐면서 새로운 눈을 떴다. 조선 시대에는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건물을 지었다. 당대에 못하면 후대가 완성한다. 난 학교생활 18년 동안 이런 걸 배운 적이 없다. 내가 제도권 교육을 싫어하는 이유다.
좋다, 그럼 후학들에게 자연과 인간이 함께하는 건축을 전하겠다. 여러분, 건축은 선현들의 피와 눈물이 빚어낸 고난의 산물입니다. 같이 한번 다녀보시렵니까. 전국을 누비고 또 누볐다. 물론 그 대가는 혹독하다. 얼마 전 난 나이 오십에 응급실에 실려 갔다. 의사 왈, 간이 부었군요. 계속 이러시면 오래 못 삽니다. 30년 만에 술을 끊었다. 오늘도 난 고독한 러너.
얼마 전 돌아가신, 『당신들의 천국』의 저자 이청준 선생에게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 빚만 쌓여 가는데 글쓰기를 계속해야 되나요?”
“현실을 이기는 예술은 없다. 네 글이 백 년 뒤에 받아들여 질 거라고?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올라 와라.”
“아, 예.”
갈 때 가더라도 난 계속 쓴다.
왜냐고. 어차피 갈 거니까.
“아빠, 빚은 갚고 가.”
“뭐라.”
<목차>
서문 옛 선비를 따라 팔도를 주유(周遊)하다·5
1 임을 향한 일편단심
궁궐을 나온 원통한 새 단종 13
어찌 임마다 좇으랴 박팽년 29
고사리만 캐먹고 살리 조려 47
팔도 방랑한 천재 선비
부와 명예 덧없어라
2 고난 속에 피어난 예술혼
「관동별곡」, 「사미인곡」의 정철 85
「세한도」를 낳은 제주 유배
3 뜻에 살고 뜻에 죽는다
성리학으로 개혁을 외친 김종직 115
전국에 향약을 전파한 김정 125
의를 보고 망설이지 않은 정온 137
주자의 의로운 길 따른
4 변화의 물결을 넘어서다
실사구시로 백성을 살핀
성인에 오른 순교자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대한제국 마지막 황세손 이구 203
5 물러설 때와 나설 때를 안다
부처님 나라에 귀의한 효령대군 219
초야에 살며 학문을 이루다 조식 231
예(禮)의 나라를 꿈꾼 김장생 243
조선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변중일 257
추천사 톡톡 튀는 모습으로 살아 돌아온 조선 선비들 266
<책 속으로>
1441년 조선 제5대 왕 문종의 부인 현덕왕후가 유일한 세자 단종을 낳고 세상을 떠난다. 1452년에는 문종도 왕위에 오른 지 2년 만에 부인을 따라 승하한다. 어라,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네.
단종은 열두 살의 나이에 조선 제6대 왕에 오른다.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교 5학년의 어린 나이다. 단종의 삼촌 수양대군은 어린 조카의 왕위가 탐이 난다. 책사(策士, 남을 도와 꾀를 내는 사람)
“이보게, 나 왕 한 번 해야겠소. 방법이 없을까?”
“나리의 형제가 몇 명이지요?”
“내가 팔형제의 둘째고, 서자(庶子)만 열 명, 열여덟 명이네. 많기도 하다.”
“그중 제일 센 왕자를 본보기로 죽여야 합니다.”
“친동생을 죽이라고?”
“아님 말고요.”
“아빠,
“응.”
“그럼 내가 태어난 압구정동이랑 상관있는 거야?”
“응.
所處以號 소처이호 생활하거나 인연이 있는 처소로 호를 삼는다.
所志以號 소지이호 이루고자 하는 뜻으로 호를 삼는다.
所遇以號 소우이호 환경이나 여건을 호로 삼는다.
所蓄以號 소축이호 좋아하거나 간직한 것으로 호를 삼는다.
-‘궁궐을 나온 원통한 새 단종’ 중에서
어계 조려 선생은 당나귀를 타고 단종이 머물던 청령포를 방문해 문후(問候, 웃어른의 안부를 여쭘)를 드린다. 단종은 열다섯 살, 어계는 서른여섯 살이었다.
“진지는 드셨는지요?”
“고사리만 먹는다네.”
“수양대군이 쌀을 안 보내주나요?”
“어떻게 그걸 먹겠나. 낚시나 하세.”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눈물이 멈출 줄 모르고 흐른다. 어계는 이후에도 영월을 네 차례 더 찾는다. 그러던 어느 날 단종의 승하 소식을 듣고 다시 영월로 간다.
“전하 시신 어디 있느냐?”
“모릅니다. 알려드리면 저희 집안 멸족됩니다.”
“뭐라.”
“원호 선생이 어딘가에 모셨다는 이야기가….”
생육신의 한 사람인 원호와 3년을 시묘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3년 동안 누룽지만 먹었다. 그러고서 충남 공주 동학사를 찾아 단종의 제단을 쌓았다.
(…)
어계 선생은 시묘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어계고택의 현판을 다시 걸었다. 원북재(院北齋). 영월에 계신 단종을 그리워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그리하여 고택은 재실(齋室,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집)이 되었다. 뒷마당에는 사당을 세웠다. 현판은 조묘(笭廟). 선생은
“얘들아, 막걸리 내와라.”
“안주는 무엇으로 준비할까요?”
“고사리.”
어계는 1489년 눈을 감았다. 향년 70세. 지존(至尊) 단종 떠나시고 33년 동안 고사리만 드시다 가신 거다.
“아빠, 어떻게 고사리만 먹고 33년을 살아?”
“선비들은 그래. 아빠도 라면만 먹고 사는걸 뭐.”
-‘고사리만 캐먹고 살리 조려’ 중에서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원(陵園)을 수원 화산(花山)으로 옮긴 뒤 고민이 생겼다.
“여봐라, 부친의 능이 있는 수원에 자주 가야 되는데 한강을 안전하게 건널 방법이 없겠느냐?”
“배다리를 놓으면 되옵니다.”
“뭐라, 그게 무엇인고?”
“배를 쇠사슬로 연결하고 철판을 깔면 되옵니다.”
정조가 능행길에 나섰다. 수행 인원만 2천 명. 한강에 오가는 배들은 모두 모여라. 8백 척을 연결하니 다리가 되었다. 거참, 머리 좋다.
“짐이 새로운 도시를 수원에 만들려고 하는데 공사 기간을 좀 줄일 방법이 없겠는고?”
“있습니다. 거중기(擧重機)를 사용하면 됩니다.”
“그건 또 무엇인고?”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해 작은 힘으로 무거운 돌을 쉽게 들어 올리는 기계입니다.”
“그대는 어찌 그리 모르는 게 없는고? 본관이 어디라고 했던가?”
“나주이옵니다.”
“그쪽은 아닌 거 같고…. 모친의 본관은 어디인고?”
“해남 윤 씨이옵니다.”
“뭐라, 그럼 공재 윤두서와는 어떤 관계인고?”
“외할아버지시옵니다.”
“그럼 그렇지!”
“아빠, 윤두서가 누구야?”
“겸재(謙齋) 정선, 현재(玄齋) 심사정과 함께 조선 후기의 3재라고 하지. 「윤두서 자화상」은 국보 240호야. 대한민국 국보 4백 개 중에 초상화가 국보로 지정된 건 단 네 작품뿐이고.”
“3재가 뭐야?”
“호에 재(齋)자를 쓴 가장 위대한 3인의 화가.”
-‘실사구시로 백성을 살핀
<추천사>
톡톡 튀는 모습으로 살아 돌아온 조선 선비들!
건축 글쟁이로 사람 사는 이야기를 헤집고 다니는 저자의 관심사가
이번에는 조선 시대의 선비들로 향했다. 딱딱한 교과서 속 암기대상이었던
역사 인물들이 우리처럼 피가 도는 따듯한 존재로,
때론 성깔 부리는 생생한 캐릭터로 바뀐다.
그의 파격적인 해석과 상상에 시비를 걸 수는 있어도 톡톡 튀는 모습으로
살아 돌아온 조선 선비들의 등장에 웃음 짓지 않을 수는 없다.
분명 그는 우리 시대의 독특한 글쟁이다.
-구본준 한겨레신문 기획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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