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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이벤트

북이벤트-낙천주의자의 딸

by 칠면초 2008. 12. 4.

http://cafe.daum.net/liveinbook/Rst/2005

 

 

The Optimist’s Daughter

 

 

“삶과 죽음, 그리고 가족을 생각한다!”

퓰리처상 수상작가 유도라 웰티의 최고 걸작!

 


화려한 이력과 비평적 찬사에도 불구하고 국내 독자들이 알지 못했던 유도라 웰티.

섬세하면서도 응축된 문체와, 미국 문학사에서 가장 예리한 ‘눈’을 가진 소설가를 만난다!


퓰리처상, 8회에 걸친 오 헨리 문학상, 전미도서상, 미국학술원 금상, 전미평론가협회상 등을 수상하고 미국대학위원회의 수험생을 위한 ‘SAT 추천도서 101’에도 선정된, 현대 영미문학사의 큰 획을 그은 소설가 유도라 웰티. 그럼에도 웰티의 작품이 지금껏 한 번도 한글로 번역되어 소개되지 않았다는 점은 국내 독자들에게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갖게 할 수밖에 없다.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인 로버트 펜 워런은 유도라 웰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유도라 웰티를 칭찬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칭찬-이는 대단한 즐거움이다-이 나오게 만드는 작품 속의 요인들을 분석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사실 최상의 찬사일 수도 있다. 너무나 완전하게 창조되고, 너무나 심오하게 구체화되고, 화려한 통일체로 스스로 모습이 드러나는 너무나 명백한 순결함으로 만들어진 최고의 작품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들은 윌리엄 포크너와 유도라 웰티를 곧잘 비교한다. 두 작가의 출신지가 같은데다 20세기 미국 남부 문학의 전통을 세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크너의 작품이 사회문제, 즉 인종과 민족문제를 거시적으로 다루고 있는 반면 웰티는 인물과 풍경을 오밀조밀하고 맛깔스러운 형태로 표출하는데 다양한 등장인물과 복잡한 관계들, 풍부한 유머, 미묘한 대화, 삶에 대한 지혜와 분별 등을 세밀한 문체로 그려낸다.


유도라 웰티의 대표작인 [낙천주의자의 딸]은 퓰리처상 수상작(1973년도)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자전적 소설이다.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서 살아가던 로렐 핸드는 아버지의 수술 소식을 듣고 뉴올리언스로 오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수술 후 죽음을 맞게 된다. 로렐은 아버지의 어리석고 젊은 새 부인 페이와 같이 그녀가 예전에 살았던, 미시시피의 집으로 돌아와 장례를 치르고 옛친구들과도 재회한다. 그곳에서 로렐은 며칠 동안 혼자 머물면서 과거를 회상하고 자신과 부모, 가족․친구와의 존재가치, 사랑과 이별의 의미 등을 가슴 깊이 느끼게 된다.

[낙천주의자의 딸]은 그들에게 일어났던 일의 의미를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서로 얽혀진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웰티는 능가할 자가 없는 예술적 기교를 통해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가 그렇게 밀접한 관련을 맺고 살았던 미시시피의 작은 도시의 삶과 타협하게 되는 로렐의 몸부림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로렐은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 페이와 같은 사람들을 대하면서, 자신도 그들의 공통적인 과거로부터 거리를 지키며 떨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늘날의 수많은 사람들처럼, 로렐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실제적으로 얽히는 걸 피하며 도시에서 살아왔다. 아버지의 죽음에서 받은 충격만이 그녀에게 사랑과 죽음과 기억 사이의 관계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게 해준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다양한 인물들과 그들의 복잡다단한 관계, 묘사 없이도 드러나는 대화의 풍부한 유머와 섬세함, 짧은 소설의 테두리 안에 응축된 넓은 폭, 인간 삶에 대한 작가의 비전 밑에 깔린 지혜와 통찰력 등 다양한 측면과 위대한 내용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과의 영원한 이별 앞에 서서 지난 시간의 추억과 고통을 떠올리고,

진정한 용서와 화해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주는 소설!


[낙천주의자의 딸]은 플롯이 자아내는 박진감 넘치는 변화보다는 등장인물들의 미묘한 심리와 갈등을 읽어내는 재미가 훨씬 더 크다. 그 핵심 인물이 바로 로렐과 페이다. 매켈바 판사와 결혼한 페이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헤아려주는 마음이 결여된 이기주의자로,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미시시피 주 마운트 세일러스의 옛집으로 돌아온 로렐과 사사건건 부딪힐 뿐만 아니라 조문하러 온 이웃집 사람들에게도 예의 없이 함부로 대한다. 로렐은 아버지를 잃은 슬픔 속에서 이웃사람들이 건네는 따듯한 위로를 받으며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리지만 한편으로 페이의 무례한 행동과 가시 돋친 말을 감내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과거 속에서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전사한 남편을 만나면서 화해와 용서의 길을 찾으려 애쓴다. ‘기억은 소유가 아니라 자유로워진 손 안에, 용서받고 자유로워진 손 안에, 비어 있지만 꿈들에 의해 복구되는 방식으로 다시 채워질’ 거라고 생각하며.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 일생 동안 수많은 추억과 고통의 순간을 함께 나누지만 막상 가족들 중 누군가 죽음의 순간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그(녀)를 어떻게 기억하고 슬퍼해야 할까? 삶과 죽음의 경계가 분명해지면 그동안 묻어두었던 단절과 소통의 문제가 급부상하게 된다. 특히 그 빈자리가 클수록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눈앞의 문제가 더욱 복잡해진다. 한 개인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살아 있는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생채기를 남기고 제각각의 형상으로 기억된다.

단 한 번도 희망을 얘기한 적이 없으면서 자신이 낙천주의자라고 말하는 아버지. 남의 눈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자기 방식으로 행동하고 말하면서 로렐과 팽팽한 긴장관계를 이어가는 페이. 로렐이 도시로 떠나지 않고 옛집에서 살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이웃집 사람들과 친구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때가 묻어 있는 집을 돌아보며 즐거움과 고통이 공존하는 지난 시간을 마음속 깊이 소중히 간직하려는 로렐. 이들이 삶과 죽음, 그리고 타인을 대하는 방식은 인간의 보편적인 내면의 모습과도 맞닿아 있다.


•추천의 글


한없는 시간의 나이테를 속에 품고 뒤를 돌아보는 [낙천주의자의 딸]은 바로 한 시절을 보낸 인간인 낙천주의자의 아픈 기록이다. 그 기록은, 시간은 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란 말을 깊이 생각하게 한다. 존재가 있기 때문에 고통스럽고, 관계 때문에 갈등하는 것이 수고로운 인생이란 것을 구석구석 살펴내고 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낯익은 삶을 드러내면서도 마치 지금 막 낯선 곳을 발견한 것처럼 새롭게 영혼을 건드린다. 그 중에서도 ‘삶은 늘 의외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마련’이라는 대목이 나를 자극했고 ‘사람들은 원래의 자기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대목에서는 마음 밑바닥에 희망을 쓰고 싶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아름다움은 아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라 하고, 슬픔은 가면을 쓰지 않는다고 말하는 유도라 웰티. 그녀만큼, 그녀의 책만큼 누가 감히 한 사람의 가슴이, 무엇이 진실인가를 알 수 있게 할까.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으로 하늘의 달만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마음의 지도를 그려주고 생의 끝까지 길동무가 되어주는 것으로 책만한 것이 없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행복을 알면서 가지지 못할 때, 넘어서야 할 또 다른 절망이 있을 때, 자기만의 무늬를 만들어가는 사랑법을 배울 수 있도록 당신 마음 곁에 그림자처럼 이 책 한 권을 가만히 들여놓고 싶다. 모든 것들의 이면에서 유머를 찾을 낙천주의자들을 위해, 모든 것들의 이면이 우습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아낼 낙천주의자의 딸들을 위해, 그리고 당신이 채워야 할 당신의 빈 곳을 위해.

-천양희 _시인


잊고 있었던 추억들이 봄나무처럼 강렬한 생명력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로렐에게는 아버지의 죽음이 그랬다. 가족들의 죽음을 떠올리게 하고, 울게 만들었다. 아마 그녀는 이제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다. 기억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므로.

-한미화 _출판칼럼니스트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살아간다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인가. 간결하고 섬세하게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사람들을 애도하고 마음속에 간직해야 하는 우리네 삶을 소설로 보여준 작품이다.

-황정민 _KBS 아나운서


해외 서평 및 독자 리뷰


[낙천주의자의 딸]은 1969년 3월 15일부터 <뉴요커>에 연재되었다. 경이로울 정도로 함축미가 돋보이지만 그 안에는 심오함이 담겨 있다. 빼어난 단편소설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함축성, 서스펜스, 고전적인 필연성 등을 모두 갖추고 있다. 웰티는 ‘남부를 사랑하는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어떤 범주로 분류하기에는 너무나 뛰어난 작가다. 그녀의 작품에는 서로 연관된 두 개의 개념이 등장한다. 평범한 것이 얼마나 쉽게 전설이 될 수 있는지, 이국적인 것이 얼마나 확고하게 진부한 것에 토대를 둘 수 있는지…… 유도라 웰티의 소설 중에서 최고의 걸작!

<뉴욕타임스>


단순함과 예리한 지성이 돋보이는 수작. 마술처럼 독자들도 그 매력을 공유하게 된다.

<뉴요커>


이 자전적인 소설은 부모와 자식의 미묘한 유대, 사랑과 슬픔의 복잡한 관계를 탐험한다.

<메리엄 웹스터 백과사전>


내면을 들여다보는 간결한 소설. 분량은 작지만 따뜻한 가슴이 담겨 있다. 아버지의 사후 계모와 아버지를 매장하러 가는 길, 소설은 내면을 파고들고 결국 로렐은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의 가슴 속 가장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샘이 모습을 드러내고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이 소설의 뒷부분에서는 많은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저질스러운 페이의 친척이 장례식에 참석하러 오고 굴뚝으로 내려온 새가 갇히고…… 웰티는 이 작품 안에 전체 삶을 압축하여 담았다. 이 작품은 복잡한 관계들이 얽혀 있는 하나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런 세계가 더 이상 존재할 수 있을까? 심지어 그런 세계는 이 소설에서조차 점차 사라져간다. 그럼 사라짐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버릇없고, 유치하고, 천박한 페이다. 그녀는 사랑에 대한 열정도 상상력도 없다. 웰티는 악의 어린 에너지를 페이와 그녀의 친척-편협하고 입이 거친-에게 쏟는다. 그들에게서는 계급적인 속물근성 이상의 것을 엿볼 수 있다-비통함에서 기쁨을 찾고 적의로 들끓는.

한편 페이는 미래에 속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반면 로렐은 과거에 속하는 인물이다(웰티 자신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가장 자전적인 작품 중 하나. 슬픔, 기억, 상실 그리고 사랑을 불러냄으로써 과거는 현재와 연결된다.

-메리 파크


과연 이 작품은 아주 잘 쓰인 흥미로운 소설이었다-색다른 배경,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 탁월한 플롯. 이 작품의 주인공인 로렐은 아버지의 사망 후 재봉실 안에서 자신의 부모와 가족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8학년 학생 _뉴저지 주


처음 읽을 때는 전혀 감동을 받지 못했다. 처음부터 나는 불평했다. “지겨워! 지겨운 스토리에 지겨운 인물! 재미도 없고 결정적인 순간도 없고!” 그러나 이 책을 모두 읽은 뒤에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로렐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지속하는지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세상사가 얼마나 심오한지 깨달았다. 유도라 웰티는 자신이 믿거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짐을 내려놓으면 삶이 훨씬 더 쉬워진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친척이나 친구들은 기꺼이 도와줄 것이다. ‘필요할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속담처럼 말이다. 그렇게 이 소설은 하나의 사실을 확신시켜준다. 사랑하는 사람 없는 삶이란 결국 아무 것도 아니라고. 로렐이라는 인물은 자신의 부모를 향한 순수한 사랑을 상징한다.

-애머니 _대학생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과 추억, 그리고 애도   ...‘옮긴이의 말’에서


개인적으로 나는 이 소설처럼 죽음과 상실과 기억의 의미를 만족스럽고 지혜롭게 처리한 예를 알지 못한다. 우리는 가급적이면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하지만, 언젠가 우리도 죽을 것이고, 그에 앞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것은 불가피한 일일 테니 그 문제를 마냥 외면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웰티는 부모와 남편의 죽음과 그들에 대한 기억을 대하는 로렐 핸드의 예를 통해서, 복잡다단한 인간 심리를 탁월하게 형상화함으로써 독자를 사념의 늪에 빠지게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읽고 번역하면서 애도(哀悼)의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자크 데리다가 생전에 엠마뉴엘 레비나스, 롤랑 바르트, 폴 드 만과 같은 친구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글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시기와 겹쳐서도 그랬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문제를 다룬 이 소설이 내 마음 어딘가를 건드린 탓이 더 컸을 것이다. 누군들 그렇지 않으랴만 언젠가 나에게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추억과 애도의 문제가 절박하게 다가올 거라는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두려운 사실을 이 소설은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가 번역한 어떤 소설보다 [낙천주의자의 딸]은 내게 개인적인 반응을 요구한 소설이었다.

웰티의 소설을 번역하는 일은 그녀가 섬세한 작가인 것만큼이나 섬세함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분량은 다른 작가들의 소설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플롯보다는 인물의 ‘눈’으로부터 탄력과 추진력을 끌어내는 소설이어서 세밀한 부분에 무척 신경을 써야 했다. 그것이 내 마음처럼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웰티의 소설이 갖고 있는 섬세함과 시적인 속성을 나의 번역문이 조금이나마 담아낼 수 있었기를 희망해본다.


본문 중에서


자신을 낙천주의자라고 했던 그는 단 한 번도 희망을 얘기한 적이 없었다. 이제, 그것을 그에게 들이미는 사람은 그녀였다. 그리고 그것은 잘못된 희망일지도 몰랐다.(본문 45p.)


우리는 죽어가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짐을 지우는가. 그들이 더 이상 느끼지 못할 때, 우리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붙들 수 있는 작은 것들을 들이대면서 말이다. 기억의 영원성, 해악에 대한 경계, 자신감, 희망, 서로에 대한 믿음 등 들이댈 수도 없고 붙들 수도 없는 것에 집착하면서 말이다.(본문 206~207p.)


그가 무서운 얼굴로 자신을 낙천주의자라고 하기 시작한 건 바로 그때였다.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서 그 말을 들춰냈던 건지도 모른다. 그는 아내를 사랑했다. 그녀가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은 무엇이든 괜찮았다. 그녀가 내몰려서 무슨 말을 하든 괜찮았다. 하지만 그것은 괜찮은 게 ‘아니었다’. 그녀의 문제는 바로 그 절망이었다. 그녀가 절망적으로 사랑하고, 그녀가 절망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렇게 만들 힘이 없었다. 그것은 배반에 대한 배반이었다.(본문 212p.)


사랑하는 사람들보다 오래 사는 것에 대한 죄의식은 당연히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그들보다 오래 산다는 것은 우리가 그들에게 하는 어떤 것이다. 죽는 것에 대한 환상들은 사는 것에 대한 환상들보다 더 낯설 수는 없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어쩌면 그 중에서 가장 이상한 환상일지 모른다.(본문 228p.)


과거는 관 속에 누워 있는 아버지만큼이나 도와주거나 해를 끼치려고 열려 있지 않다. 과거는 그처럼 무감각하고 다시는 깨어날 수 없다. 몽유병자인 것은 기억이다. 그것은 저 세상으로부터 상처를 안고 돌아와서, 필이 그러한 것처럼, 우리의 이름들을 부르면서 정당한 눈물을 요구할 것이다. 그것은 결코 무감각해지지 않을 것이다. 기억은 거듭하여 상처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 그것의 최종적인 자비로움은 있을지 모른다. 그것이 살아 있는 순간에 취약한 한, 그것은 우리를 위하여 산다. 그것이 살아 있는 동안,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동안, 우리는 그것에 합당한 몫을 부여할 수 있다.(본문 250p.)


지은이 및 옮긴이 소개


유도라 웰티(Eudora Welty)

1909년 미시시피 주의 잭슨 시에서 태어나 위스콘신 대학과 콜롬비아 대학을 다녔으며, 자신의 고향인 잭슨의 라디오 방송국과 신문사에서 일하며 여러 잡지에 소설을 발표해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았다. 또한 미국 남부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서민들의 가슴 저미는 생활상을 카메라에 담아 사진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유도라 웰티는 첫 번째 단편소설집 [초록색 커튼(A Curtain of Green)]을 발표하면서 비정상적이고 괴벽스러우며 특이한 인물을 등장시켜 자신만의 코믹하면서도 섬세한 작품세계를 일궈나가기 시작했다. 이후 [넓은 그물(The Wide Net)] [황금 사과(The Golden Apples)] [이니스폴른 호의 신부(The Bride of the Innisfallen)] [달빛 호수(Moon Lake)] 등의 단편소설집과 [델타의 결혼식(Delta Wedding)] [폰더 씨의 심정(The Ponder Heart)] [패전(Losing Battles)], 그리고 1973년 퓰리처상을 받은 [낙천주의자의 딸(The Optimist’s Daughter)] 등의 장편소설을 발표하면서 다양한 등장인물과 그들의 복잡한 관계, 풍부한 유머, 미묘한 심리와 갈등, 무한한 상상의 세계,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 등을 보여주었다.

유도라 웰티는 8회에 걸친 오 헨리 문학상, 전미(全美)도서상, 퓰리처상, 미국학술원 금상, 전미평론가협회상 등의 굵직한 상들을 수상했으며, 1998년에는 생존 작가로는 처음으로 미국 국립도서관이 발행하는 미국 문학 작가총서에 이름을 올림으로써 마크 트웨인, 헨리 제임스, 이디스 워튼, 윌라 캐서, 에드가 앨런 포, 윌리엄 포크너 등의 기라성 같은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옮긴이 왕은철

전북대학교 영문과 교수이며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문학평론가다. 이어하트 재단, 케이프타운 대학, 풀브라이트 재단 등의 펠로였으며 케이프타운 대학과 워싱턴 대학의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호세이니의 [천 개의 찬란한 태양](청소년권장도서), 고디머의 [거짓의 날들](청소년권장도서), 브링크의 [메마른 계절], 응구기의 [한 톨의 밀알], 하진의 [전쟁 쓰레기] [광인] [니하오 미스터 빈] [피아오 아저씨의 생일파티] [카우보이 치킨] [남편 고르기], 쿳시의 [야만인을 기다리며] [마이클 K] [철의 시대] [추락] [어둠의 땅] [엘리자베스 코스텔로] [페테르부르크의 대가]를 비롯한 다수의 번역서와 [J. M. 쿳시의 대화적 소설](문화관광부 우수도서) 등의 저서가 있다.

 

 

 

 

          기간: 12월 3일~12월 8일

          모집인원 : 15명

          당첨자 발표 : 12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