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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톡톡

김제동의 ‘골든벨’은 계속 울린다

by 칠면초 2009. 10. 23.

 

 

한국방송 <스타 골든벨>의 메인 MC가 교체됐다. 2005년부터 진행을 맡았던 김제동(35)씨가 물러났다. 녹화 3일 전인 지난 10월9일, ‘하차’를 통보받았다. 방송 하차는 적어도 3주 전에 알려주는 게 이 바닥의 관행이다. 이보다 보름 전인 지난 9월24일, 예능제작국장을 비롯한 한국방송 주요 간부가 교체됐다. 다가오는 11월, 이병순 한국방송 대표이사의 임기가 끝난다. 이 대표이사는 연임을 노리고 있다.

 

연임을 노리는 사장이 전격 단행한 국장 인사와 김씨의 하차 사이에는 아무 연관이 없다는 게 한국방송의 공식 입장이다. 강선규 한국방송 홍보팀장은 “가을 개편을 맞아, 4년 넘게 프로그램을 진행해 식상하다는 평가를 받는 김씨를 새 진행자로 교체한 것일 뿐 다른 의미는 없다”고 말했다.

 

‘김씨 하차’ 한국방송 해명 설득력 잃어

 

김씨의 뒤를 잇는 새 진행자는 지석진씨다. 방송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김씨는 편당 500만원 정도의 출연료를 받는다. 지씨는 김씨보다 100여만원 적게 받는다. 지씨는 김씨와 함께 4년6개월 동안 <스타 골든벨>을 진행하다 지난 4월 교체됐다. 출연료가 문제였다면 자사 아나운서로 교체했을 것이다. 식상한 진행이 문제였다면 새 얼굴을 찾았을 것이다. 지씨를 다시 불러들인 ‘회전문 인사’ 덕분에 김씨의 하차는 더욱 설득력을 잃게 됐다.

 

김씨와 지씨의 차이는 출연료와 식상함에 있지 않다. 김씨는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 추모공연에서 사회를 맡았다. 지난 8월에는 자신의 트위터에 “쌍용을 잊지 맙시다. 우리 모두가 약자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맙시다”라는 글을 올렸다. 지씨는 그런 일에 나선 적이 없다. “아무 관련이 없다”고 한국방송이 아무리 버텨도 사람들은 사건의 본질을 눈치채고 있다. 포털 사이트 다음의 토론방 ‘아고라’에는 김씨의 하차에 반대하고 그를 응원하는 10여 개의 ‘청원방’이 운영되고 있다. 10월16일 현재 2만2천여 명이 여기에 서명했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한 다른 사람들과 김씨의 결정적 차이는 따로 있다. 김씨는 주눅들지 않고 오히려 진화하고 있다. 그는 오는 12월, 노래가 아닌 대화가 중심이 되는 전혀 새로운 형식의 공연을 시작한다. 이른바 ‘토크 콘서트’다. 30회 정도의 정기·장기 공연이 될 전망이다. 전국 순회 공연을 펼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김씨가 속한 다음기획의 김영준 대표는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김씨가 직접 관객을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풀고, 동료 가수 몇몇이 ‘게스트’로 번갈아 등장해 노래하는 형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 전파를 빌리지 않고 거리에서 관객을 만난다는 점, 연극·노래가 아닌 1인 토크쇼를 공연 무대에 올린다는 점 등에서 파격적이다. 무대에서 관객을 직접 만나는 장기 순회 공연은 1990년대 김광석 등이 택했던 방식이다.

 

‘토크 콘서트’는 김씨의 활동에 중대한 변곡점이 시작됐음을 웅변한다. 공중파 방송에만 얽매이지 않겠다는 김씨의 뜻이 담겨 있다. 김영준 대표는 “2006년 12월 한국방송 연예대상을 받은 뒤 ‘이만큼 왔으니 이제는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싶다’면서 김씨가 토크 콘서트의 꿈을 처음으로 말했다”고 전했다. 그 꿈을 이루기까지 다시 3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김 대표는 “<스타 골든벨> 하차 결정이 내려진 직후 김씨가 이 콘서트 이야기를 다시 꺼냈고, 회사도 적극 돕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김씨가 이번 기회에 ‘우스개’를 넘어 ‘이야기’로 진화하려 한다는 증거는 또 있다. 지난 10월16일 방영된 문화방송의 파일럿 프로그램 <오 마이 텐트>의 진행자로 나섰다. ‘다큐 토크’ 또는 ‘토크멘터리’를 표방한 이 프로그램은 자연을 찾아 1박2일간 캠핑을 하면서 삶과 환경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눈다. 예능 PD가 아니라 시사교양 PD가 만들었다.

 

문화방송 <오 마이 텐트> 진행자로

연출을 맡은 조준묵 PD는 < MBC 스페셜 > <북극의 눈물> 등을 만든 정통 시사 PD다. 조 PD는 “재미를 추구하는 예능 프로와 달리 좀더 깊고 진솔한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한다”고 말했다. 보수 언론들은 “한국방송이 버린 김씨를 문화방송이 구했다”고 평했지만, 조 PD는 “최근 일과 전혀 상관없이 지난 9월에 김씨의 프로그램 참여가 결정됐고, 녹화도 9월 말에 모두 마쳤다”고 설명했다. 11월께 정규 프로그램에 편성된다면 ‘지루한’ 진지함과 ‘억지스런’의 웃음을 모두 넘어서는 새로운 토크 프로그램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진솔한 이야기꾼을 본업으로 삼으려는 김씨의 바람은 최근 어느 강연회의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김씨는 지난 10월8일 마들연구소(이사장 노회찬) 주최 ‘명사 초청 특강’에서 말했다. “나는 독재도 모르고 반독재도 모른다. 오직 상식, 그것만 안다. 깨어 있는 시민들이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칠 수 있는 것이 마이크다. 사람을 웃긴다는 것은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증거다. 이것이 유머다. 여기에는 어떤 정치적 의미도 없다. 먹고살 게 없는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는 건 절규지 폭동이 아니다. 국민은 계몽과 협박의 대상이 아닌 소통의 대상이다.” 그의 말은 이 글보다 훌륭하다. 훌륭한 그는 한국방송이 아니어도 ‘말’을 계속할 작정이다. (안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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