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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톡톡

그리운 바다 성산포

by 칠면초 2009. 11. 2.

 

그리운 바다 성산포/ 이생진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사람 빈 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사람 빈 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 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 질 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순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슬픔을 듣는다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죽는 일을 못 보겠다

온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더 태어나는 일을 못 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만을 보고 있는 고립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 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탄 버스에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술을 좋아했던 사람

죽어서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한 짝 놓아 주었다

삼백육십오 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육십 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