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야기톡톡

잊혀져가는 우리 음식 '백혜'

by 칠면초 2009. 10. 28.

우리네 정서가 가미된 음식에는 맛 이상의 그 무엇이 있다

 

 

 

 

 

 

 

 

 

◁ 토장국영양솥밥 외관. 기본도 안된 업소가 많다보니, 요즘에는 밥과 김치만 제대로 나와도 수준있어 보인다

 

 

여기 밥과 김치가 있다. 그대는 난생 처음으로 밥과 김치를 대하는 순간이다. 과연 어떤 맛일까? 호기심이 고양이를 능가한다.

 

그렇다고 바로 수저 들고 달려들지 않는다. 왜냐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먹는 음식이니까. 일단 눈으로 감상부터 해보자.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의 자태는 여신이 걸친 실루엣보다 부드럽다. 자르르 흐르는 윤기에 밥알 하나하나가 살아 숨쉬는 것만 같다. 김치의 양념에 무엇 무엇이 들어갔는지도 살펴볼 것이다. 어쩌면 후각을 파고드는 구수한 밥냄새에 식욕이 동할 수도 있다.

 

자 먹어보자. 뜨거운 밥 한숟가락을 떠 입속에 넣고 천천히 씹는다. 음미하지 않으면 미세한 밥맛을 감지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처음엔 무미에 가깝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감미가 느껴진다. 입속의 칸소네다. 선명한 밥냄새에서는 자연이 느껴지기도 한다. 입속의 재즈다.

 

이번엔 김치를 먹을 차례. 밥과 달리 빨간 게 무척 먹음직하다. 혀가 화들짝 놀라는 매운맛 속에서 느껴지는 양념 맛은 대지의 기운이자 바다의 향기이다. 하지만 곧 배추의 아삭거림은 긴장하던 영혼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활기가 넘친다. 이윽고 밥의 감미와 김치의 감칠맛이 하나가 되어 완벽한 앙상블을 연출한다. 입속에서는 베토벤도 울고 갈 교향곡이 흐른다.

 

자 이제 그만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하자. 그대가 매일 대하는 식당의 밥과 김치는 어떤가? 밥은 언제 퍼 담았는지 모를 정도로 공기안에 갇혀 빛깔과 맛을 잃었다. 세상에 둘도 없이 구수한 밥냄새는 온데간데 없고, 쉼냄새에 후각이 손사레를 친다. 뚜껑이 닿는 부분에는 증기로 인해 하얗게 변색까지 되었다.

 

김치는 더욱 가관이다. 성의 없이 담아낸 폼새는 젓가락질을 포기하게 만든다. 김치냄새는 얼마나 많은 산전수전... 아니 테이블을 떠돌았는지 온갖 잡냄새가 진동한다. 그래도 이 집은 나은 편이다. 신토불이김치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아예 중국산을 가져다 쓰는 집들이 태반이다. 김치의 맛은 일본에 빼앗기고 김치의 생산량은 중국으로 넘어간지 오래다. 김치 종주국이란 타이틀도 점점 희미해져 이젠 전설따라 삼천리다.

 

이게 식당에서 나오는 밥과 김치의 현실이다. 그러니 그대는 밥과 김치에 대한 기대를 버린지 오래다. 밥은 미식의 개념이라기 보다 배를 채우기 위해 목구멍으로 밀어넣는 물질에 불과하고, 맵거나 짠 음식을 먹기 위한 조연에 가깝다.

 

김치는 눈으로 한번 보고 맛없겠다 싶으면 아예 손도 안댄다. 입에 맞는 다른 반찬이 있는데 김치 안 먹는다고 아깝다는 생각은 안든다.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김치니까 말이다. 그래서일까? 국이나 요리가 맛 없으면 타박을 하면서 밥과 김치는 형편없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업주는 밥과 김치를 향상시키려는 노력을 아낀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식욕과 상관없는 일부 식당의 밥과 김치

 

 

△토장국영양솥밥 상차림. 밥과 김치가 출중하고 잃어버린 맛까지 내놓고 있다

 

김치와 밥은 한식의 기본 중에 기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에 충실한 집 찾기가 쉽지 않는 게 우리 한식당의 현주소이다. 때문에 밥과 김치만 제대로 나와도 그 집의 가치는 무한상승이나 마찬가지다. 바로 이집이다. 경희대 정문 앞 GS25시 골목으로 20미터 들어오다 보면 마주치는 <토장국영양솥밥>.

 

사실 이집의 외관은 그리 호감가지는 않는다. 간판에는 전라도향토음식이라는 소개문구와 함께 옥호인지 메뉴인지 헷갈리는 토장국과영양솥밥이 적혀져 있다. 또 그 밑에는 지장수김치보쌈이, 그 옆에는 체인점 문의라고 적혀져 있어 뭐가 뭔지 한눈에 쏙 들어오진 않는다. 또  세로로 있는 돌출간판에는 ‘토장국쌈솥밥’ 이라고 적혀져 있어 더욱 혼란을 가중시킨다.

 

맛객이 그리 선호하지 않는 스타일이라 만약 지인이 나를 이집으로 인도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렇게 블로그에 소개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외관은 점수를 까먹었지만 이집의 저력은 당연히 밥과 김치에 있다. 그리고 이집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비밀병기가 있으니.... 네? 그게 뭐냐구요? “아따 거 성미한번 겁나게 급하구만. 쫌만 기달려 보랑께. 나가 시방부터 다 소개 할텡께.”  자 침 한번 꼴깍 삼키고 2부에서 본격적인 맛 탐방을 시작해 보자.

 

 

《2부》

한국 사람들 성미 되게 급하다. 잘 기다리지 못한다. 곧바로 2부 시작하겠다. 그대가 만약 토장국영양솥밥(옥호가 헷갈려~)에서 식사를 하고자 한다면  토장국영양솥밥을 주문하시라. 영양솥밥, 토장국, 김치주물럭, 꽃게무침, 지장수김치, 쌈거리외에 그때그때 몇가지 반찬이 제공된다. 이렇게 8천원이다.

 

그대가 만약 주안상을 받고자 한다면 지장수김치보쌈을 주문하시라. 지장수김치에 싸 먹는 맛이 각별하리라. 술안주라고 해도 고기쌈은 밥을 조금 얹어야 맛이 산다. 그렇다고 따로 밥을 주문할 필요는 없다. 수육을 주문하면 대나무바구니에다 담은 잡곡밥이 제공되기 때문이다. 대중소 차례대로 29,000원. 23,000원. 19.000원. 그 외 메뉴는 보쌈정식(6,500)원뿐이다.

 

밥과 김치에 반하는 그 집

 

맛객이 주문한 토장국영양솥밥. 식탁에 차려진 음식들이 저마다 장점이 있으니 무엇부터 소개를 해야 하나.... 김치는 그 집의 손맛을 대변한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밥은 그 집의 정성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정성이 가득한 영양솥밥

 

이집의 밥에서는 어머니의 마음과도 같은 정성이 묻어난다. 즉석에서 지은 솥밥에는 단순히 맛만 있는 게 아니다. 현미에 흑미, 은행, 무, 당근, 완두콩을 넣어 영양적으로도 부족함이 없도록 세심하게 배려를 했다. 그래, 영양밥이라 이름 붙였는지도 모르겠다. 자! 밥 하나에도 정성을 다했으니 이제 다른 찬들은 더 이상 확인해 볼 필요도 없다. 어머니가 차린 밥상이려니 생각하고 맛있게 먹으면 된다.

 

 

 

△음식을 주문하면 영양솥밥 외에 조밥이 무료로 제공된다.

대나무바구니에 담겨있어 쌈밥 분위기에 어울릴뿐만 아니라 시골의 정취까지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정성만 있다고 해서 다 용서가 되는 시대는 지났다. 정성과 함께 맛을 겸비해야 미덕인 세상이다. 이집 맛의 화룡점정은 김치이다. 젓갈과 고춧가루 마늘, 생강 깨 파 외에 별다른 채소가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김치의 참맛을 품고 있다.

 

깔끔한 맛에 아삭거리는 식감은 어느 한 지방의 음식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선호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맛이다. 그렇다고 니맛도 내맛도 아니라는 얘기가 아니라 한치의 치우침도 없는 절제미가 있다는 뜻이다. 딱 김치만큼의 맛!

 

 

 

△<2006김치엑스포>에서 김치명품부문 장려상에 빛나는 지장수김치

 

이 김치맛의 비결은 바로 지장수에 있다. 지장수는 황토를 1미터 이상 파면 푸른띠가 나오는데 그 밑의 황토를 물에 걸러 자연정화시킨 물이다. 이 물은 탁월한 정화능력이 있기에 채소에 남아있는 잔류농약을 말끔히 제거해주는 역할을 한다. 김치맛이 깔끔한 이유다. 또 물이 살아있기에 김치를 담그면 유난히 아삭거린다.

 

지장수김치를 개발한 박동섭대표는 <2006김치엑스포>에 출품해서 김치명품부문에서 장려상을 받기도 했다. 김치의 맛과 기능성을 객관적으로 공인받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박동섭대표는 학창시절부터 유난히 손재주가 좋아 무엇이든 만들면 걸작이 되곤 했는데, 그 당시부터 “총각이 어쩌면 그렇게 김치를 맛깔나게 담그냐?”는 소문이 자자했다고 한다.

 

맛객, 그 김치맛이 비상하여 택배판매를 제안했더니 고개를 흔든다. 정기적으로 하루 판매량이 보장되면 모를까? 불확실한 상태에서 서둘러 판매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특별주문은 가능한가보다. 그대가 만약 그 김치맛이 궁금한데, 거리상 직접 찾아가기가 어렵다면 특별주문을 해 보시라. 배추포기김치 10kg에 5만원이다. 앗! 맛집소개에 웬 김치주문 홍보를.... ^^ 김치맛에 탄복해 자발적 홍보이니 광고라고 때 쓰기는 없기다.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아, 김치였지. 김치소개는 여기까지 하고 토장국으로 넘어간다. 비밀병기는 언제 소개할거냐고? 이 글도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었다. 곧 나오니 조금만 더 인내하시라.

 

 

 

△ 고수는 실력을 쉽게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이 토장국이 말해주고 있다

 

맛객이 이집의 밥과 김치에 중점을 두었지만, 사실 이집의 진짜 맛은 토장국이다. 간판에 옥호로 올릴 정도로 토장국에 자부심이 가득한것만 봐도 그렇다.

 

그렇다고 다른 식당에서 그냥저냥 특색없이 내놓는 뻔할뻔자 된장찌개처럼, 온갖 부재료들이 맛의 각개전투를 벌이지는 않는다. 아니, 그럴 재료조차 없다. 토장국 뚝배기를 들여다보면 허무하기까지 하다.

 

 

 

 

 

 

 

 

 

 

 

 

 

 

 

 

 

 

▷ 토장국이 스며든 무가 별미다

 

달랑 무 2조각에 꾸미로 올린 파가 고작이다. 하지만 이 단순한 토장국속에 깃든 맛은 심오하기 짝이 않다.

 

화려함으로 미각을 현혹하기보다, 누군가가 그 진가를 알아주길 바라며 국물밖으로 맛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때문에 절제의 맛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맛이 밴 무맛도 기가 막히다. 그밖에 돼지주물럭찌개는 절묘하게 단맛의 경계를 넘지 않는다.

 

손맛의 승리이다.

 

 

 

잊혀져가는 우리 음식, 백혜

 

오래 기다렸다. 이제 이집의 비밀병기를 소개할 차례다. 이 집의 간판에 ‘전라도향토음식’ 이란 문구가 들어가 있다고 앞서 언급했다. 이 비밀병기로 인해 역시 그렇군! 하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빨리 소개하라구!! 뜸 너무 들인다아~) 그대 혹, ‘백혜’라고 들어나 봤는가? (빨리 소개 안해?) 당연히 모르겠지. 좋다! 쉽게 나가자. 두부나물은 알겠지? 설마 모르는 거 아냐?

 

 

 

△백혜. 흰 새우젓국을 물에 타서 네모지게 썬 두부를 넣고 끓여서 만든다

 

백혜, 즉 두부나물은 전라도지역에서 주로 명절음식으로 해 먹는 향토음식이다. 만드는 방법은 국물보다 두부를 더 많이 넣고 끓이는데 이때 새우젓으로 간을 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조갯살을 함께 넣고 소금간을 하기도 한다. 뜨거울 때보다 차게 식었을 때가  더 맛있다.

 

이와 비슷한 음식으로 궁중요리인 '두부젓국조치'가 있다. 또 『산림경제』에도 유사한 음식이 소개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두부를 작게 썰어 한 꼬치에 서너 개 꽂아 흰 새우젓국과 물을 타서 끓인다. 베를 그 위에 덮어 소금물이 새어 나오게 한다.

 

백혜와 차이점이라면 두부를 꼬치에 끼운데 있다.

 

 

 

혹, 그대가 이집에 갔을 때, 식탁에 하얀 두부가 보인다면 양념장이 없다고 부르지는 마시라. 바로 그게 백혜라는 음식이다. 간이 되어 있으니 그 자체로 즐기면 된다. 두부에 새우젓 간밖에 들지 않았으니, 달콤하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아 사실 별 맛은 없다. 하지만 지난 날 고향에서 그 음식을 접했던 그대라면, 문득 고향생각에 소주잔을 비울지도 모르겠다. 우리네 정서가 가미된 음식에는 맛 이상의 그 무엇이 있으니까. 근데 그게 뭐지...

 

 

 

 

 

끓기 전 돼지주물럭찌개 

 

 

끓고있는 돼지주물럭찌개

 

 

 

 

 

옥호: 토장국영양솥밥

전화: 02- 960-2229

위치: 경희대 앞 GS25시 골목안으로 20미터 직진

메뉴: 토장국영양솥밥 8,000원. 지장수김치보쌈 29,000원, 23,000원, 19,000원

맛객‘s 평가: 대학가 식당은 그저 그렇고 그럴것이라는 나의 편견을  깬 집


'이야기톡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낙엽을 태우며  (0) 2009.11.15
그리운 바다 성산포  (0) 2009.11.02
김제동의 ‘골든벨’은 계속 울린다   (0) 2009.10.23
[스크랩] 이런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0) 2009.10.19
"이제 하나 남았네!"  (0) 2009.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