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은 지적이다. KBS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방송 녹화가 시작되기 전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던 소위 바람잡이 MC를 할 때 그는 방대한 지식에 특유의 위트를 섞어 분위기를 압도했다. SBS ‘야심만만’에서도 강호동과 박수홍 사이에서 감동적인 미사여구를 끊임없이 날렸다. 한낱 예능 프로그램에 불과한 ‘야심만만’이 공익적인 색채를 띠게 할 정도였다. 국민 MC 유재석과 강호동도 그의 변화무쌍한 화술 앞에서는 작아졌다.
김제동의 지적인 화술은 사람의 마음을 잔잔하게 움직이는 힘이 있다. 감성적인 접근에서 시작되다보니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진솔하고 감동적이라는 부산물을 얻는다. 예능 프로그램 MC는 대중의 ‘쾌(快)’를 목적으로 하기에 김제동의 언행이 추상적이어도 상관이 없다. 대중이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안타까움을 느낀다면 그것만으로 그의 가치는 빛난다.
하지만 정치는 예능 프로그램이 아니다. 온갖 집단이 명확한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연일 날선 공방을 펼친다. 추상적이고 두루뭉술하면 필연적으로 오해를 부를 수 있는 공간이다. 보수와 진보 갈등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작금의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김제동은 최근 잇따라 정치적 외압설에 둘러싸여 있다. KBS ‘스타 골든벨’에서 갑자기 하차했고, 정규 편성이 예정된 Mnet ‘김제동 쇼’에서도 하차했기 때문이다. 대중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 사회를 보고 1주기 추도식 사회를 본 것으로 인해 이명박 정권이 외압을 행사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김제동 측 또한 정치적 외압설을 아주 부인하지는 않았다.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다는 식이다.
문제는 김제동이 단 한 번도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드러낸 적이 없다는데 있다. 김제동은 친노 인사인가? 그는 대답한 적이 없다. 자신의 트위터에 노 전 대통령과 악수를 하며 찍은 사진을 올리고 양복이 흠뻑 젖을 정도로 비를 맞아가면서 추도식 사회를 봤지만 그는 자신이 ‘노빠’라고 말한 적이 없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인간적이고 감상적인 연민을 자주 표출했을 뿐이다.
김제동은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 식전 행사 사회를 진행했다. 2007년 조선일보의 ‘스쿨 업그레이드’ 사업에 1억을 기부하고 지난해 동아일보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현재 정치적 외압을 가한 주체로 대중이 지적하고 있는 Mnet의 모기업 CJ미디어의 로고송은 다름 아닌 김제동과 같은 소속사인 윤도현이 불렀다. 조중동 등 보수 종이신문을 극도로 혐오하는 안티조선을 기반으로 한 친노 진영 입장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김제동에게 묻고 싶다. 김제동은 민주노동당을 어찌 생각하는가? 종북주의 노선을 강하게 비판하며 민주노동당을 박차고 나온 진보신당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노회찬, 심상정, 강기갑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한 때 진보 진영에 몸담은 바 있는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과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과거 전력은 평가해줄 가치가 있나? 이란과 쌍용을 잊지 말자고 하는데 노 전 대통령이 추진한 한미FTA는 어떻게 생각하나?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공개된 삼성의 이면은 어떻게 바라보나?
지금 김제동은 졸지에 민주화 시대 이후 가장 많은 정치적 외압설에 휘말린 연예인이 됐다. 대중은 그가 정치적 탄압을 받는다고 걱정하고 있다. 정치적 외압설이 의심된다고 말해도 이 정도다.
그는 노제 사회를 본 것으로 인해 자신을 좌파라고 부른다면 얼마든지 좌파를 하겠다고 말했다. 대중은 그의 신념에 환호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건 연예인의 아주 기본적인 자세다. 연예인은 폴리테이너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이상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공개하지 않고 모든 연예 활동에 나설 수 밖에 없다. 이기적인 자세지만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직업을 위해서다. 미국과 유럽, 일본 할 것 없이 갈수록 폴리테이너는 줄어들고 자신의 신념을 감추는 연예인이 많아지는 이유다.
문제는 김제동이 단 한 번도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드러내지 않았는데도 대중이 그를 친노 인사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보수적인 가치를 지닌 일부 대중은 김제동의 재치 있는 입담을 듣고 마음껏 웃기 힘들다. 정치적으로 무색무취한 연예인을 원하는 대중도 마찬가지다. 방송사의 고민도 깊어간다. 김제동을 캐스팅하면 친노 인사를 캐스팅하는 셈이 된다. 시청률이 나락으로 떨어져도 쉽게 프로그램을 개편할 수조차 없다. 정치적 외압설이 고개를 들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6.2 지방선거를 불과 하루 앞두고 정치적 외압설을 제기하는 방식은 김제동 답지 못했다. 지방선거에 영향을 주려고 Mnet에 대해 정치적 외압설을 제기했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루를 더 참았다면 그의 사려 깊은 노파심과 고민에 공감하는 대중이 더 큰 박수를 쳤을 것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조현우 기자 can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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