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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삼매경

말이 세상을 아프게 한다

by 칠면초 2011. 12. 16.

 

관포지교, 와신상담, 삼고초려란 고사성어가 있다.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할 수 있는 단어들이다. 관포지교는 관중과 포숙의 사귐을 뜻하는 말로, 형제보다 깊은 우정을 의미하는 말로 곧잘 쓰인다. 반면 와신상담은 원수를 갚기 위해 괴로움을 참고 이긴다는 뜻으로, 적대적인 인관관계에 어울리는 말이다. 삼고초려는 사람을 진심으로 예를 갖춰 맞이한다는 의미로, 자기 사람으로 만들 때에 어떤 자세로 상대방을 대해야 하는지를 잘 말해준다.

 

단순한 만남이 아닌 내편이 되는 만남이 되기 위해선 삼고초려의 마음가짐이 필요하고, 한번 맺은 인연이 와신상담의 적대적 관계가 아닌 관포지교가 되려면 배려하는 마음이 있지 않고선 불가능하다. 이런 관계를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말 속에는 수많은 편견과 차별, 불평등이 존재한다. 말의 이면에 숨겨진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억압, 차별을 예리하게 분석한 ‘말이 세상을 아프게 한다’를 읽으며 나는 다시 가슴이 짜안해졌다.

 

언젠가 기사를 쓰며 장애인과 장애우에 대한 노란이 있었다. 난 저자와 같은 생각으로 장애우는 과잉친절이며 형식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기자는 일간지의 장애우라고 기사를 쓴 신문을 가지고 와 보여주며 설전을 벌였다.

 

그렇다. 이 책은 말이 바뀌어야 사회에 뿌리 깊이 박힌 차별이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한다. 또한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평등한 언어 사용 습관을 갖도록 도와준다. 말하자면 말 뒤에 감춰진 편견과 차별의 실상을 파헤쳤다.

 

장애우는 말을 곱씹어 보면 절름발이 발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장애우라는 표현은 비장애인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장애인을 친구처럼 친근하게 대하자는 뜻에서 사용하는 것이죠. 장애인이 스스로를 가리킬 때 그 말을 사용하면 부자연스럽습니다.(중략) 그러니 그 말은 절름발이일 수박에 없습니다. 장애인의 아들이 자기 아버지를 가리켜 “저희 아버지는 장애우입니다”라고 말한다면 건방져 보이지 않을까요? 저흐; 아버지는 장애를 가진 친구입니다? (16~17P)

 

여성이나 장애인, 동성애자, 성폭력 피해자 등과 같이 사회적 약자를 둘러싼 말과 그들이 처한 현실을 살펴보고, 호칭의 문제, 스포츠와 민족의 문제, 서울 중심주의를 통해 한국 사회의 모순과 허위를 드러내는 말을 차근히 설명한다.

 

결혼이 선택이라는 점에서,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아직 결혼하지 않음’으로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상태는 더하고 빼고 할 것 없이 있는 그대로 ‘결혼하지 않음’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굳이 한자말로 바꾸자면 미혼이 아니라 비혼(非婚)이 적당하겠죠. ‘미(未)’에는 ‘아직 ~ 아니다’의 의미가 있지만 ‘비(非)’에는 그런 의미가 전혀 없습니다. ‘비(非)’는 그저 ‘아니다’만을 뜻합니다. (154P)

 

우리말에서 상하(上下)는 기본적으로 위아래를 가리키지만, 거기에는 다른 뜻도 여럿 있습니다. 상하는 좋고 나쁨, 귀하고 천함, 윗사람과 아랫사람 등을 뜻하기도 합니다. 가령 상하는 ‘상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펼쳤다.’와 같이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의미로 쓰입니다. 여기서 상(上)에 해당하는 말들은 대체로 긍정적이고 하(下)에 해당하는 말들은 대체로 부정적입니다. 상경과 하향도 사정은 비슷합니다.(233P)

 

일상생활에서 종종 생각하는 문제들을 책으로 읽으며 몇 번이나 고개를 끄떡였다. 자라는 청소년들이 사회적 약자의 그늘과 한국 사회의 뿌리를 이해하고, 차별과 편견을 허무는 평등한 언어 사용 습관을 갖도록 도와주는 이 책이 참으로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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