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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삼매경

착한 아이 사탕이

by 칠면초 2011. 12. 26.

 

"우리 아가는 착해서 정말 좋아." "착하니까 정말 예뻐." “착한 일을 하면 산타클로스가 선물도 많이 준대” 등등. 어른들은 착한 아이를 좋아한다. 엄마도 아빠도 할아버지 할머니도 착한 걸 좋아한다. 선생님도 심지어 동네 아줌마도 착한 아이만 좋아한다. 그래서 사탕이는 당연히 '착한 아이'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땅에 넘어져 아파도 울지 않았다. 동생이 공책을 쭈~욱 찢어도 화내지 않았다. 정말 갖고 싶은 장난감이 있어도 사달라고 조르지 않고 참았다. 왜?… "사탕이는 착한 아이니까!"

 

이렇듯 ‘착하아이’란 무엇일까? ‘동생과 싸우지 않고, 양보해야 하고, 심부름도 잘하고, 울지 않아야 하는 아이들’을 말한다. 언제나 문제도 일으키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 앞에서 떼를 쓰지 않고, 함께 있지만 있는 것 같지 않는 잃어버린 아이와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천성으로 착한 것은 나쁜 것일까?

 

우리가 자녀들을 키울 때에도 “너는 참 착한아이구나"라고 단정하여 말하는 것보다는 ”네가 이런 일로 나를 도와주어서 나는 참 행복하고 기뻤다. 감사하다“라고 말한다면 아이들에게 건강한 정체성을 심어줄 수가 있을 것이다.

 

'착한 아이 사탕이'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빠져 속내를 꽁꽁 감추고 사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착한 것은 좋다'고 누가 정했을까. 그건 바로 어른들이다. 착한 아이는 다루기 쉽고 어른들이 편하기 때문이다.

 

책은 어린이의 정체성을 찾아줄 수 있다는 의미에서 짧지만 큰 여운을 남긴다. 어른들에게만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해로운 것이 아니다. 어린이들에게도 오로지 착함만 강조한다면 아이들 정서에 큰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를 전하다.

 

착해서 나쁠 거야 없지만 모든 상황에서 착할 필요는 없다. 아프면 아프다고 화나면 화난다고 무서우면 무섭다고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어야 정신이 건강해진다.

 

책 속의 사탕이는 동생과도 싸우지 않고 아파도 울지 않으며,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쓰지도 않는 ‘착한 아이’다. 어른이 만든 아이다. 그렇지만 사탕이의 그림자는 “네가 마음이랑 다르게 행동하느라 너무 힘들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어른들의 기준에 맞춘 착한 아이보다 아이답게 속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낫다고 한다.

 

얼마 전 이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한 연구자가 네 살짜리 아이들을 빈 방에 따로 두고 과자를 나눠 주며 내가 돌아올 때까지 이 과자를 먹지 않으면 과자를 두 개 더 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당장 과자를 먹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조금 참다가 먹는 아이가 있고, 기도를 하거나 노래를 부르면서 참는 아이들도 있었다.

 

10년 후에 연구자는 이들이 아주 다른 모습으로 성장한 것을 발견했다. 잘 참는 아이들은 학교에 잘 적응하고 인기도 있고 자신감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쉽게 좌절하고 고집이 세고 외톨이로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들이 어린 시절부터 착한아이 콤플렉스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1등만이 살아남는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이제 EQ는 차선이 아니라 최선이라는 말이 될 만큼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