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삼매경

[서평]김용택의 어머니

by 칠면초 2012. 7. 17.

 

 

시인 김용택은 어느덧 팔순이 넘은 노모의 인생을 처음부터 고스란히 복원해보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으로 에세이 ‘김용택의 어머니’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어머니에대한 사건사고 기록이다.

 

책장을 넘기면서부터 자꾸만 눈물이 고여 몇 장 읽지 못하고 덮곤 하기를 여러날. 꽃다운 처녀가 시집와서 한 집안의 새댁이 돼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자녀를 낳아 수확하고 마른나무처럼 늙어가는 일생의 여정은 마치 자연의 사계와도 닮았다.

 

‘제1부 봄―봄처녀, 섬진강에 시집오셨네’, ‘제2부 여름-그 뜨겁고도 환한 시절’, ‘제3부 가을-어머니의 열매’ 와 ‘제4부 겨울―마른나무처럼, 어머니 늙어가시네’에 이르기까지 계절의 흐름을 따라 어머니의 일상과 인생을 담았다.

 

“어느 날 어머니가 들에 가셔서 해 저물 때까지 오지 않았다. 달빛 아래 어디선가 호미 소리가 들렸다. 밭 끝 저쪽에 어머니가 부지런히 밭을 매고 있었다. 몸짓이 격렬해 보였다. 어머니는 그렇게 화를 땅에다가 풀었을 것이다. 땅한테 사정하고 땅을 파 뒤집으며 생각을 뒤집어엎었을 것이다. 아! 어머니. 어머니의 친구는 누구였을까.“ (139P)

 

어머니의 모습이 농가의 한해살이와 함께 그림처럼 펼쳐진다. 어머니는 농사일하고, 쇠죽을 쑤어 소를 먹이고, 감을 깎고, 장을 담그고, 솥단지에 대식구의 밥을 안치고 자식들을 키우느라 여념이 없다. 그리고 마침내 마른나무처럼 늙어간다.

 

책은 사진작가 황헌만(64)씨가 섬진강 마을의 사계 속에서 걷고 일하고 이웃들과 노니는 김씨의 어머니를 계절별로 밀착 촬영한 사진들도 함께 실렸다.

 

김용택은 지금까지 어머니에 관해 시로, 인터뷰로, 산문 속 일화로 간간이 풀어놓긴 했지만, 책 한 권에 온전히 어머니 이야기를 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어느덧 팔순이 넘은 노모의 인생을 처음부터 고스란히 복원해보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으로 이 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학교 기성회비를 내지 않아 집으로 돌려보내진 고등학생 김용택. 어머니는 머리에 쓴 수건을 벗어 옷의 먼지를 툴툴 털면서 “가자”하며 앞장 서 걷는다.

어머니는 망태에 닭을 잡아넣은 뒤 장에 내다 판다. 한데 어떡하나. 닭 판돈은 기성회비와 아들의 차비에 빠듯이 들어맞고,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갈 차비가 없다. “나는 걸어갈란다.” 어머니는 빈 망태를 멘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차 간다. 어서 가거라”라고 손을 흔들었다.

 

“나는 돈을 꼭 쥔 주먹을 흔들었다. 어머니가 나를 바라보았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먼지 낀 유리창이 더 흐려 보였다. 앞 의자 뒤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들먹이며 나는 울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보리만 베던 아버지 모습이 눈물 속에 어른거렸다. 눈물을 훔치고 고개를 들어 차 뒤꽁무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뽀얀 먼지 속에서 자갈을 잘못 디뎠는지 몸이 비틀거렸다. 아! 어머니. 나는 돈을 꼭 쥐었다. 점심을 굶은 어머니는 뙤약볕이 내리쬐는 시오리 신작로를 또 걸어야 한다.”(54쪽)

 

여름

 

섬진강 다슬기는 인근에서도 유명하다. 어머니는 동네 여자들과 밤마다 징검다리에서 미역을 감으며 다슬기를 잡았다. 다슬기는 제 어미를 파먹으며 나온다고 한다. 다슬기를 까먹다가 끄트머리까지 다 먹으면 서캐만한 작은 새끼 다슬기들이 씹히곤 한다. 아버지가 간이 좋지 않아 일찍 돌아가셨지만 다슬기는 물론이거니와 산골짜기 논에 가서 돌미나리를 캐다가 아버지 밥상에 올렸다.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렇게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8년 동안 어머니는 다슬기 국을 끓이셨다.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어머님은 다슬기 국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주셨다. 다슬기를 잡은 소쿠리를 들고 어둑한 강 길을 종종걸음 치시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버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님과 자식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랑 사니라고 애 많이 썼구만. 사는 일이 금방이네. 사는 것이 바람 같은 것이여. 사는 일이 풀잎에 이는 바람이구만.”(91쪽)

 

가을

 

진메마을의 감은 거의 먹감이다. 재래종 중에서도 자생적인 토종감이다. 먹감은 열리기도 많이 열린다. 붉게 익어갈수록 감 한쪽에 먹빛이 들어가는데 그래서 먹감이라고 부른다. 어머니도 긴 장대 끝에 자루 모양의 ‘감방’을 달아매고 감을 땄다. 하지만 한 자리에 그토록 오래 앉아 감을 깎곤 하던 어머니에게 친구는 따로 없었을까. 어느덧 그 자신도 환갑을 훌쩍 넘은 시인은 여전히 그게 궁금하다. 지친 어머니의 등은 과연 누가 다독거려 주었을까.

 

“어머니의 친구는 누구였을까. 살면서 속이 썩고, 하늘을 찌르는 분노가 어머니에겐들 왜 없었을까. 땅을 치며, 통곡하고 싶은 일이 왜 없었을까.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어디다가 화풀이하고 무엇을 잡고 사정하며 어떻게 그 순간을 이겨냈을까. 어느 날 어머니가 들에 가셔서 해 저물 때까지 오지 않았다. 달빛 아래 어디선가 호미 소리가 들렸다. 밭 끝 저쪽에 어머니가 부지런히 밭을 매고 있었다. 몸짓이 격렬해 보였다. 어머니는 그렇게 화를 땅에다가 풀었을 것이다. 아! 어머니. 어머니의 친구는 누구였을까.”(139쪽)

 

겨울

 

옛날엔 겨울이 되면 유독 손과 발이 잘 텄다. 손등이 터서 쓰리면 소년 용택은 어머니에게 쪼르르 달려가곤 했다. 어머니는 젖을 꼭 짜서 발라주었다. 그 새하얀 젖을 손등에 발랐다. 그러면 잠깐은 쓰렸지만 손은 금방 보드라워졌다.

 

“요즘 아이들은 손이 트지 않을 뿐더러 설사 손이 트더라도 절대 어머니의 젖을 바르지 않을 것이고, 또 눈이 아프더라도 안약 대신 쓰지 않을 것이다. 분유로 아이들을 키워서 젖이 나오지도 않겠지만 말이다. 때가 시커멓게 낀 손등이 갈라져 빨갛게 드러난 그 속살에 하얀 젖이 한두 방울 떨어져 쓰리던 지난날의 기억은 이제 전설처럼 돼버렸다.”(214쪽)

 

'독서삼매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큐정전(아Q정전) 생각나다  (0) 2013.06.25
최인호 <상도>...힐링이 별건가  (0) 2013.04.14
[서평]노무현 평전  (0) 2012.07.13
행복한 상상...자기암시  (0) 2012.05.30
당신은 나에게 무엇입니까  (0) 2012.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