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한 당신이라고 썼다가 지우고
얼음같은 당신이라고 썼다가 지우고
불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무심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징그러운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아니야 부드러운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그윽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따뜻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내 영혼의 요람 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샘솟는 기쁨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아니야 아니야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당신이라 썼다가
이 세상 ‘지울 수 없는 얼굴’ 있음을 알았습니다.
고정희 <지울 수 없는 얼굴>
『노무현 평전』을 읽고나서 어떤 글로 내 감정을 표현해야 할 지 굉장히 생각이 많았다. 내가 좋아하던 대통령, 고향으로 돌아간 그 모습에 현역 아닌 퇴임 후 더 좋아했던 대통령.
고정희 시인의 말처럼 지울 수 없는 얼굴로 접어야 했던 대통령 노무현.
"노무현은 왜 하필이면 뱀장수 흉내를 내고 곱사춤을 추었을까. 어린 시절부터 가난과 핍박과 소외를 절감해온 노무현은 민중의 애환, 사회모순에 대한 비판정신을 담고 있는 곱사춤을 통해 가슴에 쌓인 울분을 풀고자 했을까. 그는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어서도 '곱사등이'와 동병상련의 비주류, 변방이었다."
노무현은 실패한 대통령이었을까? 노무현은 패배자일까?
독립기념관장을 지낸 김삼웅(69)씨는 이 두 가지 물음에 주안점을 두고 『노무현 평전』을 저술했다. 최종 결론은 역사가 내리겠지만 그 전에는 먼저 민심이 이를 말해준다는 데에 방점을 찍었다.
세상에는 선의나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치판은 특히 심한 편이다. 그래서 '사자의 위엄과 여우의 간지'가 필요하다는 마키아밸리즘이 정치인의 필요악으로 통용되는지 모른다.(345P)
'인간 노무현'은 정치적 소수파로서 사회의 뒤틀린 권력구조 안에서 정치보복성 '토끼몰이'에 갇혀 죽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패배자였다고 결론내린다. 볼프 슈나이더의 말대로 "승리자로 가득한 세상보다 나쁜 것은 없다. 그나마 삶을 참을 만하게 만드는 것은 위대한 패배자들"이라는 것이다.
노무현을 두고 "바른 길을 위해서라면 도무지 계산할 줄 모르던 그는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정도냐 사도냐의 문제'라는 백범의 명제를 실천한 흔치 않은 정치인"이라고 썼다.
실제 책을 읽는 동안 2009년 5월 23일 전으로 기억이 머물렀다. 실책임을 자인한 대연정 제안, 섣부른 한·미 FTA 추진, 이라크 파병, 비정규직·양극화·집값폭등에 대한 정책적 대안 미흡, 설화의 빌미 제공 등 과오도 지적했다. 그러나 실천적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고 원칙과 정의를 지켜내려는 혁신정책을 실행했다는 점을 높이 샀던 대통령.
이 책은 노 전 대통령의 출생과 가족을 비롯해 청년 시절부터 '노동자의 벗' '거리의 변호사' '아스팔트 위의 전사' 등으로 불리며 활동했던 이야기, 대선후보, 국가원수로서의 길 등 그의 생애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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