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 / 신경림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낙타의 생 / 류시화
사막에 길게 드리워진 내 그림자
등에 난 혹을 보고 나서야
내가 낙타라는걸 알았다
눈썹밑에 서걱이는 모래을 보고서야
사막을 건너고 있음을 알았다
옹이처럼 변한 무릎을 만져 보고서야
무릎기도 드릴 일 많았음을 알았다
많은날을 밤에도 눕지 못했음을 알았다
자꾸 넘어지는 다리를 보고서야
세상의벼랑중에 마음의 벼랑이
가장 아득하다는 것을 알았다
혹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보고서야
무거운 생을 등에지고 흔들리며 흔들리며
사막을 건너 왔음을 알았다
외출할 때 지갑 못지 않게 챙겨드는 물건이 있다면 휴대폰이다.
어쩌다 그걸 놓고 나오기라도 하면,
받지 않으면 안될 절대절명의 연락이 꼭 그때 걸려 올 것처럼 불안하다.
그래서 허둥지둥 일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확인해보곤 한다.
그때 부재중 전화가 단 한 통도 찍혀 있지 않으면 괜한 조바심에
민망하다못해 씁쓸한 느낌마저 든다.
이렇게 한 몸 인양 떼어놓기 어려운 휴대폰이 마치 낙타를 떠올리게 한다.
무거운 생을 등에지고 사막위에 놓여진
낙타....
그에게 길동무 하나 만들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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