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쓰여진 시
윤동주
창(窓)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詩)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學費) 封套(봉투)를 받아
대학(大學)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敎授)의 강의(講義)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창(窓)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時代)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은 최초(最初)의 악수
지극히 인간적이었던 시인...
너무 쉽게 쓰여졌다 자책할 정도로 타고난 시인이었던 그의 시는 절로 애국심을 불러 일으킨다.
일본 다다미 방에서 밤비 소리와 가득찬 그의 고뇌가 70여년 지난
이 순간에 우리에게 무얼 들려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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