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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톡톡

100분 토론 400회 특집 패널평가

by 칠면초 2008. 12. 20.

 

2008년 12월 18일

어제의 100분 토론 400회는 그 어느 버라이티 쇼 보다 재미있고 어느 다큐멘타리보다 유익했다.  토론에 대한 평가는 이미 잠을 잊은 수많은 블로거들이 대량으로 쏟아낸 것 같아 출연 패널들에 대한 짧은 평으로 전체적인 평가를 대신한다.

 



1. 나경원
상대방 발언에 대한 맥락 이해력이 떨어진다. 숲을 봐야 할 때 나무를 보고, 나무를 봐야 할 때 숲을 본다. 그의 토론중 발언들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가 가능하다. 첫째, '오해' 정권의 여당 대변인을 지낸 사람답게 '오해다'로 시작하는 정권 비호 발언. 둘째, 쟁점을 회피하기 위해 현실성 없는 법리를 끌어들여 원론적인 이야기로 주제를 교묘히 바꿔버리는 물타기 발언. 셋째, 상대방이 비유를 위해 예로 든 부분을 꼬투리 잡아 공격하는 동문서답형 발언.

2. 제성호
맹목적인 친미 친이명박주의자. 만인이 다 아는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들을 사실이 아니라며 사실에 근거한 주장을 펼치라고 헛소리를 지껄였다. 말끝마다 법과 원칙, 헌법 운운하는데 정작 헌법을 무시하고 법과 원칙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쪽은 현 정권과 뉴라이트 또라이들이라는 '사실'은 눈에 뵈지 않는 모양.

3. 전원책
내 기억에, 예전 군 가산점 관련 토론에 나와서 호통으로 일관하는 자세로 골빈 예비역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사람이다. 수구냉전세력의 전형을 보여준다. 현 정권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데, 진보 진영과는 정반대의 이유에서다. 발언을 듣다 보면 의외로 제법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런 괜찮은 통찰을 매번 현실감각 잃은 엉뚱한 생각에 이어붙인다.

4. 이승환
그냥 뉴라이트 또라이. 제성호와 비슷한 맥락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할 줄 모른다. 진짜 '사실'에는 관심이 없고 본인이 '사실'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주장들을 '사실'로 밀어붙일 뿐이다. 그의 '사실'은 자신이 비호하는 집단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실에 불과하다.

5. 전병헌
제법 제 목소리를 내긴 했으나 토론 전반에서 나경원 만큼의 존재감은 없었다.

6. 유시민
본인 스스로 자중해야 할 시기라고 하며 직접적인 공격을 매우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개인적으로 진중권처럼 상대방에 대한 독설도 서슴치 않는 공격적 스타일을 선호하나, 토론에 임하는 (교과서적으로 올바른) 자세와 합리적 판단력을 놓고 보면 9명의 패널들 가운데 단연 돋보였다. 생각보다 그릇이 큰 사람으로 보인다. 덧붙여, 그도 꽤 나이 들었다. 중후함이 느껴질 만큼.

7. 진중권
현상에 관한 논리에서는 따를 자가 없다. 총론과 각론을 오가며 문제를 정확하게 집어내고 옳고 그름을 명쾌하게 가른다. 상대방 발언의 오류도 정밀타격하듯 찍어낸다. 그의 독설은, 사랑스럽다. '나는 머리고 너희는 수족인데 내 머리엔 삽자루 하나만 들어있다'는 표현에선 오밤중임에도 불구하고 낄낄대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진보신당 웹사이트 등 온라인 매체를 통해 본인이 써왔던 글의 내용들을 일부 반복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발언이 많아 참신성은 다소 떨어졌다.

8. 신해철
정확히 옳은 말들을 하는데 상대방의 발언에서 핵심적 오류를 끄집어내어 반박하는 힘은 조금 부족해 보였다. 스스로 말을 어느 정도 아끼는 듯도 보였으나, 패널이 많아 발언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은 탓도 있겠다. 고 최진실 사망 사건 관련 발언에서는 쟁점이 될만한 부분을 비껴가며 뜬구름을 잡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말을 조리있게 잘 하는데, 다만 말을 너무 꾸며내려고 노력하는 탓에 작위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말투와 목소리 탓인지 신해철은 무슨 말을 해도 이빨 까는 것처럼 들린다.) 가끔 던지는,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듯한 농담이나 김제동에 대한 반말투의 태도는, 토론 프로그램의 고답적인 분위기에 대한 자기 나름의 저항으로서 일부러 계획한 컨셉이었다고 생각되는데, 예능 프로그램과 토론 프로그램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9. 김제동
연예인이고 평소의 '바른' 이미지 탓에 정치적 견해를 대놓고 드러내기 어려웠을 거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런데 그는 토론 내내 거의 보이지가 않았다. 내가 제대로 봤다면, 그는 발언 기회를 한 번도 요청하지 않았다. 손석희의 발언 요청에 따라 몇 번 말을 꺼냈을 뿐이다. 말을 할 때도 그의 조심스러움은 지나쳐 '쫄아 있다'는 느낌을 줄 정도였다. 본인 스스로도 출연을 수차례 고사했다고는 하는데 토론에 나왔으면 불꽃이 튈 정도로 싸워주는 게 토론을 보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다.

10. 손석희
패널은 아니지만, 손석희의 가장 큰 미덕은 예의 그 중립성이다. 은연중에 그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미세하게 드러낼 때도 있긴 하나 그는 웬만해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그 뿐 아니라 그는 토론의 진행자로서 전체적인 프로그램의 흐름을 읽고 제어할 줄 알고, 해야 할 것들을 하면서도 유연성을 잃지 않는다. 정확한 상황 판단력과 즉각적인 의사결정 능력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가끔 던지는 농담이 썰렁하다는 게 단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