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역 4번 출구
-이상국-
딸애는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바닥에서 잔다
그애는 몸을 바꾸자고 하지만
내가 널 어떻게 낳았는데······
그냥 고향 여름 밤나무 그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바닥이 편하다
그럴 때 나는 아직 대지의 소작이다
내 조상은 수백년이나 소를 길렀는데
그애는 재벌이 운영하는 대학에서
한국의 대 유럽 경제정책을 공부하거나
일하는 것보다는 부리는 걸 배운다
그애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우는 저를 업고
별하늘 아래서 불러준 노래나
내가 심은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알겠는가
그래도 어느 날은 서울에 눈이 온다고 문자메세지가 온다
그러면 그거 다 애비가 만들어 보낸 거니 그리 알라고 한다
모든 아버지는 촌스럽다
나는 그전에 서울 가면 인사동 여관에서 잤다
그러나 지금은 딸애의 원룸에 가 잔다
물론 거저는 아니다 자발적으로
아침에 숙박비 얼마를 낸다
나의 마지막 농사다
그리고 헤어지는 혜화역 4번 출구 앞에서
그애는 나를 안아준다 아빠 잘 가
시골에 사는 아버지가 서울 원룸에서 사는 대학생을 만나고 헤어지는 얘기다.
딸은 아비의 마지막 농사다.
딸과 아버지는 현대 도시사회가 농경사회에 작별인사를 건네는 비유다.
아팠던 일들은 흐릿해지고....추억은 땅따먹기 처럼 점점 넓어져만 가게 하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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