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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싶은시

쉽게 씌어진 시 /윤동주

by 칠면초 2023. 3. 10.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 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요즘같은 시기에 윤동주님의 이 시가 마음을 적신다.

우리가 그동안 배우고 알고 분노했던 사건들이

와르르 무너진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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