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섬에서 만난 장군>
그는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서 없애고, 두만강 물은 다 마셔서 없애리라.
사나이 스무살에 나라를 평정 못하면,
누가 후세에 대장부라 칭하겠는가”라고 말했다.
17세에 무과에 장원급제하고 10년 후, 27세에 유명을 달리한다.
참으로 짧은 삶. 연적이었던 병조참지 유자광은
그가 읊은 시를 증거로 장군이 모함을 했다고 상감에게 아뢴다.
시 내용이 역모를 꾀함이라고....
그리해서 장군은 경기도 어느 한 섬에 귀양을 살았는데,
그의 이름을 빌어 후세에 남이섬 이라고 했단다.
남이장군.....
하지만 장군의 묘는 가짜다. 장군의 진짜 묘가 화성시 비봉에 있음을 얼마전 알았다.
안산에서 비봉으로 가는 큰 길을 벗어나면 차 한대 겨우 다질 정도의 좁은 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면
장군의 묘소가 있다.
남이섬에 있는 장군 묘는 상술이 만들어낸 사기놀음이라던 남이섬 관계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보다 지금은 ‘욘사마’로 더 알려진 남이섬.
일본인들이 줄을 지어 찾아든다는 이곳에 이토록 아픈 사연이 있는지
장군의 묘비를 읽어보곤 알았다.
하루에 3척의 배가 드나들며 200명의 승객을 태워 섬으로 향하는데,
겨우 운행시간은 5분~10분가량?
주말, 비가 오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배는 늘 만원이다.
갑판원 아저씨 말이 옛날엔 장마 때만 섬이 됐다가 물이 빠지면
다시 뭍으로 이어졌는데 상류에 청평댐이 건설되면서 완전한 섬이 되어 배를 이용해야만 한다고.
매표소나 화장실 안내는 모두 일보인 관광객을 의식한 듯 일본판이다.
어색하지 않을만치 일본인들이 자주 눈에 띈다.
여기서 사진을 찍는 사람은 '다 일본인이'라고 한 관리자의 장난처럼 던진 말에,
사진 찍던 손이 잠시 주춤하기도.(^*)
장군의 가묘는 푸름이 깊은 잔디밭을 가로질러 조금 올라가면 나타나는데,
찾는이는 거의 없다.
그 앞에서 한문으로 거의 쓰여진 묘비를 한참동안 대~충 읽었다. (몰라서~)
“남이장군 너무 경솔했네, 자신감이 넘친 탓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