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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승리의 드라마 한 편을 접한 느낌이다. ‘앞은 못 봐도 정의는 본다’라는 책은 근래 보기 드물게 한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며 감탄사를 나오게 만들었다.
오래전 이영복이라는 맹인가수가 있었다. 까만 선글라스를 쓰고 티비에 나온 그를 보면서 난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이런 편견을 없애주었던 동기는 시각장애인을 만나면서부터였다.
부천해밀도서관에서 만난 한 시각장애인. 그는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봉사를 하고 있었다. 물론 점자책을 통해 그의 입을 빌어 녹음을 하는 과정이었지만, 그의 맑은 음성과 밝은 표정은 그동안 가지고 있던 내 편견을 말끔히 씻어주기에 충분했다.
‘앞은 못 봐도 정의는 본다’는 그 청년을 생각나게 하며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했다. 더구나 제목에 나오는 정의란 단어는 참으로 내가 좋아하는 단어 아니던가.
작가 고바야시 데루유키는 현재 일본에서 논픽션 작가로서 활동 중이다. 이미 낳은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그가 일본 최초의 시각장애 변호사 다케시타 요시키의 이야기를 발표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사법시험이 시행된 이래 2008년 11월 25일 처음으로 시각장애인 합격자가 나왔다. 3급 시각장애인 최영(27세) 씨가 그 주인공이다. 일본의 경우 3명의 시각장애인 변호사가 있으며 미국이나 영국은 이미 300명 가량 되는 현실을 볼 때 한국사회가 장애인의 사회 진출에 얼마나 ‘장애’가 많은 사회였는가를 실감케 한다.
이 책은 1981년에 첫 시각장애인 변호사를 배출한 일본의 경험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다케시타 요시키는 중학교 3학년 때 외상성 망막 박리에 의한 실명판정을 받는다. 평생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절망은, 좋아하던 스모를 할 수 없게 된 상황이 더 안타깝게 다가왔다고 다케시타는 그때를 회상한다. 이러한 심리적 상황에 대한 공감이 버겁지는 않았다. 나도 큰 수술을 앞두고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궁금해 한 적 있으니 말이다~~
다시 책 속으로 들어와, 다케시타는 이시가와현립 시각장애인학교에 들어가 점자를 익히고 안마와 뜸 기술 등을 배운다. 그가 류코쿠대학 법학부에 들어가기 전 어려운 과정이 감동과 함께 다가온다.
시험 문제를 손끝으로 읽어내려가야 하니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점자는 ‘히라가나’만 표현할 수 있어서 뜻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문맥을 통해 알맞은 한자를 머릿속에 떠올려봐야 한다.(156쪽)
문제지는 30문항씩 클립으로 묶여 있었는데 답을 쓰기 위해 클립을 빼고 나니 문제지는 100장이 넘었다. 문제지가 헝클어져 앞에 있는 문제를 다시 볼 수도 없었다.(159~160쪽)
어려움을 딛고 아홉번째로 치른 사법시험에서 다케시타는 드디어 합격을 거머쥔다. 일본 최초의 시각장애인 변호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점자로 영어와 수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의욕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힘든 시기에 한 여성과 사랑을 하게 된다. 역시 사랑의 힘은 대단했다. 그에게 의욕을 심어주었고 목표의식을 주었다. 그녀 역시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끝까지 다케시타의 옆자리를 지키며 다케시타의 꿈을 믿어주었다. 그리고 다케시타가 변호사가 된 후에도 다케시타의 비서 역할을 하면서 다케시타의 평생의 반려이자 조력자가 된다.
책의 중 후반부에 가서는 다케시타의 변호사 인생이 펼쳐진다. 변호사가 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던 다케시타는 이제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돕기로 마음먹고, 장애인이나 노숙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재판을 맡으며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변호사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빈곤층 출신 절도범의 국선변호를 맡았다. 삶에 대한 희망을 잃은 피고인의 마음을 열기 위해 일주일에 세 번씩 구치소를 찾아가며 노력을 다한 끝에, 다케시타는 집행유예를 얻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는 일본 사회복지 제도의 문제점을 알린 역사적인 사건재판부터 경찰관을 살해한 야쿠자 말단 조직원의 책임을 3만 5천 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야쿠자 최고 보스를 6년여의 법정투쟁 끝에 성공적으로 이끌어냄으로써 일본사회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작가는 다케시다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사랑을 받고 사랑을 베풀은 사람’이라고 전한다. 그의 삶은 일본 시각장애인의 발걸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반적인 승리의 후일담쯤으로 읽히지 않을까 하는 점이 이 책을 읽으며 갖게 된 생각이다. 더구나 재판에서 승소하는 과정은 더욱 그런 느낌을 준다.
하지만 독자들이 찾아야 할 보배는 그의 성공담이 아닌 그가 변호사가 되기위해 발버둥치던 그때 이야기들이다. 정의를 보려고 안간힘 쓰던 초선 변호사의 눈물겨운 투쟁에 나도 한표를 던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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