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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삼매경

서평-치팅컬처(거짓과 편법을 부추기는 문화)

by 칠면초 2009. 1. 12.

“옆으로 걷지 말고 똑바로 걸어!” 엄마 게가 아기 게에게 말했다. 아기 게가 말한다. “엄마부터 똑바로 걸어 보세요!” 똑바로 살아라! 정의롭게 살아라!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너무나 많이들은 말이다. 그런데 아직도 게는 옆으로 걷는다.

 

난 가장 좋아하는, 아니 흠모하는 단어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신독(어두운 곳에서도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이라는 단어를 말했다. 그럴 적마다 많은 사람들이 ‘신독?’하고 고개를 갸웃한다. 남을 속이지 않고 살고 싶었다면 그것도 거짓일까? 치팅컬처 399페이지 후기 마지막 줄에서도 신독이 나온다.  

 

‘치팅컬처-거짓과 편법을 부추기는 문화’ 라는 400p가 넘는 책을 받아든 순간 위와 같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책은 두꺼웠다. 거기다 깨알 같은 글씨의 표지 까지 약간 답답함을 주었다. 이걸 언제 다 읽나 하는 걱정이 슬그머니 들었다. 그런데 의외로 한두장을 넘기면서 난 미국사회 속으로 거침없이 들어가게 되었다.

 

월스트리트, 의사, 변호사, 학생들, 회계사, 기업 등 사회 전반에 퍼진 속이는 문화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친절한 가이드 같았다. 며칠 동안 이 책을 손에서 놓지 않게 했다. 일을 하다가도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새롭게 느끼는 설렘이었다.

 

약간 옆길로 새자면 직장에 참으로 남을 믿지 못하는 직원이 있다. 난 그 사람을 두고 ‘누구에게 많이 속았거나 아니면 과거에 누구를 많이 속였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하여튼 남을 믿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기는 내 사고 속에 치팅컬처는 솔직히 충격이었다. 책장을 덮고 나서도 한참동안 공황 속에 빠져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 책은 미국사회의 그늘진 곳에 확대경을 들이댔다. 가장 선진국이라는 미국 사회에서도 남보다 내가 좀 더 잘 살기 위해서, 내가 더 올라가기 위해 옳은 일을 내팽개치는 평범한 인간들의 집단이었던 걸 보여준다.

 

그동안 미국이라는 사회를 가장 많이 접하는 곳은 단연 영화였다. 미드를 보면 그 사회의 자긍심과 자부심, 자존심(모두 자로 시작하네?)그런 것들이 무척 강하고 잘돼 있는 나라로 그려진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좀 우울하기도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치팅컬처는 헐리웃 영화에서 보여주던 인간애와는 거리가 먼 미국의 속살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미드가 우리에게 잘못된 미국을 보여주었단 말인가.

 

거짓과 편법을 부추기는 문화가 만연하고 속이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는가에 대해서 저자는 승자독식과 신자유주의의 과도한 경쟁을 그 원인으로 꼽고 있다. 의사, 변호사가 되기 위해 부채를 떠안고 사회에 진출해 상사의 시녀 노릇을 하면서도 1등이 되기 위한 불법을 거침없이 저지르는 모습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이 과연 남의 나라, 미국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이해되지 않는 일 중의 하나가 식당에서는 서로 밥값을 계산하려고 싸우면서도 길거리의 가난한 자에게는 적선을 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회의 시간에는 아무런 의사표현을 하지 않고 침묵하다가 회의를 마치고 난 뒤 삼삼오오 패거리 지어 반대의견을 드러내는 행태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토로한다. 우리들은 왜 이렇게 겉과 속이 다를까?

 

요즘 인터넷에 뜨는 한 남자가 있다. 물론 현재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지만 논객 미네르바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우리는 매트릭스(영화제목) 안에 갇혀 사는 천민이라고 직설했다.

 

보수 진영은 미국의 도덕 실추를 소리 높여 비난하지만, 사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지난 25년간 미국 사회 전역에 걸쳐 급증해온 속임수에 대한 설명은 빠져 있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기업 스캔들이 터졌다. 사람들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그처럼 도를 뛰어넘는 추악한 사건들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던 듯하다. (169p)

 

보수주의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정부 구조를 축소해 힘을 약화시킴으로써 기업 스캔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했다. 규제 철폐가 속출하면서 공공시설, 은행, 통신업, 항공업, 운수업 등 각종 산업 분야에 대한 정부의 관리감독이 후퇴했다. 민영화 열풍이 불면서 더 많은 정부 기능이 부정행위를 막을 안전장치가 거의 없는 민간 업체로 넘어갔다. 호황기에 정부 규제가 뒷걸음친 데에는 정계로 돈이 흘러들면서 양당 모두 깊이 썩었다는 점을 이유로 들 수 있다.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는 더말할 나위도 없다.(173p)

 

정말 놀라운 점은 도덕이란 말 대신에 '잃어버린 10년'과 '좌파' 라는 말만 넣으면 한국 사회에 대한 미래를 그려준다. 아마도 우리 사회의 비전 중의 하나가 미국이기 때문에 많은 영역에서 우리의 미래 모습은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는 미국의 부정적인 모습을 다 닮아갈 것이라 생각된다. 슬프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는 편법과 거짓말을 바로 잡기 위해 새로운 계약을 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 모두 부족하고 불완전하기에,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관계가 요청되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우리들의 행복을 만들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 것이란 이야기다. 책장을 덮으며 오랜시간 참으로 우울했지만 현실을 직시하는 안목이 길러졌다는 소득을 뿌리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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