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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왕을 위한 변명 (김영사) 20

by 칠면초 2009. 4. 24.

 

 

 

 

 

 

 

 

                                              나는 왜 왕이 되었는가!

                    우리가 전혀 몰랐던 조선왕 10인의 사적인 내면 고백!

 

 

 


▶ 책소개


왕의 얼굴 속에 감춰진 인간의 심리를 통찰한 탁월한 역사 읽기!


■왕이기에 앞서 인간의 얼굴을 한 10인의 조선왕을 만나다!


왕의 입장에서 본다면,『조선왕조실록』은 매우 불리한 기록일 수밖에 없다.『조선왕조실록』에는 대의명분에 입각하여 왕을 비판하는 무수한 양반들이 등장한다. 한 명의 왕을 두고 수백 명 아니 수천 명의 사람들이 훈계하고 충고하고 비난하는 셈이다. 그런 글들을  읽다보면 실존적 인간으로서의 왕은 고사하고 흠투성이의 왕만 보이기 십상이다. 그런 기사들 속에서 실존적 인간으로서의 왕을 읽어내기는 너무 힘든 일이다.


왕은 모름지기 어떠해야 한다는 당위성 너머에 있는 실존적 인간으로서의 왕들은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대상은 조선시대 27왕 중에서 10명이다. 그들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조선왕조 500년간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왕들이었다. 10명의 왕들이 자기 자신, 가정, 인간, 국가, 세계와 마주해 보여주었던 마음과 행동은 바로 조선왕조 500년간의 굵직한 발자취이기도 했다.


역사의 주체는 역시 인간일 수밖에 없다. 인간이 배제된 역사는 역사라고 할 수도 없다. 조상들이 남겨준 모든 자료를 찾아 확인하는 것이 역사가의 기본 사명이라면, 마찬가지로 그 시대의 인간들을 주체적으로 통찰해야 하는 것 또한 역사가에게 피할 수 없는 사명일 것이다. 결국 조선시대 10명의 왕들이 마주했던 자기 자신, 가정, 인간, 국가, 세계는 어찌 보면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나 자신, 내 가정, 내 이웃, 내 나라이기도 한 것이다.(저자 서문 중에서)

▶ 책 속에서


■ 역사기록 속에서 인간을 읽는다!


▸태종은 운명을 거부한 현실론자인가?

▸세종은 양녕에게도 ‘해동의 요순’이었을까?

▸세조의 두 얼굴은 무엇을 향한 염원인가?

▸연산군은 유교 윤리에 저항한 자유인인가?

▸중종의 냉철함은 극도의 절제력인가, 공포심인가?

▸광해군은 저주를 혹신한 패륜아일까?

▸인조는 청나라와의 정신적 대결에서 승리했는가?

▸영조는 경종의 죽음에 앞에서 결백할까?

▸정조의 천재성은 타고난 것인가 만들어진 것인가?

▸고종은 풍전등화의 기로에서 무엇을 의존했을까?


태종은 자신의 판단과 현실적 감각에 의한 계산된 행동으로 원하는 모든 것을 쟁취해냈다. 그러나 끝내 부왕의 진정어린 애정과 신뢰를 확인하지 못하자 마침내 그토록 비판해마지 않던 불교에까지 매달렸다. 결국 태종은 현실론자이면서도 완전한 현실론자가 되지 못했다. 부왕의 진정어린 애정과 신뢰를 끝내 확인하지 못했기에 그의 제1차 왕자의 난이 진정한 대효의 행동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힘들었다. 냉철한 태종도 ‘운명’과 ‘아버지’의 위력 앞에 할 말을 잃고 할 바를 잃는 때가 있었던 것이다.


연산군이 총애하는 여인들, 흥청과 함께 처용무를 공연하며 곧잘 야제를 지냈다. 당시의 야제란 원통하게 죽어 구천을 떠도는 원혼을 위로하기 위해 지내는 제사였다. 야제를 지낼 때는 무당이 원혼을 불러내 그 사연을 들었는데, 연산군 스스로 무당이 되어 죽은 자의 원혼을 불러낸 것이었다. 연산군은 무당굿을 좋아하여 스스로 무당이 되어 노래하고 춤추었는데 그런 때는 ‘어머니 폐비 윤씨가 빙의되는 형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궁중에서는 연산군에게 폐비 윤씨의 원혼이 빙의되었다는 소문이 퍼졌다고 한다.


중종은『고려사』중 최충수의 강압에 의해 태자비를 폐출해야 했던 신종에 대한 기사를 읽으며 연이어 처량한 한숨을 내쉬었다. 특히 폐출된 태자비가 오열했고, 신종은 물론 왕후와 태자를 비롯한 모든 궁중사람들도 눈물을 흘렸다는 부분에서는 복받치듯 울먹거리기까지 했다. 속울음을 삼키느라 중종은 책을 제대로 읽지도 못했다. 이날의 기록을 제외한다면 처량한 한숨을 내쉬며 울먹이는 중종의 모습은 『중종실록』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중종은 오랫동안 가슴속 깊이 숨겼던 본심을 자신도 모르게 드러낸 것이었다. 신종은 사실상 중종 자신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실록에 의하면 남곤은 늘 ‘조광조 등이 총애를 받기는 하지만 임금의 마음을 쉽게 바꿀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한다. 조광조가 대사헌으로 있던 당시 겉으로 드러난 중종의 신임은 말할 수 없이 깊었다. 당시 사람들은 누구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광조에 대한 중종의 신임을 꺾을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남곤은 그 신임이 어떤 기반 위에 세워져 있는지를 정확하게 꿰뚫어 보았다. 조광조에 대한 중종의 신임은 근본적으로 반정공신들에 대한 공포심에서 비롯되었다. 중종은 조광조가 반정공신들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주기를 바랐다. 중종은 조광조에게서 안전과 평화를 갈구했던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종이 조광조에게서 안전이나 평화가 아닌 위협이나 공포심을 느낀다면 그의 신임은 한순간에 날아갈 수 있었다. 남곤이 ‘임금의 마음을 쉽게 바꿀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 것은 이런 중종의 마음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이다.


광해군은 김개시의 저주 공작을 사실로 믿었으며 그 연장선에서 유릉 저주까지도 확신했다. 그 결과 광해군은 인목대비 김씨를 10악 대죄를 범한 흉악범으로 간주해 후궁으로 강등하고 서궁에 유폐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광해군이 유릉저주사건을 확신하고 끝내 인목대비 김씨를 후궁으로 강등한 사건은 근본적으로 저주에 대한 혹신 때문이었다. 인목대비 김씨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저주의 영험함에 대한 공포가 혹신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그런 광해군을 잘 아는 김개시가 저주사건을 공작하여 성공시켰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광해군은 자기 확신과 포용력 그리로 용인술이 부족한 왕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인조는 소현세자가 죽은 당일, 병중임에도 불구하고 세자의 빈소로 갔다. 세자의 죽음을 보며 인조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혹 자신의 왕위를 빼앗을지도 모를 정적이었으니 잘 죽었다고 통쾌해 했을까? 아들의 죽음을 막지 못한 자신의 무능을 원망했을까? 아니면 아들이 죽게 된 원인을 청나라에 돌리며 이를 갈았을까? 소현세자의 직접적인 죽음은 병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보면 실제 소현세자를 죽인 사람은 인조 본인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소현세자가 병에 든 이유는 인질로 잡혀갔기 때문이고, 인질이 된 이유는 인조의 ‘존명사대’ 때문이었다. 만약 이렇게 생각했다면 인조는 지난날의 존명사대를 반성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했다. 그렇지만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었다. 세자가 친청파로 변절했기에 하늘이 벌을 내린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인조는 큰아들을 죽였다는 죄의식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고, 고집스럽게 지켜온 존재근거도 지킬 수 있었다.


왕세제 연잉군(뒷날의 영조)은 왜 강압적으로 경종에게 인삼을 쓰게 했을까? 당시 그의 마음은 경종을 꼭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그 반대의 마음이었을까? 영조는 왕위에 오른 후 자신의 결백을 끝없이 주장했다. 자신은 경종을 살해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왕세제에 책봉된 것은 대비의 명령 때문이었고, 목호룡의 고변은 날조된 것이었으며, 경종이 죽은 것은 이공윤의 처방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신과 경종 사이는 돈독한 형제 사이였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영조의 결백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영조가 왕세제로 책봉될 때부터 흑심을 품었다고 생각했다. 임인년의 옥사 때, 왕세제 연잉군이 백망을 사주해 경종을 살해하려고 한 것도 사실이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경종을 독살하려고 게장과 생감을 올렸으며, 마지막에는 인삼차를 강압적으로 올렸다고 믿었다. 상황으로 보면 충분히 그렇게 믿을 수 있었다. 경종의 복수를 하겠다고 거병했던 영조 4년(1728)의 이인좌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다. 국왕으로서 영조의 일생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한 일생이었다.


고종은 을미사변 이전까지는 항상 누군가에 의지해 살았다. 12살에 왕이 되었을 때는 대왕대비 신정왕후 조씨가 수렴청정을 했고, 그 후로는 흥선대원군이 10년간에 걸쳐 섭정을 했다. 흥선대원군이 하야한 이후로는 명성황후 민씨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동안 결정적인 판단력과 추진력은 고종 자신이 아닌 신정왕후 조씨, 흥선대원군, 명성황후 등에게서 나왔다. 그러나 고종이 황제에 오른 후에는 그럴만한 사람이 없었다. 고종이 총애하는 엄 상궁은 명성황후에 비견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고종은 이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했다. 그 결과에 대해서도 물론 스스로 책임져야 했다. 이것이 두려운 고종은 결정적인 판단을 내려야 할 때마다 무당이나 술사들에게 의지했다. 자신감이 약한 고종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던 것이다. 고종은 황제가 되기 전에도 무당이나 술사들을 좋아한 왕이었다. 그런 성향은 을미사변 이후 더욱 심해졌다. 이런 고종이라 황제가 되어서도 사기꾼들에게 어이없이 당하는 일도 있었다.


▶ 저자 소개


지은이 : 신명호申明鎬

1965년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농사꾼 아들로 태어났다. 역사를 특히 좋아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역사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강원대학교 사학과에서 한국사를 공부했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조선시대 왕실을 전공하여 『조선초기 왕실편제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지은이는 박사학위 취득 후 전통시대의 군주제도가 근대민주주의로 변화되는 한국적 양상과 의미에 관심을 갖고, 그 전제로서 조선시대 군주제도의 핵심인 왕과 왕실문화를 집중 연구하고 있다. 이를 발판으로 장차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3국 군주제도의 상호 공통성과 차별성을 비교 검토하고, 각국의 근대 민주주의로의 이행과정을 비교, 연구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언젠가는 동양의 군주제를 포함한 세계의 군주제를 종합적으로 비교, 연구하려는 야심까지도 가지고 있다.

신명호 교수는 이 책에서 타자의 시각에서 본 왕의 일면이 아니라 왕의 입장에서 본 내면의 독백을 기록의 행간을 넘나들며 살려내고 있다. 역사기록의 이면에 감추어진 인간의 모습을 역사적 시각에서 통찰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군주제에 대한 제도적 이해에 한층 생생한 활기를 불어넣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했으며, 국사편찬위원회의 편사연구사를 거쳐 현재 부경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조선의 왕』『조선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문화』『궁궐의 꽃, 궁녀』『조선왕실의 자녀교육법』『조선왕비실록』 등이 있다.




▶ 출판사 리뷰


역사기록 중에는『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등의 일차사료인 정사류와 함께, 야사나 문집 등에 왕의 행적을 전하는 무수한 사료들이 전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들은 왕의 입장에서 보면 결국 2차적인 기록일 뿐이다. 그 기록들은 감계를 위한 역사기록의 일환으로서, 포폄사관의 취지에 입각한 것이기에 왕에 대한 평가가 일면을 보여줄 뿐, 왕의 인간적 모습을 제대로 알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물론 왕 스스로 자신의 문집을 남긴 경우도 있지만 흔한 경우는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2차적 기록’ 속에 존재하는 왕은 대개의 경우, 모범적인 정치를 행한 당위성에 충실한 좋은 왕이거나 본받지 말아야 할 패악을 행한 나쁜 왕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감계 사관의 당위성 너머에서 현실적 조건 앞에 인간으로서 고뇌해야 했던 왕을 읽지 않으면 역사의 진면목을 알 수 없다. 왕이기에 앞서 인간으로서 그들은 맞닥뜨린 현실 문제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실존적 인간으로서 조선의 왕들이 마주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이제 타자화되고 객체화된 왕을 읽을 것이 아니라 생생하게 역사적 존재로서 꿈틀대던 그들의 인간적 내면을 보아야 하지 않을까?


줄곧 조선의 왕실문화사를 연구해온 신명호 교수가, 이제 제도사의 틀을 넘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인간의 문제에 한 발짝 다가섰다. 바로 왕이기에 앞서 역사적 인간, 실존적 인간으로서 존재했던 조선왕의 내면을 파헤치기 시작한 것이다. 통치자로서 누구보다 엄정한 규범을 요구받았던 조선의 왕들, 그들 내면에 도사린 인간적인 갈등과 한계를 통해 인간의 눈으로 문제의 핵심을 보지 않고는 역사의 진상을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기록 속에서 내밀한 숨결을 유지하며 살아 숨 쉬는 인간으로서 존재했던 왕을 통찰하고 복원하는 작업, 곧 '왕을 위한 변명'은 우리 스스로 자각하고 성찰하지 않으면 안 될 역사의 진실과 새로운 역사 읽기의 즐거움을 동시에 선사하고 있다. 




▶ 차례

머리말_ 실존적 인간으로서의 왕을 만나다


1. 아버지의 아들로서, 태종

조선왕조의 창업은 천명이 아니었다

나라의 화복이 불상에 달려있지 않다

제왕은 자신의 이성을 찾아 중심을 잡아야한다

원칙을 바로세운 것이지 불효가 아니었다

미움과 복수심도 현실 앞에서 굴복했다

냉철한 이성도 천륜 앞에서는 무너지고 말았다


2. 형제인가 경쟁자인가, 세종

‘해동의 요순’은 초인적인 노력의 결과였다

출생부터 천운을 타고난 것은 운명이었다

편애가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근본에 충실했던 것은 충녕이었다

열등감에 이은 절망감은 또 다른 좌절이었다

의심과 미움도 능력과 노력에 굴복했다


3. 불교를 향한 염원에 담긴 뜻, 세조

악행의 저주에 대한 구원은 문수보살이었다

묘법연화경, 생사를 넘어선 행복의 원천이었다

상원사 복원은 자신의 업보를 향한 염원이었다

문수보살의 지혜는 번뇌와 망상을 끊는 지혜였다

업보 뒤에 새겨진 두 얼굴은 모두 진실이었다


4. 한 세상 내 마음대로 원을 풀리라, 연산군

황음무도한 쾌락은 윤리를 떠나 있었다

빙의는 통한과 서러움의 광적인 표현이었다

일만 흥청의 야심은 태평성대의 또 다른 염원이었다

모성을 위해서라면 희학과 희욕이라도 상관없었다

폭식과 폭음은 환락, 그 자체의 몸부림이었다

살육과 황음무도는 무절제한 감정과 무능이었다


5. 극도의 공포심이 빚어낸 이중성, 중종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은 절제는 공포였다

공포를 이겨내지 못한 이유는 천성과 환경이었다

반역자와 공신은 치욕과 원수 사이에 있었다

숨죽이고 지낸 것은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이중성은 또 다른 공포심의 표현이었다

비극은 절제를 뛰어넘는 공포심의 자극이었다


6. 저주를 혹신한 극단의 심리, 광해군

저주와 원한, 그 원인을 살피자면 끝이 없다

유릉저주사건은 파국의 시작이었다

신뢰를 떠난 사건의 진실은 저주의 시작이었다

저주의 혹신은 결과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저주에 대한 공포는 자기 확신을 부정한 패륜이었다


7. 무엇이 천륜마저 저버리게 했을까, 인조

원한이 인조반정의 씨앗이었다

대의명분은 왕의 자리도 내치는 절대절명이었다

‘존명사대’는 소신에 앞서 고집이었다

존재근거, 그것은 생명보다 무서운 것이었다

소현세자의 죽음은 예고된 것이었다

배신에 대한 의심은 천륜을 무시한 개인사였다

의도적인 죽음이 아닐지라도 의심이 간다

명분과 고집으로 현실이 극복되지는 않는다


8. 이복형 경종의 죽음 앞에서, 영조

두 형제의 질긴 악연은 결과이자 원인이었다

끝이 없는 편애는 두 사람의 인생을 갈랐다

야심과 기대, 누구도 모르지만 자신은 알았다

이미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망가진 신세였다

인식의 차이, 그것은 기회이자 현실이었다

결단의 순간, 그는 자신만의 히든카드를 냈다

죽음의 현장과 배후에 함께하고 있었다

호의와 양보, 음모와 술수 사이에서 결백을 증명하라


9. 만들어진 천재성, 정조

건강한 몸과 마음에 준비된 합방이 시초였다

출산의 이면에는 모진 다짐과 노력이 있었다

천재는 지극한 관심과 보살핌 속에서 기다렸다

훌륭한 태교와 생모의 사랑은 무엇보다 강했다

최고의 교육환경과 애정에 정성을 다했다

교육의 양과 질, 지극한 관심이 만든 결과였다


10. 외롭고 고단한 황제, 고종

자신의 경호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다

공포와 불안은 또 다른 돌파구를 찾게 했다

급박한 위기탈출 순간에 배신이 막아섰다

복수의 의지는 없었지만 탈출의 기회는 있었다

황제가 된 것은 새로운 통합과 도약의 전기였다

하지만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책임져야 했다.

그것은 근본적 개혁이 아닌 꿈속의 자기 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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