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사서로 살아가는 게 어떤 것인지 경쾌한 필체로 풀어 낸 에세이. 까칠한 듯하지만 솔직하고 위트 넘치는 저자의 글솜씨는 마치 개인 블로그나 일기장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풋내기 사서인 저자는 단순히 책을 좋아하는 것과 사서의 일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직업에 끊임없이 회의한다. 그러면서도 도서관에서 만난 노인, 아이, 노숙자들을 통해 삶에 대해 배우고 도서관의 의미와 사서의 역할을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도서관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도 사람 사는 일은 다 똑같다. 저자에게 일어나는 어처구니없고 유쾌하며 때로는 감동적인 사건들을 읽으며 우리는 저자에게 공감하는 동시에,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본문 중간중간에 ‘소곤소곤’이라는 쉬어 가는 코너가 있어 아동 문학, 문맹률, 음모 이론, 성인식 등 역사적 사건과 책 혹은 도서관에 대한 상식 등을 소개한다.
<출판사 서평>
도서관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려라!
시트콤보다 더 웃긴 요절복통 도서관 이야기
사람들은 보통 ‘도서관 사서’라 하면, 안내 데스크에 따분한 표정으로 앉아 이따금씩 이용자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주의나 주는 고지식한 사람을 연상하곤 한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사물과 사람의 진면목은 그 같은 고정관념을 버릴 때에만 제대로 드러난다.
대학 재학 중 신문에 난 구인 광고를 보고 얼떨결에 도서관 사무보조로 일하게 된 뒤 문헌정보학 대학원에 진학해 정식 사서가 된 저자는, 사서들이야말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괴짜들이며 도서관은 세상 그 어디보다 소란스러운 곳임을 보여 준다. 책 읽는 걸 싫어해 유명 작가의 이름이나 고전 작품의 제목은 잘 모르면서 연예인 스캔들은 줄줄 꿰는 사서라니, 상상 밖이지만 그래서 더 친근하지 않은가?
도서관 이용자들은 또 어떤가? 지적인 책벌레들일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온갖 기상천외한 캐릭터들의 집합소이다. 학교가 끝나면 부모가 퇴근할 때까지 도서관에서 기다려야 하는 서민 가정 아이들, 도서관 컴퓨터로 포르노 보는 아저씨들, 도서관이 제집인 양 냄새 풍기며 살림 차린 노숙자들, 책보다는 말동무를 찾아 도서관에 오는 외로운 노인들, 도서관을 CIA가 감시 중이라고 믿는 미친 여자,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며 전도하러 오는 청년, 도서관에 가전제품 가져와 충전하는 아줌마, 사서들을 열 받게 하는 개념 없는 십 대들 등, 이보다 더 특이할 수 없는 이용자들이 도서관의 하루하루를 드라마틱하게 만든다.
풋내기 사서, 도서관에서 인생을 배우다!
이십 대 청년의 좌충우돌 성장담
사서는 책만 정리하면 되는 줄 알았던 저자는, 차츰 사서가 하는 일이 어떻게 보면 사회복지사와 비슷한 일임을 깨닫게 된다. 안하무인 같지만 알고 보면 사회적 약자로서 보살핌을 갈구하는 노숙자들, 도서관에서 이벤트를 위해 나눠 주는 팝콘으로 끼니를 때우고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는 결식 아동들, 연륜과 지혜로 가득하지만 사서에게 일부러 시비라도 걸지 않으면 말동무가 아무도 없는 외로운 노인들… 이런 소외된 이웃들을 주로 상대하며 그들의 안식처가 되어 주고, 너무 빨리 변해 가는 문명의 이기 앞에서 멀미를 느끼는 사람들에게 아날로그적 위안이 되어 주면서 처음에는 힘들어하던 저자도 곧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보람과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물론 처음부터 불타는 소명의식을 갖고 시작한 게 아니라 아르바이트하러 갔다가 우연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얼떨결에 사서가 되었기에 저자는 ‘이 일이 과연 나에게 맞는가?’를 끊임없이 회의한다. 하지만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면서도 사서를 그만두지 못하는 걸 보면, 자기도 모르는 새 조금씩 자신의 일과 일터에 미운 정, 고운 정이 들면서 도서관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애정 어린 시선을 던지는 주인공의 내적 성장이 느껴진다.
이렇게 보면 사실 도서관은 하나의 배경일 뿐이고, 궁극적으로 이 책은 한 청년의 성장담이라고도 볼 수 있다. 미국에 사는 이십 대의 평범한 남자가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면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 계속되는 회의감과 시행착오를 온몸으로 겪으며 성숙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면 연령과 장소를 초월해 공감할 구석이 적지 않다.
도서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뼈 있는 질문과 날카로운 통찰
저자는 이 책에서 공공 기관인 도서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는 도서관의 미래에 대해 뼈 있는 질문을 제기한다. 도서관에 컴퓨터가 들어오면서 빚어진 나이 든 사서들의 혼란, 카드를 넣어야만 문서가 출력되는 프린터기 앞에서 망연자실해하는 노인들, 사서들이 읽어 주는 동화를 들으며 두 눈을 반짝이는 발달 장애 아동들 등, 각양각색의 도서관 사람들은 저자로 하여금 사서로서 자신의 위치뿐만 아니라, 인터넷 시대에 동네의 작은 도서관이 갖는 존재 의의와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만든다.
또한 저자는 9.11 참사를 겪으며 그 같은 국가적 차원의 대형 사건 앞에서 사서가 매스 미디어의 일방적인 여론 조작과 군중심리에 휩쓸리지 않고, 지역사회 주민들에게 객관적인 가이드 역할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진지하게 성찰한다.
한편 이 책에는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의 기부로 공공 도서관이 황금시대를 맞이했던 시절 에피소드를 비롯해 역사 속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위용, 탈레반의 도서관 파괴 행위, 빌 게이츠가 도서관에 큰돈을 기부하는 진짜 이유 등, 도서관과 책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또 ‘소곤소곤’이라는 타이틀 아래 온갖 잡학 정보가 망라된 자투리 코너가 군데군데 삽입되어 있는데, 만약 사소하다는 이유로 그냥 지나친다면 이 책의 숨은 매력을 놓치는 일이 될 것이다.
<저자 소개>
미국 애너하임 공공 도서관의 사서로, 2003년부터 유명 문예 창작 사이트인 ‘맥스위니(McSWEENEY'S)’에 도서관에서 근무하며 경험한 따뜻하고 유쾌한 이야기들을 연재해 왔다. 이 밖에도 『더 모닝 뉴스THE MORNING NEWS』, 『오피엄 매거진OPIUM MAGAZINE』, 『더 퍼시픽 리뷰THE PACIFIC REVIEW』 등에 글을 기고했다. 현재 ‘고담 글쓰기 워크숍(Gotham Writer's Workshop)’에 출강 중이며 『스쿨 라이브러리 저널SCHOOL LIBRARY JOURNAL』, 『퍼블리셔스 위클리PUBLISHERS WEEKLY』, 『포워드 매거진FORWARD MAGAZINE』 등에 북 리뷰를 쓰고 있다. 자타공인 닭살 남편이자 애처가인 그는 아내 다이애나와 함께 캘리포니아 주 애너하임에 살고 있다. www.scottdouglas.org
옮긴이
연세대학교 국문학과를 나와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이것이 바로 미국이다』, 『미셸 오바마: 변화와 희망의 퍼스트레이디』,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딸과 함께 읽는 미셸 오바마 이야기』 등이 있다.
<목차>
1. 사서는 책을 읽지 않는다
얼떨결에 도서관 사무 보조가 되다
2. 도서관에 컴퓨터가 들어오다
컴퓨터를 피해 전근을 신청한 사서
3. 사서를 위한 신병 훈련소
도서관의 역사를 공부하다
4. 9.11 그리고 사서의 임무
사서는 세상을 어떤 관점에서 봐야 하는가
5. 사무 보조로 시작해 사서가 된 남자
어떤 것을 안다고 저절로 전문가가 되지는 않는다
6. 도서관은 누구를 위하여 팝콘을 튀기나
일용할 양식은 책뿐이 아니다
7. 아이들은 동화보다 방귀를 더 좋아해
동화 낭독계의 다크호스로 급부상하다
8. 그들만의 도서관 위원회
위원회 회의엔 왜 노땅들만 올까
9. 빈둥빈둥 놀면서 월급 타 먹기
프리셀 게임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10. 책 다섯 권 읽으면 햄버거가 공짜
허울뿐인 독서 캠페인
11. 어느 것이 진짜 장애인가
지적 장애인들의 산타클로스가 되다
12. 안녕, 정든 도서관아
도서관을 도서관답게 만드는 것들
13. 쉬어 가는 시간
막간 인터뷰
14. 내 인생의 두 번째 도서관
멕시코 이민자들로 가득한 새 도서관에 적응하다
15. 누가 소방관을 멋진 남자라 했던가
새 도서관의 새 이웃들
16. 저랑 일촌 맺으실래요?
사서의 미니홈피 엿보기
17. 도서관은 노인들의 사랑방
단골 어르신들의 레퍼토리
18. 게임은 집에 가서 해라, 제발!
골칫덩이 십 대에게도 사서는 필요하다
19. 사서가 무슨 동네북인가
사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사람들
20. 저, 여기 사는데요!
노숙자들은 왜 도서관을 좋아할까
21.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
사서는 어떻게 연애할까
22. 직장이라는 정글에서 살아남는 법
도서관 사서도 철 밥통은 아니다
* 에필로그
도서관에서 인생을 배우다
* 감사의 말
감사의 말을 빙자한 마지막 헛소리
* 옮긴이의 말
낡은 도서관에서 펼쳐지는 유쾌한 드라마
<책 속으로>
나를 도서관으로 끌어들인 것은 포르노이다.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스트리퍼가 나를 도서관으로 끌어들였다. 걱정 마시라. 변태 같은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젊고 대학 재학 중이었고 새로운 일자리가 필요했지만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찾고 있지는 않았다. 어느 날 신문 스포츠 면을 뒤적이다가 광고 면이 바닥에 떨어졌는데 우연히도 구인 광고 면이 펼쳐졌다. 광고 면을 주우려고 몸을 숙이자, 풍만한 가슴에 옷을 거의 걸치지 않은 여자가 나를 마주보았다. 나는 그 광고를 보고 도덕적으로 무례하며 불경하다고 느꼈고 이 불쌍한 여자가 무엇을 광고하는지 정도는 알아봐 줘야 하지 않겠냐는 일종의 의무감이 생겼다.
광고는 지역 스트립 바에서 신입 스트리퍼를 찾는다는 내용이었는데 구직자의 눈길을 끌기 위해 풍만한 가슴의 여자를 내세운 것이었다. 나는 도덕적으로 무례하고 불경한 다른 사진이 또 없나 찾아봤지만 더 없기에 광고 면을 그냥 내려놓으려고 했다. 그런데 불현듯 다른 구직 광고가 내 눈길을 끌었다. 커다란 글씨체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책을 좋아하십니까?”
☞ 본문 10쪽 ‘사서는 책을 읽지 않는다’ 중에서
출근 둘째 날, 도서관 동료들에게 나를 제대로 알리리라 마음먹었다.
나는 미국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을 대표하는 토머스 핀천의 소설 『제49호 품목의 경매』를 골랐다. 나의 지성을 자랑하기에 안성맞춤인 책이었다.
마침 사서 한 명이 휴게실에 들어왔다.
“손에 든 게 뭐야?”
“핀천의 『제49호 품목의 경매』요.”
그녀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핑콩인지 뭔지가 신인 작가인 거야?”
나는 태연한 척하려고 애썼다. 분명 나를 놀리는 것이리라.
“핀천은 제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책을 썼어요.”
“난 책은 잘 안 읽는 편이야. 읽을 시간도 없고.”
“사서인데도요?”
“사서인데도라니?”
그녀는 내 손에서 책을 가져가더니 앞표지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아, 이 이름 들어 봤어. 옛날에 줄리아 로버츠랑 사귀었던 그 남자 아냐?”
☞ 본문 12쪽 ‘사서는 책을 읽지 않는다’ 중에서
아이들은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에 열광한다. 어떤 게임이 도서관에서 인기를 끌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그 게임을 한다. 그렇게 되면 도서관 인터넷 접속 속도를 잡아먹어서 결국 컴퓨터가 느려지기 때문에 우리는 그 게임을 금지한다.
한번은 어떤 게임이 인기를 끌면서 아이들 엄마 한 명이 게임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아이들 셋의 엄마로 중년 여성이었다. 처음에는 대체 아이들이 왜 그 게임에 사족을 못 쓰는지 알아보려고 게임을 해 보는 듯했다. 이틀 후 그녀는 게임에 중독되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몇 시간 동안 게임만 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게임을 하는 데 방해가 된다며 아이들도 데리고 오지 않았다.
그녀가 게임에 빠져들수록 게임 시간은 길어졌다. 게임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녀는 도서관을 자기 안방처럼 생각했다. 그녀는 도서관에 음식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전자레인지로 데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가져와서 우리더러 데워 달라고 했다. 그녀의 도서관 출입이 잦아질수록 그녀는 더욱 게을러졌다. 게임에 중독된 지 두 달이 지나자 그녀는 제대로 걷지도 못해서 전동 휠체어를 타고 왔다. 그녀는 그 휠체어를 도서관에서 충전하기까지 했다.
어느 날 그녀가 컴퓨터를 계속 쓰려고 하면서 브라이언과 언쟁이 벌어졌다. 싸움이 끝나자 브라이언은 내게 와서 물었다. “저 여자 왜 저래? 하루 종일 뭘 하는 거야?”
“컴퓨터 게임이요.”
“고작 하는 게 게임이란 말야?” 브라이언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하자. 어떤 게임을 하는 건지, 그 게임을 금지해야 할 이유 목록을 작성해 줘. 내가 저 여자를 쫓아낼게. 비디오 게임 하러 오는 거면 도서관에 올 필요 없잖아.”
“애들도 데려와요. 그중엔 책을 읽는 아이도 있어요.”
“애들 데려와서 책 빌려 나가면 되지. 여기가 하루 종일 죽치는 데야?”
다음 주에 여자는 그 게임이 차단된 것을 보자 즉시 참고 봉사대로 달려왔다.
“인터넷에 문제라도 있어요?”
나는 최대한 진심을 담은 말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그 사이트는 차단됐습니다.”
“차단이라뇨! 왜요?”
“인터넷 속도를 떨어뜨려서요.”
“책임자가 누구죠?”
“모르겠습니다.”
그날이 그녀를 본 마지막 날이었다. 그 후로 아이들도 책을 빌리러 오지 않았다. 나는 내 일이 그렇게 많은 희생을 요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사실 많은 희생이 따랐다. 무엇이 더 중요할까? 그 여자가 없는 도서관의 평화일까, 아니면 책을 읽을 기회를 얻어서 나중에 엄마처럼 되지 않을 수 있는 그녀의 아이들일까? 답은 그 여자 없는 도서관의 평화로 밝혀졌다.
☞ 본문 312쪽 ‘게임은 집에 가서 해라, 제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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