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편집자가 말하는 편집자』는 ‘부키 전문직 리포트 시리즈’ 13번째 책으로, 여러 분야에서 책을 펴내는 출판편집자 23인의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은이들은 1년을 갓 넘긴 초짜부터 출판사를 창업한 25년차 베테랑까지 다양하다. 또 문학, 인문, 예술, 경제경영·실용, 어린이·교육 분야를 비롯해 학습, 어린이 학습만화, 대학출판부까지 망라하고 있다.
지은이들은 자신의 일상을 통해, 편집자의 개성이 어떻게 저자의 원고와 어우러져 책에 반영되는지, 책 만드는 일이 장르별로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기획 디자인 제작 홍보 등 책 전반에 관여하는 편집자의 역할은 무엇인지 생생하게 보여 준다. 책 말미의 ‘15문 15답’에는 출판사 면접의 특성, 포트폴리오 및 자기소개서 작성법 등 출판편집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주는 구체적인 도움말이 담겨 있다.
출판편집자는 어떻게 살아가는가
출판편집자는 책을 편집하는 사람이 아니다. 출판편집자는 책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 첫걸음은 기획이다. 기획을 통해 책의 내용과 방향을 정한 뒤 필자를 섭외해 원고를 받든가, 들어온 원고를 다듬어 기획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알면 보인다.”는 말 그대로 편집자가 평소 잘 알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서 좋은 기획이 나올 때가 많다. 지난 2003년, 베스트셀러가 된 『지선아 사랑해』 역시 편집자의 개인적인 관심에서 시작됐다. 편집자는 평소 이지선 씨의 홈페이지를 드나들며 팬으로 지내다가, 그의 사연을 책으로 만들게 되었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원고가 들어오면 흔히 ‘빨간 펜’으로 상징되는 교정·교열이 기다리고 있다. 출판편집자는 마치 국어학자인 양 문장 하나, 단어 하나까지 낱낱이 따지고 의심, 또 의심하며 읽는다. 누구나 ‘곰’이라고 생각하는 ‘bear’도 문장의 맥락에서 그 뜻이 맞는지 다시 따져 본다. 명백한 오류는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읽히지 않는다면, 편집자는 원문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고치고 또 고친다.
예전에 책으로 나왔던 원고라 할지라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진 대중들의 언어습관을 반영하여 텍스트를 바꾸기도 해야 하는 것. 1950년에 처음 발간된 함석헌 선생의 저작에서 ‘세대’라는 말은 ‘세상’을 의미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인다. 그래서 편집자는 원전 훼손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를 ‘시대’로 바꾸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단순히 바르고 읽기 쉽게 고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저자의 문체를 그대로 살리면서 오류를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다. 이미 독자들이 저자 특유의 문체로 받아들인다면 때로는 비문이라도 그대로 두어야 한다.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살피려면 병적인 집요함을 갖고 볼 수밖에 없다. 그로 말미암아 편집자에 대한 수많은 편견과 오해가 생겨나더라도 말이다.
원고가 이렇게 교정지 종이뭉치로 있을 때는 아직 ‘출산’하지 못한 생명이다. 편집자가 진정 산모 역할을 하려면 인쇄소의 잉크 냄새를 맡아야 한다. 제작은 편집자의 머릿속에 들어 있던 책 꼴이 구체적인 ‘물성’을 띤 상품으로 태어나는 중요한 순간이다. 하지만 대부분 외부 업체에서 진행되고 출력소와 인쇄소, 제책사 등 여러 곳을 거치는 관계로 예측할 수 없는 사고도 빈발하여 편집자를 긴장시킨다. 까딱하면 적지 않은 제작비용을 말아먹을 수도 있다.
이렇게 ‘자식’을 낳고 나면 이제는 그것을 알리는 일이 남는다. 매주 수없이 쏟아지는 신간. 그중에서 내 책이 살아남으려면 다른 책보다 얼마나, 어떻게 훌륭한지 알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보도자료. 정성껏 만든 보도자료를 책과 함께 언론사에 보낸다. 한다고 했는데 기사가 한 줄도 나지 않으면 편집자는 우울해지기 마련. 그나마 요즘은 인터넷 블로그나 카페를 활용한 마케팅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어서, 보도자료에서 얻지 못한 것을 만회하기 위해 또 다시 아이디어를 짜낸다.
출판편집자는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이렇듯 편집자는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에 개입하지만, 동시에 ‘안 보이는 사람’이다. 저자처럼 책 표지에 이름이 크게 박히지 않아도, 저자의 역량을 원고에 충실히 담아내고 책이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으면 만족한다. 독자는 그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편집자의 중요성이 감소되는 것은 아니다. 편집자는 원고가 책이 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들은 책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예컨대 엘리엇의 <황무지>가 오늘날과 같은 빼어난 형태가 된 것은 에즈라 파운드라는, 후견자이면서 동시에 편집자를 자임했던 사람의 ‘작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원문을 반 이상 잘라 내어 시에 세련성을 부여한 에즈라 파운드가 없었다면 아마 <황무지>는 범속한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
주방으로 치자면 ‘보조 요리사’다. ‘주방장’은 어디까지나 글을 쓰는 저자이기 때문이다. 편집자는 주방장인 저자가 실력을 발휘하도록 옆에서 재료와 도구를 챙겨 주고, 맛을 보고 평하고, 그의 자신감을 북돋워 맛있는 요리가 나오게 돕는다. 이런 자신의 역할을 망각하고 보조 요리사가 주방장이나 매니저가 되려고 하면 그 요리에서는 탄내가 나게 된다.
원고는 필자가,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제작은 제작처가, 판매는 마케터가 하고 있으니 편집자는 주방 안에서 요리가 진행되는 과정을 확인하여 다음 과정으로 넘기고 서빙이 제대로 되는지 마지막까지 확인해야 한다. 요리를 하는 주방장을 북돋우고, 홀에서 서빙이 잘 이루어지도록 요리를 점검하는 주방의 보조요리사는 매니저가 아닌 서포터다. (
편집자는 전인격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그의 삶은 자신이 편집하는 책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사회 문제에 늘 관심을 기울이고,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를 자신이 먼저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수화와 농인에 관한 책을 만들면서 자신이 농인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 깨닫고 수화를 배우는 편집자도 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인격이 성숙해가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일이 편집 일이다.
결국 나는 그 원고를 끝까지 다 읽기도 전에 무작정 수화 교실에 등록해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다. (중략) 수화를 배운다고 당장 편집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다만 이 책을 읽고 독자가 움직여 주기 바라는 방향대로 내가 먼저 움직이는 것뿐이다. (
책은 또 편집자 혼자만의 노력으로 나올 수 없다. 모든 일이 다른 사람과 연관되어 있다. 저자는 물론 화가, 디자이너, 마케터, 인쇄소, 제본소 등 연관된 사람들과 협조가 잘 이루어질수록 결과물인 책도 좋다. 편집자는 그들의 의견을 모으고, 전달하고, 조율하며, 때로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사가 되기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결국 편집도 사람에 대한 일. 힘든 만큼 보람도 크기에, 많은 편집자들이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이리라.
어떤 일이든 혼자 하는 것보다 여럿이 하는 게 훨씬 힘들기도 하고 훨씬 기쁘기도 한 법이다. 책상머리에 앉아 원고와 씨름하는 것도 편집자의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여러 관계의 그물망을 잘 풀어 가면서 그 책의 목표지점에 잘 도달하게 만드는 것 또한 편집자의 중요한 몫이라는 말이다. (
출판편집자에 대한 오해와 진실
편집자는 사디스트다? 사실 편집자는 토씨 하나 바꿀 때조차 저자와 독자가 저마다 채찍을 들고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피학적 기분에 사로잡힐 때가 많다. 독자의 눈높이를 생각하며 원고를 수정하기 때문이다. 또 알고 보면 편집자는 가학보다는 자학에 더 익숙하다. 원고를 손볼 때는 혹시 놓치고 간 부분은 없는지 자문하며 스스로 닦달하고 좌불안석하고, 책이 나온 뒤에도 오탈자를 보면 죽고 싶어진다. (45∼46쪽)
편집자는 책을 많이 읽는다? 종일 활자와 함께하는 편집자는 때로는 책과 멀어질 필요가 있다. 그러나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면 훌륭한 편집자가 될 수 없다. 책으로 낼 만한 원고인지 판단하고, 독자의 감수성에 맞게 텍스트를 가공하려면 책을 많이 읽어 ‘눈’을 키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또 자신이 만들려는 분야의 다른 책도 두루 읽어 책의 중심 주제에 무지하지 말아야 한다. (48∼49쪽)
편집자는 유식하다? 편집자가 모든 분야를 잘 알 수는 없다. 사실 편집자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보다는 ‘질문하는 힘’이다. 다만 너무 몰라서 질문조차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편집자가 무식할 수는 있어도 세상일에 무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자신이 편집하는 책과 연결되는 세상과 사람의 이야기에 항상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49∼51쪽)
<저자 소개>
기획 진행
지은이들
<목차>
1장 출판편집자는 누구인가
01 인문 분야⎪출판편집자는 어떤 사람인가⎪
2장 새내기 출판편집자의 고군분투 일기
01 어린이·교육 분야⎪초짜 편집자, 삽질을 시작하다⎪
02 인문·종합 분야⎪저자와 더불어 텍스트를 완성한다⎪
3장 다양한 출판편집자의 세계
01 인문·사회과학 분야⎪편집자를 둘러싼 근거 있는 오해들⎪
02 문학·종합 분야⎪편집자는 보조 요리사다⎪
03 문학 분야⎪원고의 ‘힘’을 살린다⎪
04 예술 분야⎪더하기가 아닌 빼기의 편집⎪
05 경제경영·실용 분야⎪하나의 초점을 향해 달려가기⎪
06 어린이·교육 분야⎪독자와 함께 성장하는 즐거움⎪
07 학습 분야⎪수험생보다 더 열심히 공부한다⎪정전희
08 어린이 학습만화 분야⎪나를 철들게 하지 마라!⎪
09 대학출판부⎪‘프로추어’의 감성으로⎪
4장 더 넓은 출판편집자의 세계
01 출판기획자로서의 편집자⎪출판기획자로 살아가는 세 가지 삶⎪이홍
02 출판기획자로서의 편집자⎪훌륭한 편집은 그 자체로 기획이다⎪차익종
03 출판디자이너로서의 편집자⎪편집이 곧 디자인, 디자인이 곧 편집⎪
04 출판사 창업의 길⎪웬만하면 출판사 하지 마라?⎪
05 출판사 창업의 길⎪임프린트, 다이내믹의 표본⎪
5장 출판편집자
01 저자·저작권 관리⎪인연이라는 마법을 찾아서⎪
02 텍스트 가공⎪저자의 목소리를 온전히 전한다⎪
03 제작 관리⎪꽃보다 책⎪
04 홍보·마케팅⎪동영상감독으로 블로거로 카피라이터로⎪
05 편집장⎪책이라도 잘 만들어 그 품에 안기고 싶다⎪
6장 출판편집자 정보 업그레이드
01 출판편집자의 진화⎪‘에디터’에서 ‘에디팅 매니저’로⎪
02 출판편집자에 관한 궁금증 15문 15답⎪출판편집자, 아는 만큼 보인다!
<책 속으로>
“출판사 편집부에서 일합니다.” “아하, 왠지 그럴 것 같았어요.”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헉, 왜요?” 하고 반문해 봤자 “아니, 그냥, 저…… 말씀하시는 거나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하고 얼버무릴 뿐. 짐작건대 “외모는 어딘지 촌스럽고, 말을 할 때 너무 분석적이고, 말꼬투리 붙들고 늘어지잖아요. 한마디로 멋도 없고 좀 피곤한 성격 같네요.” 하는 의미가 아닐까.
(본문 43쪽, ‘편집자를 둘러싼 근거 있는 오해들’ 중에서)
“근데 엄마는 왜 계속 낭떠러지랑 6자랑 9자만 그리는 거야?” 이게 뭔 소린가 싶어 교정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때 나는 옛이야기책 교정을 보고 있었는데, 행마다 일일이 줄바꾸기 부호를 표시하고, 따옴표가 깨져서 여기저기 따옴표를 그려 넣고 있었다. 아이 눈에 줄바꾸기 부호는 낭떠러지로, 따옴표는 6자와 9자로 보였던 거다. 아이를 기르면서 어린이책을 만든 그 시간들이 나에게는 더없는 축복이었다.
(본문 99쪽, ‘독자와 함께 성장하는 즐거움’ 중에서)
학습서 편집자는 중․고등학생 때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한다. 책이 시험에 적중할 만한 내용으로 구성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 책을 만드는 편집자 역시 시험을 앞둔 학생과,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심정으로 공부를 열심히 한다. 그래서 편집자들끼리 농담으로 “학창 시절에 이렇게 공부했으면 S대 갔겠다.”는 이야기도 한다.
(본문 106~107쪽, ‘수험생보다 더 열심히 공부한다’ 중에서)
‘책’에만 묶여 있는 사람은 좋은 기획자가 될 수 없다고 한다. 그 책이 ‘일’이 되어서 제 눈을 멀게 하고 뛰는 가슴을 멈춰 서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눈이 멀지 않고 가슴이 계속 뛰게 하려면, 그래서 놀라운 시적 상상력을 샘솟게 하기 위해서는 역시 우리 삶의 중심에 ‘사람’이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야말로 시적 상상력의 원천이자 대상이기 때문이다.
(본문 138쪽, ‘출판기획자로 살아가는 세 가지 삶’ 중에서)
원고가 도착한다. 편집자는 원고를 몇 개의 부분으로 나누기도 하고, 없던 제목을 달기도 한다. 그러면서 부와 장과 절이 생기고, 제목들 사이에 일정한 위계가 생긴다. 간혹 제목과 본문 사이에, 이후의 고리타분한 내용을 읽을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요약문을 뽑아 넣기도 한다. 이런 작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일은 분명히 편집 행위인데, 문제는 그 편집 행위가 사실상 디자인적 형태까지 결정해 버리게 된다는 사실이다.
(본문 156쪽, ‘편집이 곧 디자인, 디자인이 곧 편집’ 중에서)
책 만드는 일은 처음부터 잘해야 하고 그럴 수 있는 사람만 출판편집자로 살아남는다. 만일 경력이 쌓여 가면서 책 만드는 솜씨가 좋아진다면, 뒤집어 말해 예컨대 1년차 초보 편집자가 만든 책은 10년차 베테랑이 만든 책보다 완성도가 허술하다는 뜻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허술한 책을 읽어야 하는 독자는 어쩌란 말이며, 출판사를 믿고 원고를 맡긴 저자는 또 어쩌란 말인가.
(본문 237쪽, ‘에디터에서 에디팅 매니저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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