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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톡톡

침묵하는 새

by 칠면초 2008. 12. 8.

 

 

기르던 새가 죽었다.

 

하얀 털에 검은 무늬가 박힌 십자매 한 쌍을 1년 동안 베란다에서 키우며

작은 생물을 통해 많은걸 느꼈다.

 

 

 

가장 신기했던 건 해뜨고 해가 지는 걸 사람들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거였다. 

새가 둥지에서 나오면

정말 조금 후에 해가 떠올랐고,

둥지로 들어가면 곧 일몰이 되었다.

새장이 삭막할 것 같아 풀을 심어 넣어주면 순식간에 뜯어먹어 버리는

야성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습게도 그건 작은 몸에 어울리지 않는 카리스마 그 자체였다.

거기다 횃대 위를 두루 날아다니며 어찌나 극성맞던지 새가 슬그머니 두려워 졌다.

귀여운 작은 날개와 부리, 눈알이 무서워 보이며 어이없게도 새의 기세에 눌려

인근 농장에 주려 마음먹고 청소를 시작했다.

 

새장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물로 씻어내니 놀라서  '파드득 파드득' 날아다닌다.

공포에 찬 새들의 행동에 ‘그럼 그렇지, 내가 너희들 주인인데......’

물줄기 하나에도 불안에 떠는 새를 보며 난 승리감 비슷한 걸 느꼈다.

 

십자매는 그렇게 나와의 기 싸움에서 밀리고 나서는 온순해 지는 듯 했다.

나도 전처럼 새장 속에 모이를 주려 손을 넣어도 무섭지 않았다.

십자매에 대한 접수완료!!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새가 알을 낳기 시작하며 온순해진 거였다.

새는 산란시기가 되면 온순해 진다는 말이 생각났다.

 

손톱만한 십자매 알들이 귀엽기도, 신비하기도, 약간 징그럽기도 했다.

10일 정도 걸려 8개의 알을 낳았다.

그런데 이놈들이 시일이 아무리 지나도

부화를 못 시키고 하나씩 던져 깨트리는 게 아닌가.

 

그러고 나서는 다시 알을 낳고는 던지고, 짓밟고, 부리로 쪼고. 갖은 방법으로

자기가 난 알들을 버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 그 이유를 알았다. 십자매 두 마리가 다 암컷이었던 거다.

이놈들이 진즉에 커밍아웃을 했어야 하는 거 아니었나~

어찌되었든 새들이 무정란 알을 낳고 부화를 시키지 못한 것으로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난 과감하게 둥지 속 알들을 모두 치워버렸다.

부화하기 좋도록 어둡게 만들었던 새장도 밝게 해 주었다.

십자매의 착각을 깨우쳐 주기 위함이었는데...

 

며칠 후 새를 보니 한 마리가 기력이 없는 듯 보였다.

그런가 하고 무심히 넘겼다.

 

   

 

오후에 외출하고 들어오며 현관문을 열자 새소리가 전과 달리 어찌나 시끄럽던지

베란다 쪽으로 먼저 가 보았다.

기력이 약해 보이던 새 한 마리가 새장 바닥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고

룸메이트는 둥지위에서 울고 있다. 불과 10-20초 정도일까?

 

그 짧은 시간 동안 내가 보는 앞에서 작은 날개 짓을 멈추는걸 보게 되었다.

두려움, 황당함, 난처함, 슬픔, 각각의 감정들이 스쳐지나갔다.

 

저들을 상대로 기 싸움까지 벌였던 주인을 기다려 죽음을 맞이한 새.

자신의 품었던 알을 잃고 기력을 놓쳐버린 새.

친구 죽음을 알리려고 둥지위로 올라가 울었던 새.

 

굳어버린 작은 새를 꽃삽으로 떠서 아파트 마당에 묻어 주었다.

집에 올라오니 한 마리 새가 지저대는 소리가, 두 마리 있을 때보다 더 요란스럽게 운다.

급기야 새소리가 시끄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더니 이상하게도 근래 들어 조용한 걸 느낄 수 있었다.

움직이는 동작도 크게 줄어들고 있었다.

한 마리 새가 느낄 정도의 고독이 새장 안을 채워갔다.

침묵하는 새. 날개 짓을 잃은 새. 난 죄책감마저 들었다.

저 새는 혼자 지내며 소리를 잃었나, 아니면 주인에 대한 항의 차원인가.

새장 속에서 혼자 지내길 한달.  

 

   

 

 혼자라는 건 누구에게나 무서운 고독감이다.

오래 전 큰 언니가 암으로 생사를 달리 했다.

큰 형부는 살면서 언니를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넋이 나간 듯 보였다.

끔찍이도 부부애가 돈독했던 사람이어서 그랬는지

그 정도가 아주 심했다. 그 후 집안 행사 때 가끔 형부를 보는 정도였는데

표정이 전과 다르게 몹시 우울해 보였다.

 

김포에 있는 언니 산소를 집 정원처럼 꾸미고 드나드는 게 형부 생활의 전부였다.

그렇게 망자에 대한 집착을 보였던 형부.

가끔 중매도 들어왔다고 한다.

하지만 언니에 대한 기억을 지우지 못해 혼자 지내던 형부는

결국 얼마 전 언니 뒤를 따라가고 말았다.

나중에 들으니 남들과 거의 말을 끊고 살아 우울증 치료 까지 받았다고 전한다.

 

'침묵이 금'이라 한다지만 침묵하고 산다는 건 자신을 갉아먹는 일이라 생각된다.

침묵은 너무 많은 생각,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로 북받치는 감정의 특수한 표현 형식일수도 있다.

침묵만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결국 말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게 되는 것이다.   

 

아마 형부도 옆에 누군가가 있어 마음을 열고 살았다면 우울증에 빠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 행복한 삶을 누렸을 수도 있다.

 

내가 어렵게 구해 키우던 십자매 한 쌍도 결국 한쪽을 잃고 나자 그런 부류의

감정 속으로 들어간 건 아닐까?

소리를 내지 않아 정체성을 잃은 새.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그리고 그립다.

힘차게 파득거리던 날갯짓과 시끌벅적해 작은 흥분을 일으키던 새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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