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할머니가 안 보인다.
아파트 앞에 좌판을 펼쳐놓고 하루 종일 해를 안고 있는
할머니.
할머니는 7남매 중 둘을 잃고 다섯을 키우며
고물다라 머리에 이고 또아리 끈을 암팡지게 물어야 했다.
무학이지만 교장선생 아들을 낳고, 나라 지키는 군인을 낳고, 예쁜 딸 셋을 잘도 키워내셨다.
"나 살면서 집안에 재채기 없었지." 그러니 됐다고 하신다.
하지만 왜 바람 잘 날 없었겠는가,
마흔 막바지에 혼자되셔서 5남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는데,
밥 한 술 줄이려고
남의 집에 맡기기도 하고 어린 딸을 서둘러 시집보내기도 하셨는데 말이다.
내 어머니는 마흔에 날 낳으셨다. 엄마는 할머니의 맏딸이었고 난 엄마의 막내딸이었다.
난 외가 식구들 가운데
특히 외할머니 사랑을 듬뿍 받았다.
오랫동안 장수하신 외할머니는 소주 한 잔 따라 드시면
쑥대머리를 불러 어린 나를 펑펑 울게 했다. (뭘 알고 그랬는지..ㅎㅎ)
할머니의 한(당신보다 먼저 맏딸을 보내야 했던)을 담아 애절하게 통곡하듯 불러댔다.
난, 그런 외할머니가 무지 좋았다.
할머니 얼굴의 검버섯조차 손으로 쓰다듬길 좋아했다.
내 나이에 60을 더하면 할머니 나이가 된다.
가끔 돌아가신 할머니 나이를 계산 할 때면
더하기를 하곤 했다.
정말이지 반을 덜어드리고 싶었는데......
아파트 앞 노점 할머니를 보면 내 할머니가 생각난다.
“오늘 왜 안나오셨대요?”
경쟁자지만 가장 친한 벗이라는 옆 할머니가
“할아버지 제사라우. 며느리가 와서 모셔갔어.”
제사에 가면 할아버지가 원망스러워 발길을 끊었다는 할머니.
올핸 드디어 교장선생님 아들집을 가셨구나.
“할머니 오실 동안 나물이랑 콩밥은 안 먹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