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대표적 소설가, 시인, 연구자 등 25명이 자신이 만나고 싶은 작가 혹은 소설 속 인물 등 ‘문학의 전설’들과 나눈 가상 인터뷰가 수록된 '문학의 전설과 마주하다'는 이색적인 책이다.
평소 좋아하고 존경했던 선배 작가들과 가상 대화를 나누는 동시대 작가들을 통해 거장들의 작품 세계와 시대를 가로지르며 이어지는 문학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가상 인터뷰라는 형식을 통하는 만큼 필자들은 기존의 연구에서는 볼 수 없던 작가의 사생활과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의 이면에 대해서도 상상력을 펼핀다..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 시인 이상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던 김승희 시인은 이상의 텍스트에서 초기자본주의 시대의 착취 구조에 대한 비판을 읽어낸다.
“<지주회사>나 <날개> 같은 작품을 보면 근대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더 나아가 식민지 근대성에 대한 비판, 강도 높은 탈식민주의에 대한 냉소주의를 읽을 수 있다”고 김승희 시인이 말하자 이상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우리는 모두 다 어쩔 수 없이 人거미들이고 지배 문화도 거미이고 제국주의도 거미이고 性도 거미이고….”
이 밖에도 소설가 복거일은 <1984>를 통해 전체주의 사회를 풍자한 조지 오웰을 만나 전체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지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평론가 김명인씨는 김수영 시인을, 평론가 김윤식씨는 임화를 만나 오늘의 우리 사회 현실과 문학에 대한 답을 듣기도 한다. 이렇듯 책은 가상 대화를 통해 잘 몰랐던 작가들의 면모와 인생에 대해 알 수 있다.
소설가 정찬씨와의 인터뷰에서 카프카는 두 번 약혼하고 두 번 다 파혼했던 여인 펠리체와의 관계를 이야기하며 “나는 숙명적으로 타인을 나의 공간 속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기주의자”라고 말한다.
<모비딕>의 주인공 에이헤브와 장영희 교수가 나눈 가상 대화는 읽는 동안 가슴을 설레게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사방에 거울만 달린 미로처럼 잔혹한 혼돈이요 감옥이고, 그 감옥의 벽을 허무는 것이 내 삶과 사랑, 열정을 바친 꿈이었는데, 어쩌면 그것은 나를 창조한 멜빌의 꿈이었는지도 모릅니다.”(에이헤브 선장)
대학교 2학년 때 처음 ‘모비딕’을 읽고, 이에 대한 박사 논문을 썼다는 장 교수는 ‘에이헤브’에게 “왜 그토록 필사적으로 흰 고래를 쫓았는지 말해달라”며 작품의 주제를 묻는다. 이에 대해 ‘에이헤브’, 정확히 말하면 ‘장영희가 해석한 에이헤브’는 “그것은 나의 인간적인 도전이다. 나는 신에 대해 분노한다. 그 기막힌 불공평함에 대해서”라고 답한다.
가상 인터뷰에는 운명과 환경에 대항하는 장 교수의 생각이 녹아들어있다. 고인이 된 장영희 교수는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으로 박사논문을 썼고 해마다 빼놓지 않고 <모비딕>에 대해 강의할 정도로 <모비딕>에 깊은 애정이 있었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이 책을 읽는 시간동안 나는 25명의 명인들을 만나는 행복을 만끽했다. 또한 책은 각자의 문학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모습 그대로 현실 세계로 독자를 불러내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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