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쪽이 넘는 책을 받아드는 순간 “이걸 언제 다 읽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요즈음 화두는 ‘통섭(큰 줄기를 잡다)’이라는 시대개념에 맞게 일목요연한 정리로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책에서도 말하지만 지금 세계는 섞임, 혼합, 융합, 퓨전이 대세다. 학문과 지식의 통일 또는 통합적 지식을 지향하는 통섭이 유행이다. 그러다보니 통섭을 논하는 사람도, 책도 부쩍 늘었다.
이 책 ‘통섭의 기술’은 그런 면에서 보자면 시중에 나온 통섭론을 말하는 책과는 조금 다르다. ‘지식시대에서 지성시대로’라고 붙은 부제는 이러한 글쓴이의 집필 의도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지은이는 진정한 통섭은 ‘지식의 통섭’이 아닌 ‘지성의 통섭’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존에 이뤄지고 있는 ‘지식의 통섭’은 학문으로 축적된 지식들의 재조합일 뿐,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주지 못한다고 본다.
더구나 지식의 통섭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그런 분별적인 근대의 눈에 익숙한 서양의 입장에서 볼 때 지식의 통섭은 획기적인 것이지만, 사실 동양에는 그보다 뛰어난 통섭의 사상들이 있었다는 통찰이다. 그러면서 마고의 삼신사상과 천부사상, 생태적 사유 등을 실례로 든다.
주관과 객관이 하나가되는 시점 그것을 통섭이라고 한다는 정의가 마음에 와 닿았다. 가끔 주관적 생각과 객관적 사고가 달라 갈등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에 이 책은 첫장부터 흥미를 던져주었다.
거기다 그동안 우리가 흔히 말하던 '설명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은 이분법적 견해라고 비판한다. 데카르트의 '생각하는 존재'가 나의 생각을 존재와 동일시하듯이 분리의식으로 통섭을 논하고자 한다면, 통섭은 그야말로 다학문적 유희에 지나지 않게 된다는 비판은 신랄하기까지 하다.
이제 ‘통섭’은 학계는 물론 일반인도 자연스럽게 쓰는 말이 되었다. 처음엔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경계를 넘나든다’는 뜻에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소통하자’는 뜻으로 곧잘 쓰인다.
그러기에 통섭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기에 이 책은 독자들로부터 깊은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또 책장 뒤편 주석을 통해 경제용어를 설명한 것은 독자를 따뜻한 마음으로 통섭하기위한 저자의 마음이라 생각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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