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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삼매경

[서평]나는 날고 싶다

by 칠면초 2010. 4. 5.

시대와 연령의 다르지만 내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제목에 눈길이 꽂힌다. ‘나는 날고 싶다’ 무척이나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요즘 내 심정을 말하라면 단연코 이 한마디로 대변될 것만 같은 이 책은 1980년대 대한민국 청량리를 배경으로 열여섯 살 꼬마 구두닦이 종수가 묵묵히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가는 과정을 담아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고모 집에 살게 된 종수는 눈칫밥을 견디다 못해 가출을 감행한다. 가출하여 청량리 역 근처를 서성이던 종수는 구두닦이 형들의 눈에 띄어 그들과 함께 손님의 구두를 수집하는 ‘찍쇠’ 일을 하게 된다.

 

그러던 와중에 혜련이 누나를 만나고, 형들과 혜련이 누나와 함께하는 집창촌 생활을 함께 꾸려가게 된다. 그들과 함께 하는 삶으로 인해 종수는 용기와 사랑을 깨닫게 되고,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로부터 버림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는 성장기 치료소설이다.

 

그런데 왜 이 소설이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일까. 난 청량리 588근처는 가보지도 안았고 더구나 암울한 청소년들의 은어도 익숙하지 않은데 말이다.

 

배경은 다르지만 가족이나 친척 한 명 없이 홀로 세상에 남겨져 살아가야 하는 종수의 삶이 내 마음에 울림으로 다가왔기에 그랬나보다. 어쩌면 80년대 종수와 같은 심정은 입시 위주의 교육과 무한 경쟁의 시대를 홀려 견뎌내야 하는 이 시대 청소년들의 모습이 아닐까?

 

하지만 책은 그늘진 세상을 어둡게만 표현하지 않았다. ‘누나는 음식 만드는 솜씨도 아주 좋았다. 밥에다 참기름을 넣고 깨소금, 소금을 넣어 밥을 비벼 김밥을 싸는데, 그 안에는 미리 준비한 단무지, 시금치, 달걀, 당근 따위를 넣어 말았다(113P)’ 마치 요리책을 보는듯한 설명은 책을 읽으며 마음을 편하게 한다.

 

어두운 인생을 살아가는 청년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따뜻하다. 그들과 어우러진 주인공 종수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고기가 물속에 살지만 그 몸이 모두 젖어버리지 않는 것처럼… 어둠 속에서 살지만 자지주체를 잃지 않는 종수를 볼 수 있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아마도 작지만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발한다는 생각이다.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모습은 요즘의 청소년들에게 가장 바라는 바다.

 

모든 소설이 그렇듯이, 아니 우리네 삶이 그렇듯이 편안하고 행복하지만 않다. 혜련의 자살은 종수의 성장으로 이어진다. 급속히 번진 자살이라는 풍토가 왜지 석연찮은 기분이지만 동기를 부여한 죽음. 그곳에서 늠름한 청년의 종수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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