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동안 글을 한 줄도 쓰지 못했다. 문자로 오는 마감독촉도 지면을 채워야 하는 업무도 뒷전이었다. 여자의 선택이 아닌 엄마의 선택은 과연 옳았을까?
막내가 여자를 데려왔다. 한 번도 웃지 않았고 내가 묻는 가벼운 질문에도 머뭇거리며 아들만 쳐다보았다. 게다가 한 번도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10 Page)
아들이 집에 데리고 온 여자를 반대한 엄마와 그 아들의 갈등, 그리고 생각의 차이를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아들의 여자를 만난 엄마를 그린 ‘엄마의 선택’은 내게 낯설지 않았다. 엄마의 모습에서 아들의 여자에서 엄마의 시어머니에서 나는 내 모습을 그려낼 수 있었기에 말이다.
‘엄마의 선택’ 주인공 혜민은 만삭의 몸으로 자살을 기도했던 어머니의 질긴 탯줄을 잡고 태어난다. 전생의 원수를 만난 듯 독하고 질기게 며느리를 미워하여 결국 며느리에게 죽음을 결행하게끔 만든 할머니, 깊은 배움과 넉넉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운명이라는 굴레를 벗겨내지 못하고 자식달린 아버지와 처녀의 몸으로 결혼한 새어머니, 유부남과의 첫사랑에서 실패 후 인생의 모진 회오리에 찢기고 쓸린 채 살아가는 고모의 삶을 지켜보면서 여자의 삶과 인생, 그리고 행복의 본질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과 사색을 통해 불행한 삶의 패턴을 끊어내고 자신만의 행복한 삶을 새롭게 재구성해낸다.
아들의 여자를 어제저녁 만났다. 나풀거리는 치마와 잘게 웃는 눈가 웃음이 조금 거슬렸지만 밝은 표정이 마음에 들었다. 나도 긴장을 하는데 저 아인 얼마나 마음을 졸이고 음식을 먹을까. 아들의 여자는 경쟁상대가 아닌 동반자라는 생각을 했다.
‘엄마의 선택’은 그런 엄마의 감정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아들이 여자를 데리고 왔지만 엄마가 상상해 오던 모습이 아니었다. 엄마는 아들의 여자를 둘러싼 그 우울하고 침울한 느낌에서 내 아들의 인생에 먹구름을 드리울 거라는 아찔한 예감을 한다. 엄마는 즉답을 피한다. 아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여자를 반기지 않는 엄마의 행동에 소통을 단절 시킨 채 급기야 집을 나가버린다. 과연 작가가 말하는 엄마의 선택은 무엇일까?
아들, 사실은 네가 여행을 가고 그 오피스텔로 엄마가 찾아갔다. 그 아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놀라지도 않고 다소곳하게 차를 내오더구나. 네가 집을 나간 것도 그 아인 모르고 있더구나. 아마 그 아이 걱정할 까봐 아무 말 하지 않은 것 같아 나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아이가 먹을 만한 반찬을 좀 해가지고 갔다. (291 Page)
‘먹을 만한 반찬…’ 이 부분에서 한참을 책을 읽을 수 없었다. 밥을 먹으며 죽어있음을 깨닫는다는 박경리 선생의 시구가 떠올랐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저자는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간의 갈등과 대립을 엄마와 아들의 입장을 통해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세대 간의 대립과 화해를 묘사했다. 최선의 예의와 애정을 통해 진정으로 원하는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을 긴박감 넘치면서도 섬세한 감각으로 그려내고 있다.
엄마가 아끼던 주목이 담긴 화분을 선물로 가져갔다. 그걸 받으면서 그 아이가 죄송하다고 하더구나. 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고개를 숙이는데 발등으로 눈물이 떨어지더구나. (291 Page)
엄마가 자신의 여자를 반대한다는 생각에 깊은 상처를 입은 아들과 그 여자를 반대할 수밖에 없는 엄마의 입장 차이를 솔직하게 전하는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될 내 아들의 여자가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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