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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톡톡

깊고 어두운 치매

by 칠면초 2008. 12. 10.

신문에서 90세 노인이 아내를 숨지게 하고 본인도 자살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할머니는 오랫동안 치매를 앓고 있었다고 한다.

요즘 들어 노인 자살률이 급속히 높아지다 보니 이와 비슷한 기사가 종종 눈에 뜨인다.

 

자식들에게 짐 되기 싫다하여 자살하는 일은 외국에서는 보기 힘든 한국적인 현상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예전 우리는, 오래 사는 것을 무조건 좋아했다.

“장수하세요.”가 가장 좋은 덕담 중 하나였으니.... 그러나 대책 없는 장수는 사회적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는 현실이다.

지난해 국제통화기금도 ‘한국은 빠른 고령화로 30년 안에 재정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아직도 이렇다 할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며칠 전 일이다.

집 앞 약국에 상비약을 사러갔다. 약을 사러 가면 가끔 세상사는 이야기도 들려주곤 하던 약사가

표정이 어둡다. 의자엔 처음 보는 할머니가 앉아 답답하다며 한숨을 쉬며 말을 잇고 있었다.


“어여, 이 쓰레기봉투를 물러줘”

그게 무슨 말인가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5리터들이 작은 쓰레기봉투 한 묶음을 쥐고 있었다. 약사는 왜 자꾸 그러시냐며 우리 약국에서는 이런 봉투를 팔지 않는다고 말한다. 혹시 길 건너편 마트에서 사지 않았냐고 기억을 더듬어 주기까지 한다.

 

“아니요, 분명히 여기에서 샀소. 늙은 내가 거짓말 할까”
할머니는 여기에 들어와서 봉투를 샀다고 한다.
약국 근처에는 마트가 두 곳이 있는데 거기에서 봉투를 판다. 나도 그곳이 아닐까 생각을 하는데, 친절한 약사 역시 난감한 표정을 감출 수 없어 하는 표정이다.

 

할머니의 옷매무새는 단정하다. 곱게 늙으신 표정이다. 말과 행동도 확신에 차 있고 당신은 절대로 실수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할머니와 약사 사이엔 ‘여기서 샀다.’ ‘안 팔았다.’는 말이 수없이 오갔다. 10분 이상 실랑이가 이어졌다. 급기야 할머니는 비상 책을 펼치듯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 아들은 전혀 빈틈이 없는 사람이여. 그런데 내가 쓸데없이 필요 없는 쓰레기봉투를 사왔다고 지금 난리여~~.” 할머니는 아들과 함께 사는데 아들은 남한테 싫은 소리 안하고, 싫은 소리 듣지도 않는 성격인데, 이 많은 쓰레기봉투가 필요 없으니 물러오라고 했단다.

 

전후 사정이 짐작이 갔다. “약사님 봉투 제가 살게요. 할머니에게 돈을 돌려 드리세요.” 흔히 노인들은 착각을 일으킬 수 있고 아들한테 구박받을 일을 생각하여 봉투를 사주었다.
할머니는 그것 보라는 표정으로 고맙다면서 일어섰다. 결코 기분 나쁜 일은 아니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이틀 후였다. 아파트로 들어오다 그 할머니가 길가에 앉아 있는 걸 봤다. 한 번의 안면과 궁금증으로 차에서 내려 다가갔다.

 

“내가 분명히 이 문으로 나왔는데 아무리 돌아서 가도 집이 아니여~~.” 얼굴은 온통 땀으로 비 오듯 한다.

‘아...치매, 치매구나.’ 초여름 햇살만큼 뜨거운 것이 목젖을 울린다. 나는 할머니 손을 잡았다. 예전 90수를 누리셨던 내 할머니도 마지막 돌아가시기 전 아무도 알아보지를 못하셨다. “할머니, 아들 이름이 뭐예요?”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아들이라는 걸 기억해 물었다.


“수복이 김수복이여. 지 할아버지가 장수하라고 그렇게 지어줬어”

음료수 하나를 사서 할머니 손에 들려드리고 관리실로 뛰어갔다. 그런데 그런 입주자는 없다고 한다. 우리 아파트 사시는 할머니는 아니라던 주변 사람들 말이 맞았다.

조금 떨어진 다른 아파트로 갔다. 입주자 이름은 말해줄 수 없다는 관리소 소장을 설득해 할머니를 모시고 가니 집 앞에서 “그래 여기여...우리 아들이 여그 교회를 다녀. 교회표시 보니 맞는구먼.” 그제야 땀으로 젖은 할머니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흐른다.


기막힌 건 할머니가 열쇠를 꺼내는데 그곳에 아파트 동호수와 이름이 쓰여 있는 게 아닌가. 이름 박00, 22년생 83세였다.

“새댁,(할머니는 내가 새댁으로 보였나보다) 소란을 피워서 미안혀.”
“할머니 괜찮아요. 어서 들어가세요.”
아무도 없는 집에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누구에게도 올 수 있는 까만 길. 치매. 그 길을 가는 할머니. 계단을 내려오며 자신이 한 일을 모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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