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루의 나무는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와 같다. 실외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물론 실내에서 지내는 사람들도 하루에 한 번 정도는 나무와 만난다. 그런데 나무가 가지고 있는 역사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은 드물다.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사과나무숲’은 현재에 존재하는 수많은 시선들이 숲길을 걸어가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마치 독백처럼 나무에 관한 시선을 풀어 놓는다. 책은 손에 들면 몇 번을 읽게 하는 힘이 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과 사물,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에 관해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닐까.
날마다 아파트 뒤편 숲길을 산책하는 할아버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할아버지는 말없이 걷는다. 그리고 어느 날 아무도 모르게 숲에 사과나무를 심었다.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사과나무숲’은 그런 할아버지를 지켜보며, 동물, 자연, 사물, 곤충, 감정, 신호등, 무당벌레, 나무 잎사귀 등 생물과 무생물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나는 숲길입니다. 그렇다고 산길은 아닙니다. 오래된 아파트 뒤, 조그만 숲길입니다. 사람들이 자연이라고 부르듯, 스스로 그냥 있는 그런 숲입니다. 할아버지를 만난 건, 아니 그를 눈여겨보게 된 건, 바람이 몹시 불던 날, 그의 모자가 날아가 버렸습니다. 보통 허둥대며 모자를 잡으러 달려갔을 터인데, 그는 가만히 모자가 굴러가는 걸 그냥 구경하지 뭡니까. 마치 집 나간 모자가 다시 돌아올 거라는 약속이라도 한 듯 말이죠.(숲길 中)
사람들이 숲을 위안의 대상으로 삼는 이유는 단순히 그곳에 늘 변함없이 서 있기 때문이 아니다. 나무는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변하는 것을 변함없이 하는 존재라서 상대방에게 위안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언제든 숲속 나무를 만나면 마음이 편안하다. 만약 나무가 변하지 않고 그냥 서 있기만 한다면 결코 사람들에게 위안을 줄 수 없을 것이다. 나무처럼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자만이 누군가에게 치유의 대상일 수 있다.
지은이 영화감독 여균동은 이 책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사과나무숲’이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 ‘천일의 유리’를 읽으면서 머릿속에서 맴돌던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만든 책이라고 밝혔다.
“이야기는 시간처럼 한 줄로 가는 것 같지만, 사실 그 속에는 수만 가지 헤아릴 수 없는 시선들이 스쳐간다. 나를 중으로 세상이 돌아가는 것 같지만 세상은 수많은 사람들의 중심들이 마구 뒤엉켜 만들어 진다”고 말한다.
돌아보면, 세상은 내가 아닌 내 주변이 주연 아닐까. 얇지만 생각은 대하소설만큼 많이 만들어내는 책 한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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