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날 때 들고 나온 손가방 밑창 아래
누런 갱지에 정성껏 싼 만 원짜리 열 장
어머니
당신은 그 갱지에 서툰 글씨로
밤새껏 저에게 편지를 쓰셨습니다
제발 술 많이 먹지 말고
모든 사람을 꼭같은 마음으로 대하고
무슨 일이든 앞장서 나서지 말고
남들처럼 자동차 면허증이나 하나 따라고
마지막으로 내 나이 일흔셋이니
얼마 남지 않은 명줄
남에게 폐 안되게 선종하도록 기도하라고
볼펜 꼭꼭 눌러 아프게 쓰셨습니다
말씀대로 성냥불 그어 편지를 태우면서
사십 나이에 울컥 눈물이 솟았습니다
폐병쟁이 저에게 개소주를 들고 오셨던 시골길10리
그 뜨거운 삼복 태양 아래 돌아서서 우시던 어머니
제가 이른 새벽 쇠고랑 차고 경찰서 끌려갔던
70년대 말 어느 해 가을 추석
어머니는 주저 앉아 온종일 가슴을 치셨습니다
어머니
오늘은 장대비가 죽죽 쏟아지고
섬은 온통 해무에 덮여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날입니다
궁상이 흐를 만큼 안 잡숫고 안 입으신 돈 십만 원
분부대로 요긴하게 쓰여질 때 기다리며
책상 속 깊이 조심스레 감춰두었습니다
신부님의 젊은 시절이 떠올라 시를 읽는 내내 울컥했다. 면허증이나 따라고 당부하셨던 모친의 말...
우리들이 자식에게 바라는건 너무도 평범하고 대중적인 걸 원하나보다...
내 아들이 내가 바라는 이상의 꿈을 안고 살아가느것도 모르면서 말이다.
현재 호인수 신부님은 한겨례신문에 칼럽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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