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앉는다. 그리고 내 건너편에 등을 돌리고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본다. 오늘도 청색 재킷을 입었다. 추워 보인다. 그는 가끔 통화중이다. 그래서 목소리도 익숙하다.
내가 전철에서 내릴 준비를 하려고 일어설 때 그도 움직인다. 나는 내렸다. 승강기를 타는데 전화가 왔다. 익숙한 목소리다. 전화를 받으며 걸었다.
무빙워크 옆으로 걷는다. 내 곁에, 또는 내 앞에 가는 이들이 뒤돌아본다. 사람들은 제각각이다. 그래서 쉽게 관심도 갖지만 금세 잊어버린다.
조금만 가면 만들어진 오솔길이 있다. 아니 그곳은 들어가지 못하지만 마음은 이미 오솔길로 접어든다.
오솔길 끝까지 걸어갔다. 다음엔 벵갈고무나무 숲이 계절을 잊고 있다. 에스키모와 벵갈고무나무가 공존하는 곳,
이곳에 나는 서있다.
갑자기 조그만 분수 물줄기가 꽃과 잎을 적신다. 나무의 인생을 위해 크게 한 몫을 하느라 제 업무를 수행하는 분수.
나도 제자리에서 내가 걸어온 길을 바라본다.
피부는 조금씩 탄력을 잃고, 욕망도 천천히 부피를 줄였지만 말씨는 부드러워졌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 역시 한결 넉넉해졌다.
모두 시간의 무게가 만들어놓은 내 모습이다.
현재는 소리 없이 조용조용 다가온 이 작은 숲이 내 앞에서 아름답기를 소망할 뿐.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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