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야기톡톡

채송화 씨앗

by 칠면초 2018. 6. 24.




        

채송화 씨앗을 뿌린 날,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아들이 보내온 답신이었다. 아들은 nrotc 안내서와 지원하겠다는 내용의 글을 보냈다. 3년 학비 면제 후 5~7년 동안 해군 장교로 근무해야 한다는 내용을 상세히 적었다.

 

아이와 통화도 했지만 나는 참으로 많은 고민을 했다. 아들은 문과성향이 강하고 제도권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수능 끝나고 아르바이트를 잠시 할 때도 페스트푸드점과 같이 제복을 입고 일하는 곳에서는 안했었다. 그런 아들이 7년간 군생활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답장을 보류하고 며칠을 보내던 중, 꽃집에서 채송화 씨앗을 보았다. 화단에서 가장 앞자리에 자리하는 채송화. 바늘만한 잎으로 늦여름 더위를 고스란히 안은채 꽃을 피우는 채송화.


          


아들의 할머니, 즉 내 엄마는 그렇게 키작은 채송화였다. 대쪽 같은 아버지와 자기주장이 강하기만 했던 6남매 그늘에서 평생을 키 낮추고 살다 가신 분. 하지만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지셧을땐 선뜻 행상 보따리를 이고 나가기까지 하셨던 강인한 엄마. 우리를 공부 시키는 것만이 참으로 당신이 지켜야할 자존심이라 생각하셨던 엄마.

 

조그만 종이컵 30개에 사온 채송화 씨앗을 모두 뿌렸다. 씨앗이 너무 작아 손에 잘 잡히지도 않았지만 흐려진 시야가 그것을 더 방해했다.

 

자식을 통해 다시금 그리워지는 내 엄마. 내 엄마를 통해 생각나는 내 아들. 아마 아들은 힘든 시기에 제 대학 등록금 만이래도 부담주지 않으려 그런 선택을 하겠다고 했나보다. 힘들 때 자식을 위해 내 엄마는 행상도 주저 않고 하셨는데, 나는 아들에게 무엇을 했던가. 새삼 아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눈시울 적시며 뿌린 채송화 씨앗이 싹을 티울 때 즈음이면, 난 그 작은 씨앗 속에서 초록의 싹이 나오는 아픔을 생각하며 다시 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씨앗은 싹을 내보내야 하고 난 아들을 홀로 세워야 한다.

 

겨울 답장을 쓸 수 있었다.

아들, 채송화 씨앗을 뿌렸는데, 싹이 나오기까지 엄마가 신경 써야 할 것 같다. 싹이 나오면 그때 네가 해를 바라보고 자라줬으면 좋겠구나


'이야기톡톡'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지독한 오미크론  (0) 2022.04.30
떠나는 곳에 머물며  (0) 2019.11.14
내 마음은 무엇으로  (0) 2018.06.24
부겐베리아 추억  (0) 2017.08.27
'개판 오분전' 알고보니....  (0) 2016.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