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3 http://cafe.daum.net/liveinbook/Rst/2133
이 책은 작가가 살아오면서 접했던 할머니들의 말씀들입니다. 우리 삶에 있어서 잊기 쉬운 것과 알고 있지만 좀처럼 지키기 어려운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금의 사회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말이지 할머니의 말씀들이 필요한 세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사회는 더 이상 어른도 없고, 왜 사는지도, 돈만이 최고의 가치인 양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주 쉬운 말들로, 혹은 표현들로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저자는 아련한 할머니의 말씀을 떠올리며 말합니다. 할머니의 입을 빌어 쓴 이 글을 읽고 이 사회의 모든 이들이 더 나은 삶이되기를, 또한 간단한 이런 일들만 살아가면서 지켜진다면 훨씬 좋은 사회가 될 것임을 저자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옛날이야기 우리에겐 옛 말이나 옛 표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그런 표현들이 사라졌고, 남아 있다고 한들 그 뜻을 몰라 외계어 쯤으로 여기며 영어 등 외국어 공부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할머니가 그리운가 봅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촘촘하기만 한 공간에서 잠시 우리네 옛 말 -정말 옛 말이 되어버린- 이나 표현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뭔가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또 이대로 앞만 보고 달려가야만 하는지,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참으로 궁금하기만 합니다. ‘어처구니’ 여름이면 콩국수, 명절이면 녹두부침개를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요즈음도 콩국수를 먹지만 제 맛을 내려면 그래도 맷돌로 갈아야 합니다. 이제는 민속박물관에 가야 맷돌을 볼 수 있는데 예전에는 어느 집에나 있었던 필수품이었습니다. 맷돌은 곡식을 갈거나 잘게 부수는 도구인데, 같은 크기의 둥그런 돌 두개를 포개, 윗돌에는 홈을 만들어 그곳에 나무로 된 손잡이를 붙여서 돌리기 쉽게 만들었지요. 바로 이 손잡이가 ‘어처구니’입니다. 만일 맷돌을 사용하려고 하는데 이 어처구니가 없다면 어찌 곡식을 갈 수 있을까요? 손잡이 될 나무를 구하러 뒷산에 오르는 수고라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어처구니가 없다.’고 하면 뭔가 준비가 안 되어 있거나 어이가 없을 때, 또는 황당한 상황에서 사용하는 말이 되었지요. -본문 중에서- 장애(障碍)에 대하여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토론하며 설명 해왔던 조금 어려운 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장애’라는 말을 사용할 때 꼭 기억해야 되는 것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잊고 살고, 그나마 기억한다고 해도 실감을 하지 못합니다. 왜 이리 된 것인지는 다음에 체계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고, 우선 이 용어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살펴보겠습니다. ‘장애 = 무능’이라는 등식을 깨버리는 것이 우선이고, 그러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선 ‘장애’라고 할 때 개별적인 입장에서 살펴보면, 어디서부터 장애이고 어디서부터 장애가 아닌가를 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능지수를 예로 들어보기로 하지요. 지능지수가 140이상이면 천재라고 하고 70을 경계선급(장애 3등급 정신지체)이라고 합니다. 지능지수 40아래는 중증의 정신지체로 보아 보호자가 항상 함께 있어야 하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장애와 그렇지 않음을 나누는 기준을 70이라고 하는데 69.99와 70.01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게다가 측정도구도 우리가 편리하다고 하여 만들었는데, 그 도구의 정확성 문제는 얼마나 고려한 것일까요? 두 번째 예로 절단 장애를 생각해보지요. 손끝이 조금 잘려나간 경우부터 견관절(어깨)이 잘려진 사람까지 다양하기만 한 것이 현실입니다. ‘장애인복지법’에 그렇게 되어 있으니 그냥 그렇다고 할 것입니까? 장애의 정의를 이야기 할 때, 사회적인 기능을 이야기 하면서 우린 장애를 구별하려고도 합니다. 좌변기가 없던 시절, 엄청난 장애를 느끼던 사람이 좌변기를 사용하면서 적어도 화장실 부분에 있어서 장애를 느끼지 못합니다. 때문에 기능에 맞는 현실적인 보조도구로써 사회적 기능을 회복한다면, 사회적 기능의 수준이 장애를 구별하는 기준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장애’라는 것은 그 경우가 0에서부터 무한대까지의 구분이 가능한데, 섣불리 어디에 선을 그어 구별을 할 수 있겠습니까! 어려운 이야기인데 모쪼록 포기하지 마시고 생각해 보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최선의 대책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건강하다고 여기고 또 그로 인하여 행복한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본문 중에서- 체육시간 중․고등학교 때에도 그랬으나 대학에 와서도 체육시간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2학점짜리 교양필수 과목으로 두 학기가 있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체육시간에 대하여 그리 유쾌한 기억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실에 남아서 다른 공부를 하거나 체육시간에 참석하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진 체육에 대한 성취도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평가받아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일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항상 점수도 70점 안팎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대학에 와서 수강신청을 한 후 첫 체육시간에 운동장에 나갔습니다.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운동장이 왜 그리도 넓은 지 오랜 시간을 걸어 다른 학생들과 같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체육을 가르쳤던 교수님이 나에게 다음 시간부터는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나는 그 말에 대하여 묘한 반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평가라는 것은 얼마나 발전했나를 보아야 하는 것으로, 학기가 시작할 무렵과 끝날 때를 비교하여야 합당한 점수가 나올 것이란 생각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다음 체육시간에도 참석할 것이며, 이것은 수업이니 지금 나의 체력을 테스트 해보고 학기말 시험으로 또 다시 테스트를 해서 그 차이를 점수로 줄 수 있겠냐고 말입니다. 한동안 멍하게 나를 쳐다보던 그 교수님은 나에게 뭘 할 수 있는지 물었고 나는 턱걸이와 달리기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테스트를 받았는데, 턱걸이는 하나도 하지 못했고 달리기(열심히 걷기?)는 100m를 4분 57초에 끊었습니다. 그 후 친구들이 당구를 치러 가거나 술을 마시러 갈 때에도 나는 운동장에서 열심으로 걷는 연습을 해서 속도를 높이려고 애썼고, 오랜 시간을 철봉에 매달려 지내야 했습니다. 학기말에 난 100m를 2분 30초에 끊을 수 있었고, 턱걸이는 네 개를 하였습니다. 물론 체육성적은 두 학기 모두 A+가 나왔습니다. 병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나는 턱걸이가 얼마나 힘든 운동인지 몰랐습니다. 걷는 것이 수월하지 않았던 나는 100m 달리기를 20여 초에 뛴다는 것이 얼마나 빠른 속도인지 정말로 알지 못했습니다. 처음엔 팔이 퉁퉁 부어서 움직일 수도 없었으며, 걷는 연습을 할 때에는 속도만 생각하다가 보조기에 살이 무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종종 피가 흘러내리기도 하였습니다. 그제야 나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았다고 여겼습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평가할 때에도 이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한 순간에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고 콩쿠르에서 그랑프리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보상입니다. -본문 중에서- 스승 요즈음은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아야 한다.’든가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을 들어보기 참 힘듭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바뀐다 해도 역시 스승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위대한 선생님은 항상 존재해 왔습니다. 또 그러한 스승의 노력으로 인하여 지금의 세상이 존재하고 있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초등학교 때였습니다. 당시 나는 화장실도 못 갈 정도로 불편하였습니다. 그래서 소변도 못 보고 참곤 하였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어느 날 나는 소변을 참지 못해 교실에 앉은 채로 볼 일을 보고 말았습니다. 그날따라 나의 어머니는 늦게 오셨습니다. 수업이 끝나서 청소를 해야 했습니다. 당시엔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당번을 정해 청소를 하였는데, 책상을 교실 뒤편으로 쭉 밀어내고 교실 앞쪽을 쓸고 다시 책상을 앞쪽으로 밀고 쓸어 내는 방식이었습니다. 내가 자리에 앉아서 꼼짝을 하지 않자 아이들이 청소를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담임선생님은 나를 안아서 교실 앞쪽에 있는 선생님의 자리에 옮겨 앉혀 주었습니다. 그러자 내 의자는 젖어 있었고 아이들이 수군거리자 선생님은 ‘수업하느라 고생을 하였나 보다. 그래서 땀을 많이 흘렸나 보다.’라고 큰소리로 말하였습니다. 선생님은 물론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지도 많이 젖어 있었고 바닥도 젖어 있었는데 흰색 레이스로 장식된 선생님의 방석에 그대로 옮겨 앉혀 주었습니다. 나는 그 때의 일에 대하여 지금 처음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중학교 때였습니다. 소풍을 가게 되었는데 관악산이었습니다. 어릴 적 꿈같이 기다리던 소풍은 나에겐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가자고 하였고 결국 가게 되었습니다. 관악산에 오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업고 산을 넘고 골짜기를 넘을 계획이었습니다. 어머니라 하더라도 힘이 들었을 테고 지쳐서 힘들게 가고 있었는데, 그 때 선생님이 어머니에게 업힌 나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내어 주었고 선생님은 나를 업고 관악산 초입에서부터 명주암 넘어 큰 바위가 나타날 때까지 쉬지 않고 걸었습니다. 물론 가을의 선선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몸에선 땀이 비 오듯 흘러 내렸습니다. 점심시간에 선생님은 나에게 ‘너무 가벼워서 힘이 들지 않았다. 많이 먹고 건강해져서 선생님이 힘들었으면 좋겠다.’며 웃으셨습니다. 물론 내려올 때도 그 선생님의 등에 업힌 채였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선생님이 있습니까? 여러분도 여러분의 후배들이나 다음 세대에게 기억될 스승으로 남아 한 사람의 일생에 중요한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은 그 당시의 선생님들이 많이 보고 싶습니다. 고마웠습니다. 고맙습니다. 나의 선생님. -본문 중에서- 추천사 여러분, 기억이 나실런지요? 어르신들이 여름밤 겨울밤에 삶의 무료함과 시름을 달래듯이 들려주시던 옛 이야기를. “옛날 옛날 한 옛날에….”하고 시작되는 수많은 옛 이야기들을 말입니다. 이런 ‘살아있는 동화책’이 들려준 옛 이야기가 우리들의 삶에 미친 영향과 그 가치는 실로 대단하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옛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은 우리의 삶의 뿌리요 주춧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옛 이야기들은 바로 우리 조상들의 삶의 지혜의 모음이며 그 꿈의 모태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떻습니까? 이야기의 전통과 맥은 점점 사라져 소멸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분주한 삶은 이야기를 귀담다들을 수 있는 한가로움도, 이야기를 기억해 누군가에게 전해줄 마음 적, 시간 적 여유가 없는 것이 요즘의 현실입니다. 물질만능을 지향하는 현대 사회 속에 어른들의 옛 이야기란 그저 아련한 추억 속의 그리움으로만 자리매김하고 말았습니다. 작가의 글은 집안 할머님으로부터 들은 소중한 말씀과 옛 이야기를 기억 속에 저장하여 잔잔하게 풀어낸 살아 숨 쉬는 수필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며 작가의 삶의 지표가 되셨던 할머님을 보게 됩니다. 도란도란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할머니와 손자의 정이 담긴 유대는 곧 사물과 세상을 인지하게 하는 창이 되고 이야기 속 세상에 대한 동경과 꿈은 생각 주머니를 키워주는 교육의 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지혜 보따리를 풀어 손자에게 주신 할머니 그리고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글로 옮긴 작가의 가슴은 할머님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으로 가득 차 있어 잔잔한 감동과 아름다움으로 다가옵니다. 이 시간 저에게도 지혜의 보따리를 열어주셨던 우리 할머니를 떠올려봅니다. (이준남 만화가, 시나리오 작가)
눈 내리는 겨울밤 아랫목에 둘러앉아 화로에서 막 구워진 밤을 먹으며 할머니의 재미난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은 요즘 청소년들에겐 정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이 참 아쉽기만 합니다. 엄마인 나라도 할머니를 대신하여 우리 아이들에게 일곱빛깔 무지개 꿈을 꿀 수 있도록, 지식보다는 지혜의 주머니를 부풀려줄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엄마의 목소리는 이내 잔소리로 바뀌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부모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채워줄 수 없는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게 해주는 생각밭이라 여겨집니다. (한재은 주부)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작가의 할머니이지만 마치 돌아가신 내 할머니가 이 세상으로 걸어 나오시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미 돌아가신 할머니를 다시 살아나게 하였고, 내 머리 속에 온통 그 존재가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작가를 만나 온종일 그 시절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나로 하여금 돌아가신 할머니를 부활하게 하였으며 좋은 친구가 그리워지게 만든 작가의 글 솜씨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김군자 시인) 지은이 조남혁 서울에서 태어나 생후 14개월 만에 소아마비에 걸려 장애를 갖게 된다. 숭실대학교 사회사업학과와 중앙대학교 사회개발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였다.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등 많은 복지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중 푸른솔이라는 임의단체에서 컴퓨터를 활용한 장애인의 재활에 힘쓰다가 노동부 산하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 입사하게 된다. 퇴사 후 병원에서 머물던 3년을 빼고 많은 글을 쓰게 된다. 이번 에세이는 그 주제가 우리 삶에 있어서 잊기 쉽거나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지만 잘 지키기 않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사람들이 살면서 이런 일들만 지킨다면 훨씬 좋은 사회가 될 것임을 확신을 하고 있다. content 프롤로그 추천사 하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마 1. 옛 말/ 2.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3. 삼신할머니와 친하게 지내기 4. 월하노인(月下老人)/ 5. 공덕 쌓기 혹은 선 베풀기/ 6. 무술 배우기/ 7. 벗 8. 박물관에 함께 가실래요?/ 9. 평안감사/ 10. 정리하기 둘, 이렇게 살아가라. 1. 겸손 배우기/ 2. 봄잠바의 숨은 뜻/ 3. 소원을 이루거나 들어주거나 4. 아아~ 부모님/ 5. 피는 물보다 진하다/ 6. 스트레스와 동무하기 7. 신독(愼獨)/ 8. 술 배우기/ 9. 돈이 뭡니까?/ 10. 정리하기 셋, 장애를 넘어서라. 1. 장애(障碍)에 대하여/ 2. 다원(茶園)이라는 찻집/ 3. 내 몸 간수하기 4. 아낌없이 주는 나무/ 5. 체육시간의 추억/ 6. 항상성(Homeostasis) 7. 장애(障碍)를 가진다는 것에 대하여/ 8. 정리하기 넷,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란다. 1. 다양한 자 준비하기/ 2. 나훈아와 이은하/ 3. 위로가 된다면 4. 스승/ 5. 윷놀이/ 6. 시월단상(十月斷想)/ 7. 주례사 8. 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는 이에게/ 9. 도움 주고받기/ 10. 정리하기 다섯, 잊지 말고 살아가라 1. 기록한다는 것에 대하여/ 2. 명품족에게 이름/ 3. 잃어버린다는 것 4. 상처받는다는 것/ 5. 크리스마스를 생각함/ 6. 조종(弔鐘)이 울리면 7. 살림살이 어떠십니까?/ 8. 상아탑/9. 가정(假定)에 대하여/ 10. 정리하기 여섯, 더 나은 삶을 살아가라. 1. 운다는 것에 대하여/ 2. 복권에 당첨되는 법/ 3. 다락방으로 올라가라 4. 칩거(蟄居)/ 5. 우선순위/ 6. 사랑에 관하여/ 7. 음식 만들고 즐기기 8. 여행/ 9. 두 번 사는 인생/ 10. 정리하기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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