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땅콩속연인

[스크랩] 2009년7월16일 목요일 (나는 해탈한다)

by 칠면초 2009. 7. 20.

 

일기.

그것도 인터넷에 일기를 올린다는 것이 두려움과 조심스러움,

그리고 민망함까지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워낙 타인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유약함(?) 때문에

이 일기도 한방에 승낙을 해버렸네요^^

잘 봐주세요~~~

*******************************************************************************************************************

오늘도 아침부터 남편과 싸웠다. 사진을 전업으로 하는 남편과 글 쓰는 나 사이엔 항상 전운이 감돈다. 꼭 사진과 글 때문만은 아니다. 자기 고집을 꺾지 않는 성격 탓도 있다. 더구나 아이들이 성장하며 우리와 지내는 시간이 줄어들자 그러잖아도 싸움 잘하는 우리는 걸핏하면 싸운다.

여행, 외식, 명절, 세탁, 청소..... 아니 의식주에 관한 모든 게 싸움의 소재다. 심지어는 달력에 그려진 남의 그림을 보고도 좋네 아니네 하다 싸움으로 연결된다. 싸워본 이들은 알 테지만 싸움이란 싸울수록 치열해진다. 싸울수록 요령을 터득하게 되고, 제압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

 

이번 싸움의 이유는 이런저런 일로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를 남편에게 이야기했고, 그러다 직장 상사와의 관계에 대한 남편의 주장이 내 마음에 안 들었던 게 화근이 되었다. 내가 너무 고집이 세다는 말을 했다. 한두 해 산일도 아니건만 새삼스러움이 서운했고 사실, 남편의 고집은 나보다 한 수 위인걸 자신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 난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더니, 스님이 속가를 떠나 산중에서 고행하는 일이나 범인이 혼인을 하여 삶을 살아내는 일이 서로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다. 아무리 참을 인자 셋을 생각해도 싸우는 순간엔 모든 걸 잊어버린다.

그도 나도 우울하게 출근하고 나서, 항상 전화하는 법을 모르던 남편이 전화를 해왔다. 받을까 말까를 찰나적인 순간에 수십 번을 오가다 받았다.

 

“점심시간에 같이 밥 먹자”

가까운 곳에 사진관이 있다 보니 가끔 점심시간에 때 아닌 외식을 즐기기도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솔직히 별로다. 그래도 “알았어...”를 하고는 피식 웃음이 났다. 이렇게 순해진 건 아침 출근하자마자 미국에서 온 언니의 메일 탓이었다.

-네가 재미있게 사는 게 참 보기 좋다. 누구나 나름대로의 불만이야 있겠지만 서로가 절대적인 규범을 벋어나지만 않게 산다면 괜찮은 거란다. 덥기는 하고 너희들 어떻게 지내는 지궁금하다.- 언니의 긴 메일은 우리부부가 사는 게 보기 좋다고 하니, ‘이럴 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은 고행의 다른 이름이다는 말이 기억난다. 싸움 후, 난 빨리 잊어버리는데 반해 남편은 오래도록 기억한다. 다른 집들은 그 반대라는데 우린 그렇다. 어떤 경우에는 저녁에 싸우고 아침에 일어나면 싸운 걸 잊어버리고 내가 먼저 말을 거는 경우도 있었다. 이 눔의 치매~~~~ 잠은 내게 세상의 해탈을 알게 한다. 잠을 자고나면 독한 마음이 그처럼 부드러워지다니! 해탈이 아니고 뭔가.

해탈의 원뜻이 자신을 끓는 물에 던졌다 얼음물에 던졌다 하는 것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면 부부싸움도 그만은 한 일이다. 하룻밤에도 그냥 살 건지 말건지의 강을 수없이 오고 가는 것이니까. 그 험난한 기로에서 살아나는 데는 실로 숙면의 영향이 크다. 그래서 잠은 내게 보약이다. 11시 52분, 8분후면 날마다 해탈을 하게하는 그를 만나러 나가야지~~

출처 : ♥독서클럽♥ 책으로 만나는 상생의 세상
글쓴이 : 칠면초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