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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속연인

[스크랩] 2009년7월17일 금요일(“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by 칠면초 2009. 7. 20.

 

어렸을 적 꿈은 누구나 무지갯빛이다. 나도 그랬기에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싶었다. 그것도 시골의 조그마한 학교의 교사. 문학의 꿈이 무르익던 시절이라 교사라는 직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글을 쓰고 싶었다. 들꽃처럼 풋풋한 시골아이들과 어울려 살다보면 보람이 크다고 여겼다. ‘자주 꽃 핀 감자는 자주 감자, 파보나마나 자주감자. 하얀 꽃 핀 감자는 하얀 감자, 파보나마나 하얀 감자’라는 동시를 함께 낭독하며 자신만의 꽃을 피우게 하고 싶었다.

 

그 꿈은 사라지고 ‘신문쟁이’를 직업으로 15년 세월을 살다보니 삶의 윤기가 푸석푸석해졌다. 과연 나는 나만의 꽃을 피웠는지 회의가 든다. 팍팍한 일상에 쫓겨 시심은 저만치 달아났고 정서는 바닥을 드러낸 마른 논배미처럼 갈라졌다. 그래도 자기 직업에 만족은 없다지만 후회는 없다. 더군다나 미담기사를 쓰는 걸 늘 감사하게 여긴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면서 직업의 변화도 심하다. 사라진 직업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직업은 굴뚝청소부 아닐까? 허름한 작업복에 꽹과리를 들고 긴 철사를 둘둘 말아 어깨에 걸치고 “굴뚝~ 뚫어~”하며 골목을 누비던 풍경이 아련하다. 또 하나, 짐짝처럼 승객을 태운 버스에 매달려 “오라이~”를 외치던 시내버스 안내양도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젊은 세대들은 라디오 조립원, 타이피스트, 전당포란 직업이 왜 필요했는지 조차 모르는 이가 많을 것이다.

 

나도 직장에서 업그레이드 되어야 하는 현실과 맞닥뜨렸다. 퇴근 후 5개월 동안 학원을 찾아 웹프로그래밍 과정을 공부했다. 지난 해 11월 밀어닥친 경제위기는 퇴직을 거의 목전에 둔 내게 하나의 업무를 추가시켰기 때문이다. ‘홈페이지 운영자.’ 기자라는 직함 외에 하나 더 붙은 직무다. 조카뻘 되는 강사에게서 열심히 배워 이젠 플래시와 포토샵으로 배너도 만들고 간단한 명령어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교육의 힘이란 이렇게 대단했다. 그리고 또 다른 공부를 하게된 동기화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전 배너광고문의를 하던 한 고객이 홈페이지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했다. ‘전 이제 배너나 겨우 올리는 아마추어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회사 체면이 체면인지라 그냥 우물쭈물 하는데, 상대방이 “왜 못 만드세요? 저기 **신문사에서는 알아서 다 해주던데요”거기다 내가 한 말 중에 전문가답지 않은 말이 있었다면 꼬투리를 잡는다.

 

우리 사회에서 언제부턴가 프로에 비해 아마추어가 무시당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그 때문에 모든 분야에서 프로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프로정신으로 무장되지 않으면 인생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텔레비전 개그프로에서도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라고 상대방을 비아냥대는 말을 들었다. 여기서 “아마추어 같이”는 어설프고 시원찮음을 표현하고 있다는 건 누구나 안다.

 

나도 그랬다. 후배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프로정신을 강조했었다. 하지만 나는 요즘 달라졌다. 나이 탓인지 인생은 프로보다는 아마추어가 주인공인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프로는 매끈한 일처리를 할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EQ가 없다. 그러다보니 나는 프로를 만나면 마음이 설레면서도 한편으로는 편안하지가 않다. 대신 아마추어를 만나면 여유롭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일의 능률도 더 오른다. 우리보다 앞 선 선진국에서는 아마추어가 더 존중받는다고 하지 않던가.

 

이젠 아마추어가 그리운 시절이 되었다. 분명 물질적으로는 옛날보다 풍요롭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이 항상 무엇에 쫓기듯 허둥대며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 콩밥을 만들 때 주재료인 쌀 없이는 콩밥이 만들어지지 않지만 남들에게 ‘콩밥’으로 불리는 아이러니의 세상. 빗줄기가 다시 조금씩 잦아지고 있는 아침, “프로의 길이 과연 행복을 보장할까?”란 생각에 젖어들었다.

출처 : ♥독서클럽♥ 책으로 만나는 상생의 세상
글쓴이 : 칠면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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