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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톡톡

두 여인

by 칠면초 2008. 12. 4.

어제, 오랫동안 취재를 도와주었던 시흥농업인센터 지도사와 만나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11시40분쯤 헤어졌나...아파트에 올라오는데 누군가와 마주쳤다.

다름아닌 광고지 스티커를 붙이는 한 아주머니....

 

요즘들어 부쩍 늘어난 광고지로 골치가 아프던 참이었다. 

신문에 광고지를 끼워보내는 일 말고도 수시로 아파트 현관에 광고지를 끼워 넣고,

경비들의 감시를 틈타 아파트 출입문에 스카치 테이프로 광고지를 붙이는

방법까지 동원하고 있다.

 

집에 들어오며 여러 모양의 광고지들과 테이프 자국들을 보면 기분이 좋질 않았다.

아무리 먹고살기 위한 전쟁이 치열하다고 하지만

엄연한 남의집 대문(?)에다 광고지로 도배를 하다니....

한편 속으로 "나는 우리집에 광고지 붙힌 몰상식한 가게에는 절대로 주문하지 않으리라"고

언짢아하며 언제 한번 광고지를 붙인 가게에 전화해서 항의하고 싶은 마음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장본인을 맞닥뜨린거다.

엘리베이터 앞에 광고지를 가득 담은 가방을 놓고

행여 늦게 귀가하는 주민들과 얼굴이 마주쳐 핀잔이라도 들을세라

조심스럽게 한집 한집 광고지를 스카치 테이프로 붙인 후 광고지 가방을 들고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무표정하고 무거운 발걸음....

 

출입문을 지저분하게 장식하는 범인(?)을 만났지만 정작 화내거나 항의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나는 그분이 내려간 자리를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살 만한 형편이라면 누가 남들이 잠든 그 늦은 시간에 광고지를 붙이랴.' 

삶에 지친, 가난에 지친..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나 사치스럽게 생각되는..

하루하루가 힘겨운 삶일지도 모르는것 아닌가....

 

그 아주머니가 붙힌 광고지는 우리에게는 한 순간 언짢게하는 쓰레기조각이지만

그 분에게는 힘겨운 살림에 작게 나마 숨을 트게 해 주는 일일수도 있을것이다.

힘겨운 사연을 들어줄 만한 사랑도 없지만

어쩐지 내 집 출입문이 조금 더러워진다고 크게 화내거나 항의할 일만은 못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 때 사무실로 양말을 들고 올라오신 할머니가 있었다.

막무가내로 들어오는 할머니보다 별의별 말로 내보내려 하는 여직원이 어쩐지 더 야속했다.

스타킹 한 축을 사며  전단지 아주머니나 양말 할머니의 삶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지기를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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