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아니 어머니 보다는 ‘엄마’라는 단어는 금세 목구멍을 뜨뜻하게 만든다. 한국의 모정은 유난히 끈적끈적하다. ‘모정의 한국사’는 ‘불륜의 왕실사’와 ‘우리가 몰랐던 한국사’의 저자 이은식씨가 다시 자료를 모았다.
이 책은 순전히 우리 어머니들의 이야기다. 그것도 자녀를 위대한 인물로 만들어낸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물론 자녀가 훌륭하지 않았다 해서 그 어머니가 존경받지 못할 이유는 없다. 이 책은 뭔가 남달랐던 어머니들의 이야기다.
가부장적인 가치관이 엄격히 존재했던 조선시대에 위대함이란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한 시대에 여성으로 지혜를 발휘한 여섯명의 어머니들은 우리 어머니들을 대변한다.
이 책은 엄격한 사회적 굴레 속에서도 자신들의 재능을 가족을 위한 헌신으로 표출했던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역사 속에서 찾아본다.
조선의 대표적 학자이면서 ‘구운몽’으로 대표되는 파격적인 소설가이기도 했던 김만중 형제의 스승 같은 어머니 해평 윤씨,
‘김만중이 훌륭한 인물이 되기까지의 과정에는 어머니 해평 윤씨라는 덕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어머니의 교육이 일생 지침이 되었다.’ (42p)
남편의 부도덕한 행실에 흔들리지 않고 아들들을 훌륭히 키워낸 성간의 어머니 순흥 안씨,
‘당시 여자들은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가정이라는 한정된 공간 내에서라도 올바른 인성과 철학을 가지고 자식을 훌륭히 길러내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자시느이 인성을 먼저 갈고닦지 않으면 이루지 못할 어려운 일이다.'(89p)
자식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노비 생활도 마다하지 않았던 박일산의 어머니 성주 이씨,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지 않던가. 진심으로 원하는 일을 이루고자 한다면 결국 때는 찾아온다. 먼 훗날 당당하게 세상으로 나갈 나의 모습을 늘 생각하며 게으름을 피우지 않으리라.‘(187p)
서자인 아들들에게 빛나는 미래를 안겨주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양사언의 어머니 문화 유씨, '양사언의 어머니 유씨가 양사언, 양사준, 양사기라는 거출한 선비를 길러낸 이야기는 열두살 먹은 당돌하면서도 지혜로운 시골처녀가 쉰이 넘은 신임군수에게 점심을 대접하면서 시작된다. 유씨는 타고난 예지로써 좋은 자리에 정실로 가지 못할 바에는 소실이라도 훌륭한 자식을 낳아 기를 바탕으로 양희수를 선택했다.(235p)
앞 못 보는 맹인의 몸으로 가난과 싸워가며 충신을 길러낸 서성의 어머니 고성 이씨, '옛말에 사람의 몸 전체를 천 냥이라고 하면 눈이 구백냥이라고 하였다. 그 중요한 눈이 불편한데다가 남편을 일찍 여읜 어려운 형편이었음에도 이씨 부인은 좌절하지 않고 노력과 인내로써 아들을 키워냈다. (285p)
홑몸으로 아들들을 훈육하며 몰락한 가문을 일으킨 이준경의 어머니 평산 신씨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소학, 대학, 표경 등의 유학 경전을 직접 가르치고 그 잘못을 지적할 수 있었다고 하니 신씨 본인의 학문적인 깊이를 미루어 알 수 있을 것이다. 신씨는 교육을 하며 자식들에게 항상 말하기를 “과부의 자식은 남이 더불어 사귀지 않는다는 옛글이 있으니 너희는 반드시 학문에 열갑절을 더 부지런히 하여 가문의 명성을 떨어뜨리지 말아야 하느니라”고 당부했다.' (327p)
이렇듯 이들의 슬기로움은 현재 가치관 혼돈시대에 하나의 뿌리를 제공해준다. 특히 저자가 직접 발로 뛰며 찾아낸 역사 기행을 통해 과거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어 역사지만 현실감이 있다.
읽다보면 기행문 같기도 하고, 역사서 같기도 하고, 교훈서 같기도 한 ‘모정의 한국사’는 나도 읽고 자녀들도 읽고, 가족 모두가 읽어야 할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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