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흔히 독서의 계절이라는데, 책을 전혀 손에 들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일에 파묻혀 눈알이 핑핑 돌았던 한 달. 가끔 책꽂이에서 바라보던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책은 읽는 동안 너무도 훌륭한 선생으로 다가와 내게 다시 독서의 문을 열어줬다.
‘출판편집자가 말하는 편집자’는 23인의 출판편집자들이 이야기하는 편집자의 세계를 담은 작품이다. 출판업계에 발을 들인지 1년도 채 안 되는 병아리 출판인부터 시작해 25년차의 경력을 자랑하는 베테랑 출판인까지 이들의 일상과 개성을 책 속에 고스란히 넣었다.
출판편집자는 책을 편집하는 사람이 아니고,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 첫걸음은 기획이다. 기획을 통해 책의 내용과 방향을 정한 뒤 필자를 섭외해 원고를 받든가, 들어온 원고를 다듬어 기획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알면 보인다"는 말 그대로 편집자가 평소 잘 알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서 좋은 기획이 나올 때가 많다. 읽는 동안 공감이 갔다. 간혹 사람들은 편집자를 만물박사로 알 정도이니 말이다.
편집은 단순히 바르고 읽기 쉽게 고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저자의 문체를 그대로 살리면서 오류를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다. 이미 독자들이 저자 특유의 문체로 받아들인다면 때로는 비문이라도 그대로 두어야 한다. 얼마 전 이춘미 수필 ‘아치울의 봄’을 읽으며 저자 특유의 비문의 매력에 반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살피려면 병적인 집요함을 갖고 볼 수밖에 없다. 그로 말미암아 편집자에 대한 수많은 편견과 오해가 생겨나더라도 말이다. 출판편집자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이 책에선 이렇게 표현한다.
편집자는 사디스트다? 사실 편집자는 토씨 하나 바꿀 때조차 저자와 독자가 저마다 채찍을 들고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피학적 기분에 사로잡힐 때가 많다.(45P)
편집자는 책을 많이 읽는다? 종일 활자와 함께하는 편집자는 때로는 책과 멀어질 필요가 있다. 그러나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면 훌륭한 편집자가 될 수 없다. 또 자신이 만들려는 분야의 다른 책도 두루 읽어 책의 중심 주제에 무지하지 말아야 한다. (48∼49P)
편집자는 유식하다? 편집자가 모든 분야를 잘 알 수는 없다. 사실 편집자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보다는 '질문하는 힘'이다. 다만 너무 몰라서 질문조차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편집자가 무식할 수는 있어도 세상일에 무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자신이 편집하는 책과 연결되는 세상과 사람의 이야기에 항상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49∼51P)
이렇듯 책은 편집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텍스트와도 같다. 저자나 기자처럼 책 표지에 이름이 크게 박히지 않아도, 그 역량을 원고에 충실히 담아내고 책이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으면 만족한다. 실제로 독자는 그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편집자의 중요성이 감소되는 것은 아니다. 편집자는 원고가 책이 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들은 책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책을 덮는 순간 책상 위에 놓인 '빨간 펜'으로 상징되는 교정·교열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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