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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싶은곳

아현동 달동네

by 칠면초 2010. 2. 9.

 

길은 집보다 수명이 길다. 집은 무너지거나 헐려 100년을 넘기기 힘들지만 길은 그 몇 배의 시간 동안 차곡차곡 세월을 쌓아간다. 오래된 동네, 거미줄처럼 얽힌 작은 골목길엔 낡은 겉모습만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의미와 가치가 숨어 있다.

 

 

 

 

북쪽으로 신촌, 동쪽으로 마포를 둔 아현동은 서울 한복판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정취를 간직한 동네다. ‘아현’은 작은 고개를 뜻하는 ‘아이고개’를 한자로 옮겨와 붙은 이름. 언덕배기 촘촘히 들어앉아 고개를 내밀고 있는 집들과 왁자지껄한 골목시장, 작은 동네를 바쁘게 오가는 마을버스엔 사람 사는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

 

넓고 반듯한 길 위에 세워진 빽빽한 빌딩 숲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겨움이다. 특히 동네 사이사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작은 골목들은 개발 이전 서울의 옛 풍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골목길 따라 멈춰진 시간을 찾아온 방문객들도 어느새 이곳의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아현동은 상계동 노원마을, 홍제동 개미마을, 하월곡동 등과 함께 서울에 몇 남지 않은 달동네다. 삐뚤빼뚤 좁은 계단들이 가는 등허리를 내보이고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오래된 건물들이 유물같이 남아 있는 이곳은 1920년대 이후 정부 관리나 대학교수 등 명망가들이 살던 부촌이었다.

 

1940년대에는 보따리 들고 서울에 상경한 시골 사람들이 걸어와 정착하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 1950년대 완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 중 하나인 개명아파트가 있었고 당시 현대적으로 지어진 ‘문화주택’이 많아 신혼부부들에게 인기가 좋은 동네이기도 했다.

 

 

금화길 꼭대기에 있는 금화아파트는 1969년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시민아파트다. 130여 동의 아파트 단지가 철거되고 지금은 3동과 4동만 남아 을씨년스러우면서도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이곳에서 영화 ‘소름’이 촬영되기도 했다. 골목에서 또 다른 골목으로 나뭇가지처럼 뻗어 있는 길을 따라가다가 빨아 널은 내복이며, 혼자 놀고 있는 강아지를 보며 아련히 남아 있는 어린 시절 추억들과 마주한다. 골목은 우리의 기억이 닿는 곳

훨씬 이전부터 역사를 만들어왔다.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정감 있는 풍경으로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 장소로도 인기가 많았던 이곳을 이제 지난 사진이나 영화 속에서만 볼 수 있을 듯하다.

 

2005년 뉴타운지구로 지정된 북아현3동 일대는 2011년 안에 철거돼 2015년이면 고층아파트가 들어선다.

오랜 시간 주민들의 희로애락이 녹아 있는 작은 골목들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빠르게 변해가는 도시의 세월 속, 항상 그 자리에 있어 위로가 되었던 아현동 작은 골목 안에 멈춰진 시간들은 이제 아련한 추억으로 남게 됐다.

 

 

 

아현동 달동네 가는 길

지하철 2호선 충정로역에서 마을버스 2번을 타고 금화장오거리 하차하면 뉴타운지구로 지정된 금화장길과 능안길 일대에 다다를 수 있다. 5호선 애오개역 3번 출구로 나오면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동네로 올라가는 골목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