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한참이나 먹었는데도 여전히 가끔 길을 잃는다. 딴 생각을 하다가 전혀 다른 길, 엉뚱한 길을 걷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린다. 언제부터인가 운전을 하면서도 지도가 아닌 내비게이션에 의존하다보니 방향감각은 점점 더 엉망이 되어간다. 목적지는 하나지만 가는 방법이 워낙 많아 내비게이션이 제안해 주는 ‘고속’ ‘추천’ ‘일반’ 중 하나를 선택해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방향감각은 점점 더 둔감해져간다. (53P.나침반)
마치 내 이야기를 옮겨 놓은 것 같은 이야기. 사소한 발견은 이렇듯 누구에게나 맞을법한 사소한 이야기들이 흥미롭다.
나는 요즘 단어와의 새로운 만남을 시작했다. 가위란 작은 천사가 종이를 자르며 “띠까띠까” 시계는 “뽀로로 시계” 나뭇잎은 “꼬꼬 맘마” 풍선은 “푸~” 이렇게 새로운 단어를 접하며 감성이 사라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이를 보면 항상 새롭다. 시간에 대한 생각들도 사람에 대한 생각들도 모두 새롭게 만들어준다. 아이의 옷은 아이와 반비례해 항상 작아진다. 아마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의 옷은 점점 작아질 것이다 . 그래도 우리의 추억은 점점 더 커지겠지.
사물이란 사전적 의미로 본다면 모두에게 동일 할 것 같지만 실상은 각자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선다.
잠시 영화 <중경삼림> 중에서의 한 장면을 기억한다.
(물이 뚝뚝 흐르는 걸레를 보며) 너무 슬퍼하지 마! 내가 도와줄게.
(걸레를 힘껏 짠 후) 좀 나아졌지?
경찰 633(양조위)은 낡은 비누, 곰인형, 물에 젖은 수건과 대화를 한다. 우리의 무심한 시선 속에서 한낱 사물이었던 비누와 수건은 경찰 633에게 감정과 눈물을 지닌, 의미 있는 개체가 된 것이다.
이 이야기는 비단 영화 속의 이야기는 아니다. 사물은 사물의 기능적 역할에 충실한 것과 동시에 기억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이 책 역시 사소한 발견으로 새로운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내 주변에 항상 자리해 너무도 쉽게 무심코 보아왔던 물건들이 김춘수 시인의 “꽃”과 같이 그 이름을 불러주며 새롭게 다가왔다.
키보드-하루에 몇 번이나 모니터를 바라볼까? 하루에 몇 곡이나 연주하는 걸까?
안경-페르소나 즉 가면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만큼 얼굴을 바꿔주기 때문이다.
상자-열어볼까? 말까?
레코드-시간의 더께
흑백사진-엄마의 초상
맞다 흑백사진은 분명 엄마의 사진이다. 이 책은 가볍게 시작해 몇 번인가 눈물을 훔치게 만드는 묘한 설득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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