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작은 사건으로 인생의 행로가 바뀌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특히 젊은 시절 열병 같은 사랑은 젊음을 영글게 한다. 책을 읽는 동안 그리고 책장을 덮으며 잊었던 사랑의 터널을 통과한 기분이다. 다분히 남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이 책은 1990년부터 1995년 사이의 젊은이들의 사랑을 보여준다.
누구보다 화려한 꿈을 꾸고 이 계절을 시작하는 사람은 대학 신입생일 것이다. 젊은이들이 찬란한 꿈을 마음껏 키울 수 있는 공간은 대학이다. 그곳에는 진지한 대화가 있고 아름다운 청춘의 고뇌가 있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도전이 있다.
새내기 차현은 대학에 입학하며 2년 여자선배에게 사랑을 느낀다. 아니 그렇게 생각한다고 느끼는 것이 맞을지 모른다. 데이트를 어떻게 하는 지도 모르던 젊음. ‘주로 영화를 봤습니다. 5월부터 얼추 6개월. 학교 밖에서 단둘이 만나 본 영화가 무려 열다섯편. 그 밖의 다른 무엇을 궁리해볼 입장이 아니었다고 할까. 주변머리 없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무난한 데이트 핑계가 바로료 영화였지요 (11)’라고 시작하는 소설은 주인공 차현의 과거회상으로 문을 연다. 불확실한 현실 속에 사랑마저 불투명한 세대. 그때 그들은 그랬다. 나도 그랬으니... 90년대 정치와 사회 문화가 곳곳에 소개되며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생각하면 아무리 주위에서 평판이 좋은 사람이라도, 말 한마디에 그 평판이 무너져 버릴 수 있다. 반대로 진정어린 말 한마디로 인생이 바뀌고, 작은 관심이 한 사람의 생명을 살려 내기도 한다. 이러한 사소한 일이 가져오는 효과를 ‘나비효과’라고도 한다. 나비의 단순한 날갯짓이 기상변화를 일으킨다는 나비효과는 작고 사소한 일이 나중에 엄청난 결과를 야기한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우연히 주변의 작은 사건으로 이들 사랑에 금이 가며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속설을 증명한다. 그 사랑이 깨지는 상황이 오자 차현은 모든 방법을 통해 붙잡으려 한다. 그 시절 남자들이 할 수 있었던 그 흔한 방법들. 술마시기, 울며 매달리기 집 앞을 지키기 등등 모든 방법을 동원하지만 사랑은 멀어져만 간다.
멘토가 되던 친구 은원을 바라본 건 자연스럽다. 여자친구에게 안타까운 사랑을 이야기하며 어느새 은원을 향한 마음이 우정 이상이었음을 알게 된다. 둘은 사랑이란 걸 시작하며 책은 90년대식 데이트를 모조리 소개한다.
종로거리와 신촌이 등장하고 명동에서 술 마시던 그 어느 날의 이야기들. 단성사 대한극장 피카디리 정겨운 극장이름들이 또한 신난다. 그 무렵 이곳저곳 등장한 노래방, 그와 더불어 비디오방 이야기가 나오며 데이트 족들에게 얼마나 고마운 공간이었던가를 추억케 한다.
대한민국 연인들의 헤어짐의 제일 큰 원인인 군대생활에도 꿋꿋이 버텨 기다려준 은원이 자신의 발전을 위해 콜롬비아로의 유학을 선택하자 차현은 괴로워하지만, 은원을 보낸다.
소설 곳곳에서는 차현의 성장이 눈에 펼쳐져 기분 좋게 만든다. 5년 뒤 10년 뒤 20년 뒤 그때 나는 누구일까. 은원을 떼어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는 삶을 나는 살고 있을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353)
덩달아 솟아나는 눈물. 괜찮아. 하지만 괜찮아. 종종 겪는 일이지만 술 마시다 말고 넘어오는 구토가 사무치도록 괴로울 뿐. 누군가 그립거나 그리워서 원망스러운 때문은 아니었으니까.(357)
책장을 덮으며 절은 시절의 터널을 통과한 주인공 차현에게 오래도록 사랑이 머무를 수 있도록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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