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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삼매경

[서평]오바바 마을 이야기

by 칠면초 2011. 9. 13.

 

 

 

억새풀 자욱히 우거진 갯벌, 철새떼 나는 먹먹한 허공, 고요히 흐르는 임진강, 강에서 벌판으로 빠져 흐르는 샛강과 그 강물의 작은 쉼터인 늪. 헤이리마을 주변 풍경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자꾸만 헤이리마을이 연상되었다. 몇 년 전 찾은 헤이리 아트 밸리는 단연코 꿈의 공간이었다. 산과 산 사이 어머니의 근원처럼 길고 아늑한 곳, 삼층 이하로 제한한 건축물들이 여기저기 떨어져 서로 부르듯 바라보고, 사이사이 공터엔 잔잔한 풀꽃들이 가을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프로젝트라는 예술지상낙원이 황량한 듯 고즈넉한 북쪽의 자연과 어울려 고른 숨을 쉬고 있는듯했다. 드물게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새롭다.


오바바는 서울의 서초구 정도의 국가로 마치 작은 마을 같은 곳이다. 책은 스페인 북구 상상의 마을 '오바바'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신비하고도 환상적인 스물여섯개의 이야기가 삶의 고리를 이어준다. 이야기들은 독립적이지만 큰 틀에서 조금씩 연관돼 있어 연작으로 흥미를 더해준다.


바스크 지방의 구전문학을 현대문학으로 재창조했다고 해서 화제를 모은 오바바 마을 이야기는 3부로 구성되어있다. 스물 여섯 편의 이야기는 또 다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1부 '어린시절'은 오바바 마을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1부는 자신들이 살고 있는 오바바라는 세계를 읽지 못하는 단계다. ‘책으로 둘러싸인 벽, 그러니까 페이지와 단어로 이루어진 벽에는 하나의 빈 공간이 있었다. 바로 창문이었다. 글을 쓰는 동안 에스테반 웨르펠은 그곳으로 하늘과 버드나무와 연못, 그리고 그 도시의 가장 커다란 공원과 그곳의 백조들을 위해 지은 조그만 집을 볼 수 있었다.’ ‘시작, 여기서 내 평생 처음으로 교회에 갔던 그날 오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당시 나는 열네살이었고 아버지와 함께 오바바로 불리던 곳에서 살고 있었다(17).’ 이렇게 시작한 이야기는 멧돼지로 변해버린 외로운 소년, 오바바 주민을 멸시하는 아버지와 함께 살지만 오바바 마을에 섞이고 싶어했던 에스테반, 사라진 남편을 찾아 아마존 밀림으로 들어간 아일랜드 여자, 예전에 살았던 도시만 바라보며 오바바에 실망한 여교사 등 시공을 초월해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비야메디아나 마을을 기리는 아홉 마디의 말'은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비야메디아나를 기억하는 2부는 제한된 기억으로 세상에 대한 인식의 틈을 메우는 단계이다. ‘내 삶을 되돌아보면 나는 비야메디아나라는 이름의 섬을 발견한다. 만일 내게 사전에서 다섯 개의 단어를 골라 그것들을 사용해 그 마을과 관련된 것을 즉시 묘사하거나 설명하라고 요구하면, 그 어떤 단어보다도 ‘태양’이라는 단어를 고를 것이다. 내가 두 번째 고를 단어는 ‘밀밭’이다. 그러면 나는 그 색깔들을 묘사해야 한다. 마지막 세 개의 단어는 ‘빔’과 ‘까마귀’ 그리고 ‘양’이다. (149)


마지막 3부는 파편화된 부분들을 연결시켜 문제를 해결하는 단계로 실제와 허구의 재해석단계다. 책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유머, 아이러니, 마법, 미스터리와 시적 언어가 적절히 버무려진 소설은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긴장을 떨치지 못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바스크어로 출간된 작품 중 국내 첫 출간되는 작품이다.